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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Mar 21. 2024

읽고 쓰기(3)

앤드루 호지스,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서울, 동아시아, 2015

"생각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정신 작용입니다."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 주기 때문에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그는 집단 정체성collective identity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친구입니다. 사실 저 같은 날림 석사 나부랭이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와 이런저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근에 가장 인기 있었던 생성형 AI를 주제로 올렸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여러 강연과 저널에 실렸던 관련 아티클들에 대한 기억을 주섬주섬 챙겨 그 친구에게 먹이로 던져주었지요. 그런데 그 친구 반응이 시큰둥했습니다. 평소 과학이나 IT분야에 대해 설명해 주면 잘 들어주던 친구였는데 말입니다.


(사실 저는 이과생이었지만 학부 1학년 때 전공을 선택해야 했는데, 성적 받기 수월하다는 2학년 선배들 꼬임에 정치학을 선택한 이과형 문과생입니다. 하지만 저와는 달리 그 친구는 골수 문과생입니다.)


왜 반응이 그러한지 살펴보니 너도나도 여기저기 ChatGPT이야기를 다 하더라는 겁니다.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었죠. 그러면서 그 친구가 물었습니다. "AI시대가 지나면 어떤 것이 세상을 지배할까?" 저는 속으로 외쳤지요. '옳다구나! 걸려들었어.' 그러면서 사뭇 젠체하며 다음과 같이 뱀의 혀를 놀렸습니다. "아직 AI시대는 오지도 않았어.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지. OpenAI 대표인 샘 알트먼도 한 인터뷰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지. 그리고 본격적을 AI시대가 오려면 너 같은 사람이 반드시 필요해." 그러자 그 친구는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되물었습니다. "뭔 소리야?" (그래그래 그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어.)


저는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세돌 9단을 이겼던 AI 알파고 기억하지? 그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하사비스는 대회가 끝나고 KAIST에서 특별강연을 했어. 강연이 끝날 때 사람들이 너도나도 물었지. 이제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넘어서는데 우리는 무얼 하며 먹고살아야 하냐고. 그러자 그 사람은 '윤리'라고 대답했어. AI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판단 순간에 인간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이지. 그리고 그 분야는 AI가 결코 인간을 넘어설 수 없으며, 개입해서도 안된다는 의미였어."


그 친구는 고개를 더욱 갸웃하며 말했어요. "그 이야기를 했던 거 기억해. 그러니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저는 숨겨왔던 의도를 드러냈지요. "너는 집단 정체성을 연구하는 학자잖아. 인간 그리고 그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와 같은 집단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 대한 전문가잖아. 잘 생각해 봐. 한 개인이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는 것은 결국 소셜 레퍼런싱social referencing을 통해서 사회통념과 같은 가치를 정보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불과해. 집단 정체성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해. 만일 인공지능이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수많은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능동적으로 학습할 수 있게 된다면 인공지능에게도 개인 정체성 그리고 집단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을까? 인간은 그걸 통제해야 해. 그때 집단 정체성 전문가가 가장 필요하지 않겠냐는 거지."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그 친구는 처음 만난 이래 가장 큰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사람들은 앨런 튜링을 그저 천재적인 수학자, 현대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선구자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물리학,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를, 그것도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스스로 연구했던 놀라운 학자였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리고 그가 인공지능을 연구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잊었습니다. 그가 컴퓨터나 인공지능을 연구한 이유는 인간의 정신에 대한 근원적인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사고하고 기억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걸 수학적이고 기계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흉내 내어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뇌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 잘 모릅니다. 누구나 머리를 달고 살면서 말이죠. 겨우 해마hippocampus가 기억memory, 주의attention, 개념concept, 계획planning, 탐색navigation, 상상imagination 같은 것을 담당한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도 어떤 방식으로 뇌신경조직들이 사고하고 기억을 저장하는지 잘 모릅니다. 앨런 튜링이 알고 싶었던 것도 결국 사람입니다.




"그는 완전히 혼자였다."


다시 그 친구와 나눈 대화입니다. 저는 오래된 애플 골수팬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잠시 떠나 넥스트라는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기억하고 있으니까 정확히는 잡스 골수팬이 맞을 겁니다. 어느 날 제가 퀴즈를 하나 냈습니다. "너 애플 옛날 로고 기억나? 한 입 베어문 사과인데 무지개 색깔인 거." 그 친구는 시큰둥하게 "뭐 그랬던 거 같네. 왜?" (옳지. 이번에도 걸렸어.) "왜 애플은 자기 회사 로고를 한 입 베어문 무지개 색깔 사과로 골랐는지 알아? 참고로 자서전을 보면 잡스는 사과농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그래서 애플 컴퓨터에 사과 품종 중 하나인 매킨토시McIntosh 이름을 붙이지도 했지만 말이야." 이번에는 반응이 조금 달랐습니다. "오오. 그런 사연이 있어? 그런데 왜왜왜?" (그래그래. 이런 반응이 나와야지. 흠흠.)


잔뜩 거드름을 피우면서 이렇게 설명해 줬습니다. "사람들은 말이야 자서전에 나온 내용이 전부인 줄 알지. 그리고 1977년 그 로고를 첫 컬러 그래픽 개인 컴퓨터인 애플2를 선보이며 사용했고, 디지털 정보 최소단위인 바이트byte가 깨문다는 바이트bite와 발음이 같다는 것을 활용한 일종의 언어적 유희라고 알고 있지. 하지만 말이야, 나 같은 컴퓨터 긱들 사이에서는 다른 전설이 있어.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선구자로 알려진 앨런 튜링이 왜 그리고 어떻게 죽은 지 알아? 그는 동성애자였어. 당시 영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범죄였고 발각되면 감옥에 가야 했지. 앨런 튜링도 동성애 사실이 발각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변호사가 그를 감옥에 보내는 것은 영국사회와 인류에게 크나큰 손실이라고 변호했지. 그래서 판사가 선택권을 주었어. 감옥에 갈지 아니면 당시 처음 개발된 방법인 화학적 거세, 그러니까 여성호르몬을 맞을지 말이지. 그는 감정이 아닌 지식을 선택했어. 하지만 부작용은 너무 심했어. 발기가 안 되는 것을 넘어서 여자처럼 가슴이 나오는 것이었지. 결국 그는 사과에 맹독인 청산가리를 주사하고 그걸 베어 물고 자살했어. 애플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서 LGBT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을 한 입 베어문 사과에 입혀서 회사 로고로 삼은 거야." 그 친구는 입을 벌리고 다물 줄 몰랐습니다. "말도 안 돼"라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말이에요.




사실 저는 그 친구에게 사실이라는 요리 위에 과장이라는 양념을 듬뿍 얹어서 먹인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좀 미안하네요.


앨런 튜링은 다른 방법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성적 정체성에서 오는 욕망을 해결하며 살았습니다. 한 번 한 약속은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었지만,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모색하는 것에 능했거든요. 하지만 그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남들이 자신에게 강제로 들이미는 폐쇄적이고 고리타분한 잣대들이었습니다. 그는 거기에 순응하는 시늉을 했던 거지요. 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옳은 생각을 종교적 사회적 편견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가 베어문 것은 청산가리가 든 사과가 아니라 모든 억압과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때와 비교할 때 많은 점이 나아졌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남들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으니까 확실히 좋은 세상이 되어가는 것은 맞는 듯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뭐 그렇게 큰 변화가 있었다고 하기에도 어렵습니다. 저만 해도 온갖 편견과 차별적인 시선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곤 하니까요. 왜 그걸 모를까, 왜 이게 이해가 안 되지, 세상에나 저렇게 생각할 수 있다니, 도대체 머리에 뭐가 들었을까, 그걸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다고......... 라며 말이죠. 제가 하고 있던 찌푸린 눈살에서 아주 소량이지만 독극물이 흘러나와 사람들이 숨 쉬는 공기를 치명적인 것으로 오염시키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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