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이 쌓여 오늘이 되다.

by dl

우리는 늘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산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살 거야 하는 것은 단순히 의지의 표현이지 혼자로만 살 수 없다.

그동안 오십 후반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타인의 도움이 있었던가.

타인의 도움을 생각할 적마다 교만이 꿈틀대는 모난 마음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결국, 우리는 많은 타인의 도움과 덕으로 오늘을 살고 있고, 살아내는 것이다.


결혼 전, 언니 가족과 함께 강원도로 여행을 떠난 기억이었다.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간질거리고, 봄 내음 가득한 공기 속 파릇한 새싹들의 연두 행렬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할 무렵이었다.

순조롭게 달리던 차가 갑자기 휘청거리더니, 언니가 간신히 급브레이크를 밟아 멈춰 섰다.

이미 앞바퀴 한쪽은 차도 밖으로 빠져 있었고, 그 아래는 2m가 넘는 아찔한 낭떠러지였다.

운전석의 언니와 형부가 어렵게 내렸지만,

뒷좌석의 조카와 나는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차 안에 남아있어야 했다.

이 아찔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던 그때,

우리 차 뒤로 군 트럭 몇 대가 멈춰 섰다. 그중 한 분이 다가와 무슨 일인지 물으셨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긴급 출동 서비스도 흔치 않던 시절이라 더 절망적이었는데 말이다.

그분은 너무나 능숙하게 트럭으로 끈을 묶어 우리 차를 꺼내 주셨다.

그러고선 그분들은 훈련 가는 길이라며 서둘러 출발하셨다.

우리도 경황이 없어 제대로 감사 인사도 나누지 못했지만,

그때의 도움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있다. 위기의 순간,

누군가의 손길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고마움이었던지.



시간이 흘러 부모가 된 후에도 타인에게서 받은 고마움은 참으로 많았다.

그중에서도 아이들 유치원 시절, 원장 선생님 부부와의 인연이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면서 아이를 당장 유치원에 보내야 했지만, 그 지역 정보가 전혀

없는지라 막막했다. 처음에 정원이 다 찼다는 말에 다른 곳을 알아봐야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자리가 생겼다며 연락이 왔을 때, 그건 나에게 정말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사실 그 유치원에 대해 잘 알거나 들은 바는 없었고, 몬테소리를 바탕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면서 부모교육을 함께 받게 되었다.

그즈음 아이들보다 부모의 문제가 더 시급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첫아이를 키우며 부모로서의 지혜나 지식은 전혀 없었던 터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곤혹스러운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유치원에서 배운 성품 위주의 교육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인 나의 삶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유치원 졸업 후에도 그곳에서 운영하는 초등영어 프로그램에 계속 다니게 되었는데,

몇 년 뒤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더는 다닐 수 없겠다고 말씀드리게 되었다.

원장님과 이사장님은 아이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다며 1년 장학금을 지원해 주셨고,

계속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부담스러운 마음에 여러 번 거절했지만,

그분들의 진심 어린 뜻을 알기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기로 결정했다.

그 지역을 떠나 지금은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가끔 찾아뵈면 늘 화사한 미소로 우리 가족을 맞아주신다.

내가 받은 이 감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꼭 나누며 함께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된다.


최근에는 양평 서종면에서 사시다가 우리 아파트로 이사 온 노부부로부터 따뜻함을 배웠다.

이사 전 인테리어 공사를 하실 때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마주쳤는데, 직접 셀프 인테리어를 하신다고 했다.

셀프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뵙고, 이사 후에는 바깥 어르신과 우리 남편이 담배를 좋아하다 보니

인사 정도 하는 사이가 되었고 담배를 매개로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신 듯 하다.

내가 보기엔 그 노부부는 모두 수줍음이 많으시지만, 참 마음이 따뜻한 분들이라고 느껴졌다.

그 당시 나는 빵을 배우러 다녔는데, 학원에서 만든 빵을 주변 분들과 함께 나누곤 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또는 서로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루는 바깥 어르신과 남편이 스피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남편이 우리 집의 고장 난 스피커를 부끄러움도 모르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이사 온 어르신이었다.

스피커와 소리에 대한 취미가 상당하셔서 그 분야로 깊은 지식을 가지고 계시다는 말을 남편에게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직접 우리 집 고장 난 스피커를 확인하시고 해결 방안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딸아이에게는 좋은 음악을 많이 들으라며 블루투스 스피커도 선물해 주셨다.

마음을 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셨다.

무엇을 받는다는 것이 때로는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노부부의 따뜻한 마음을 감사히 받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작은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받은 고마움, 나누는 삶

내 삶은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고마움으로 이어져 있다.

위기의 순간에서, 양육의 길에서, 일상 속에서, 그리고 가족과 함께하는 매일 속에서 받은 고마움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이 고마움은 내 안에만 머물지 않고 언제가 나도 누군가에게 건네야 한다.

타인의 덕으로 살아냄을 고백하듯, 나 또한 조용히 나누는 일에 힘써야겠다는 배움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