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지 않은 줄기 끝에서 장마를 품은 듯 피어 있는
여름을 잠시 뒤로 미루고 접다
장마가 스미는 공기와 접촉
흩어진 햇살 틈새로 접근
회색빛 하늘과 푸름의 접점
빗소리, 반가움 없이 접대
촉촉한 바람에 마음까지 접수
습한 계절 깊이 꽃잎을 접하다
그 빗물 머금고 다시 피는 접시꽃
장마가 시작된 6월 중순, 여름의 문턱에서 계절은 쉼표를 찍듯 스스로를 조용히 접다. 끝없이 내리는 비와 눅눅한 공기는 사람들의 피부와 마음에 천천히 접촉하며, 하늘을 가린 구름 사이로 희미한 햇살 한 줄기가 조심스럽게 지상을 향해 접근한다. 회색빛과 초록빛이 만나는 그 어딘가에서 빛과 어둠, 마른 잎과 젖은 꽃 사이에는 애매하면서도 분명한 계절의 접점이 생겨난다.
장마비는 늘 그렇듯 반갑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그 낯선 습기와 소리를 조용히 접대하고, 마음속 한편에 스며든 감정까지 빗줄기와 함께 부드럽게 접수한다. 그렇게 비에 젖은 자연과 조용히 마음을 접하다보면, 어느새 물방울을 머금은 채 청초하게 피어난 하얀 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온다. 꺾이지 않은 줄기 끝에서 장마를 품은 듯 피어 있는 그것은, 이름처럼 맑고 단단한 여름의 얼굴, 바로 접시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