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한 실천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갑니다.
이 녀석을 처음 만난선 7개월 전 즘이다. AI가 글쓰기 영역까지 지배한다는 호기심에 찾아봤고,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은 다음에야 호기심이 사라졌다. 신기한 세상이었지만 나에게 특별함을 안겨다 주지는 못했던 기억을 남겼다.
그 뒤 며칠 후, 주말마다 서부영재교육원에 다니는 초등학생 큰 아들이 과제로 고민중이었다. 아이들에게 설문조사를 해야 하는데, 설문항목이 문제였다. 녀석이 정한 주제는 ‘초등학생은 왜 야채를 먹지 않을까?’ 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지구온난화, 경제, 과학 이런데 주제를 정했다는데, 이놈은 정말 현실적인 문제를 정했다. 자기도 야채 안 먹으면서 무슨 야채타령인지? 아내와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녀석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 숙제니깐.
설문항목을 정하는데 고민하는 녀석에게 내가 챗GPT 얘기를 꺼냈다. 당연히 처음 듣는 아내와 아이는 무슨 소리냐며 무관심을 주었고, 나는 세상의 흐름 속에 어쩌면 좋은 답변을 제공할지 모른다며 컴퓨터를 켰고, 챗GPT에 접속하고 로그인을 했다.
‘초등학생은 왜 야채를 먹지 않을까?’
‘초등학생이 야채를 먹게 하는 방법은 뭘까?’
(나도 이 당시까지만 해도 원초적인 질문만 했었다.)
이런 식으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고, AI는 ‘물론입니다.’라는 답변과 함께 거침없이 답변을 내어주었다. 챗GPT에 초보자인 나는 여기까지였다. 이 답변을 가지고 아이에게 설문에 적합한 것으로 만들라고 건넸고, 녀석은 그것으로 초등학생답게 어설프게 설문조사표를 만들었다. 아빠가 더 도와주고 싶지만 이미 AI의 도움을 받았기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AI가 아이들의 창의력을 뺏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이들이 앞으로 마주보게 될 세상은 내가 살아온 세상과 전혀 다른 것이고, AI가 더 삶의 깊숙이 들어올 것이기에 걱정을 길게 하진 않았다.
짧은 AI의 도움과 아빠가 알려준 구글 설문, 구글 프레젠테이션을 활용하여 녀석은 멋지게 설문조사와 ppt를 혼자서도 완성하였고, 2주 뒤 발표를 통해 멋지게 마무리하였다. 개인적으로 수학영재원을 통해 수학학습능력 향상보다는 이렇게 조사를 하고 구글 플랫폼을 이용해 설문과 제작을 하는 과정을 경험한 것이 더 좋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티스토리라는 다음블로그에 챗GPT를 이용해서 구글 애드센스 승인을 위한 글쓰기에 도전하였고, 아쉽게도 AI의 한계를 느끼며 실패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조금 더 챗GPT와 친숙해졌고, 질문을 통해 얻어내는 정보를 재가공하고 편집하는 일에 익숙해져있었다. 물론 무료로 제공하는 3.5버전의 한계를 인식하며 그렇게 나에게서 챗GPT는 조금씩 멀어져갔다.
5개월이 지나고 지금으로부터 두어 달 전쯤, 내 직장인 병원에서도 챗GPT를 활용하는 분위기가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병원에서 무슨 AI가 도움이 될까라는 과거 경험의 편견으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얘기치 못하게 챗GPT를 조금 더 깊게 공부하는 원무팀 직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홍보팀에 챗GPT가 도움이 될 거 같다고.
병원에서 ‘글’에 대해서 담당하고 있는 나는 반문이 들었다. ‘글’을 어떻게 AI의 도움을 받을까? 특히 영어에 기반을 두는 AI는 한글로 표현력이 부족했다. 더구나 여기는 병원이라 의학적 전문지식이 들어가야 되고, 내가 쓰는 글들은 그 중에서도 감성적인 글, 병원만의 특색을 살리는 글, 개인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글들을 쓰는데, 어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은 갇힌 사고방식을 통해 그 직원을 만났고, 한 시간 가량의 학습과 실제 재현을 통해 내 사고의 틀은 변해갔다.
챗GPT에 대한 깊이는 당연히 나보다 깊었다. 그는 학습을 통해 챗GPT의 도움을 받고, 그것을 재가공해서 병원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무료 3.5보다 유료 4.0이면 훨씬 그 기능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 직원의 인품이 워낙 착해서, 혹시 자기의 아이디어가 나를 힘들게 하진 않을까 조심스레 얘기도 했고, 미안해하는 표정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일이 나를 힘들게 하기 보다는 나를 편하게 해주려 한다는 것을.
‘나는 직감했다. 이 변화를 내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살다보면 긍정적인 변화도 피하고 싶은 변화도 있다. 그렇게 세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달라지고, 어쩜 나는 챗GPT라는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도서관에 가서 챗GPT 관련도서 5권을 빌렸다. 물론 이 5권을 2주 만에 볼 생각은 없다. 이 5권중 나에게 가장 맞는 책 2권을 독파하였고, 그렇게 나도 챗GPT를 나의 일상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몸(體)’을 움직이는 진통이 ‘깨달음(認)’을 가져오고,
깨달음이 와야 ‘지식(知)’이 탄생합니다.
변화는 머리 좋은 사람이 일으키기보다
손발을 움직여 우직한 실천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갑니다.
_유영만《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위너스북)
챗GPT와 함께하며 많은 것이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 하더라도 본질까지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글’로써 병원을 ‘그리는’ 본질은 바뀌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