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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 동하다 Mar 02. 2024

주차 긁힘 합의금으로 38,000원이면?

배려가 가면 배려가 온다. 감사가 가면 감사가 온다.

    저녁 늦은 시간에 낯선 번호로 폰이 울린다. 010으로 시작해서 일반 휴대폰임을 알고 전화를 받는다. 상대방은 떨린 목소리로 내 차번호를 부르며 차주임을 묻는다. 아파트 단지 내 주차한 차 길래 어렵지 않게 직감했고, 내 예상인 빗나가지 않았다. 상대 여성운전자분이 주차하다가 내 차를 긁었다는 것이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차키를 챙겨 문을 나섰다. 내 차 앞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부부가 있었고, 내가 차 앞으로 가자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나도 인사를 하며 차 상태를 확인했다. 차 앞 범퍼 우측 모서리에 흰색 페인트가 칠해져있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심하게 긁혀 검은색 부분이 드러난 곳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범퍼가 깨지거나 움푹 들어가지는 않았다. 아마도 여성분이 후진주차를 하다가 본인의 왼쪽 옆면을 나의 오른쪽 앞쪽을 접촉했을 것이다.


    비슷한 경험이 한 번 있던 터라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상대방의 질문에 나는 ‘보험처리 하시는 게 가장 좋지 않으냐’고 대답했고, 상대도 그러하겠다고 했다. 비록 중고차이긴 하나 몇 달 전에 구입한 차라서 외관은 긁힌 곳 하나 없었기에 보험처리로 범퍼 도색이나 교환이 맞을까라는 생각이 서로 일치했다. 특별히 가해자와 피해자라 할 것도 없는 주차 접촉사고에 서로의 연락처를 한 번 더 주고받았고, 늦은 시간이라 내일 오전에 보험회사를 통해 연락 준다는 말을 남기며 발길을 돌렸다. 아파트 같은 동이지만 라인이 달라서 각자의 출입문으로 들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피곤함을 각자 안은 채 사라졌다.



이미지 : freepik (사건과 무관)

    다음날 출근길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보험처리를 하면 내가 차를 끌고 보험회사에서 지정해주는 정비소에 가야한다. 내 차를 맡기면 비슷한 차로 대차해서 들고 와야 한다. 직장 일과시간에 시간을 내거나 점심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직장 건물 관리사무소에 사정을 얘기하고 임시차량으로 주차 등록도 해야 한다. 아파트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차가 수리되면 또 일과시간에 차를 찾으러 가야 한다. 주차재등록도 해야 한다. 내 잘못도 아닌데 불편함은 오로지 내 몫이라는 생각에 귀찮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출근 후 업무의 집중력이 흐려질 때, 접촉사고를 낸 여성에게 전화가 아닌 문자가 온다. 그녀는 얼마 전에도 보험처리를 해서 이번에 또 처리하면 보험료 할증이 많이 된다고 현금 10만원으로 대신하면 안 될까 공손히 묻는다. 앞선 불편함과 귀찮음, 그리고 사실 차가 살짝 긁혔다고 내 운전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점, 비록 구입한지 얼마 안 된 깨끗한 외관이긴 하지만 내가 차 외관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 까지 이르렀을 때 내 스스로에게도 합의점을 찾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다.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이다. 분명 상대방은 전날에도 잠을 쉽게 자지 못했을 터이다. 사고 냈을 때 자신에게 짜증도 났을 것이고, 남편에게 급히 전화해 사건에 대해 실랑이를 벌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렵게 용기 내어 전화를 걸었을 터이다. 다음날 보험회사 할증 소식에 전전긍긍 하다가 뒤늦게 용기 내어 10만원으로 합의를 보려고 하고 있는 상대방의 입장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이미지 : freepik

    주차시 접촉사고의 암묵적 관행은 현금합의가 많이 이뤄진다는 것을 나는 운전초보때 경험했다.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친구차를 운전하고 주차하다가 실수로 주차해있던 차를 긁었던 기억이 있었고, 그 당시 20만원이라는 합의금을 지불했던 뼈아픈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그 돈 마련을 위해 대학교 강의실 청소를 하며 근로장학금을 6개월간 했었다. 세상물정 아무것도 몰랐고, 가슴 졸여 상대방에 달라는 대로 돈을 줬던 나의 그 시절이 불현 듯 떠올랐다.


    사실 이번에도 10만원 받고 수리 안하면 그뿐이다. 근데 나의 어릴 적 모습과 상대에 대한 감정을 생각하는 순간 조금 더 배려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장문의 문자로 상대방을 걱정해주고, 10만원을 줘도 나는 아마 고치지 않을꺼라는 점을 얘기했다. 그래서 차량이 긁혔을 때 색칠하는 붓펜만 사달라고 전했다. 내 차량색상과 함께 친절하게 링크도 알려줬다. 이것저것 하니 38,000원이었다. 10만원을 받고 내가 구입할 수도 있지만, 대신 상대방에게 구매해서 받고 싶다고 했다. 이건 단순히 물품구매를 미루는 게 아니다. 상대방이 피해차량의 물품을 직접 구매해주고, 만나서 전달까지 하는 것이 일종의 책임감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딱 거기까지다. 다른 건 필요 없다고 했다. 그저 38,000원치 차량도색 용품 3가지만 구매하면 끝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당신의 차량도 같이 구매해서 셀프로 도색할 것을 권했다. 굳이 보험회사와 자동차정비소에게 좋은 일을 시킬 필요 없지 않느냐라며 이쯤해서 마무리 하자고 제안했고, 상대는 너무 감사하다며 거듭 인사로 마무리 지었다.



< 실제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 >
배려가 가면 배려가 온다. 위로가 가면 위로가 온다. 감사가 가면 감사가 온다.
여름에게 따뜻한 시간을 선물한 가을은 모진 겨울을 만나지 않는다.
_정철《동사책》(김영사)


    4일 후 상대방에게 제품구매를 다 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퇴근길 물품을 받음으로써 그날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렇게 해도 정말 되는지, 너무 미안하다.’라는 그녀의 사과에 거듭해서 괜찮다고 말하며 돌려보냈다. 그날 저녁식사 후 나는 셀프세차장으로 갔고, 시원하게 외관세차 후 본격적으로 색칠을 시작했다. 생각처럼 깨끗하게 복원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차의 상처는 빨간색 페인트로 얼룩이 지겠지만, 상대방은 어릴 적 상처에 바르던 마법의 빨간약처럼 마음이 치유되었을 꺼라 믿어본다.



< 실제 내 차량 긁힘 >

봄을 앞두고 다시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

셀프세차 후 마른수건으로 닦기도 전에

남은 물기들이 그대로 얼어버렸던 어제.


‘세차비라도 받을 걸 그랬나?’


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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