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남자친구들에게 <만난 여자들 중 가장 어려웠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나란 사람. 아마 난 예민한 사람 일 터. 지금 남자친구에게도 '손바닥 뒤집듯 말 바꾸기'를 수도 없이 해왔다. 집만 해도 그렇다. 난 빚을 왕창 내더라도 집을 사자고 했다가, 월세 살면서 수도권에 투자하자고 했다가, 최근엔 지방투자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또다시 수도권 투자를 하자고 돌아왔다. 심지어 남자친구는 정식으로 결혼하자고 하지도 않았고 결혼 과정이 진행되고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나의 넘쳐나는 불안은 입을 통해 배설되고 있다.
#2
손을 씻으며 내 인생의 기준이 있어야 불안하지 않을 거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지금까지 내 기준은 <실패하지 않기>였다. 실패하는 것은 뭘까? 돈이 없어서 단칸방에 사는 것, 엄마처럼 이혼한 것,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것,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날 사랑하지 않는 것.. 슬프게도 내가 손쓸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경험하는 삶>, <행복함을 자주 만끽하는 삶> 이런 멋진 것들로 만든 인생의 기준도 있는데 나는 왜 손에 쥘 수 없는 것들에 스스로를 내맡기며 사는지?
#3
기준 없이 사는 인생은 고통을 곱절로 느끼는 것 같다. 기준 안에서 소화되지 못하는 문제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잣대 없는 삶은 자신을 갉아먹는다. 기준은 종교, 가치관, 신념, 가훈 같은 것에서 찾을 수 있을 터. 책을 펴야 할지, 성당을 가야 할지, 멘토를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지 감을 못 잡겠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몰라서인 듯하다.
#4
나는 엄청난 겁쟁이다. 불친절한 편의점 아줌마와 만나기 싫어서 남자친구에게 부탁했다. 업무를 잘 하던 직장동료가 질투 나는 마음에 그의 컴퓨터 메모를 가져온 적도 있다. 비겁했다. 사랑의 정의는 '누군가 나에게 끝없이 주는 것'이라서 요구하는 법만 알고 주는 법은 통 모른다. 재테크 기준도 없어서 유튜브에서 아파트 추천만 하면 마음이 설렌다. 이 모든 것이 기준 없이 살아서 나타나는 일이 아닐까?
#5
어울리지 않게 20대 초중반엔 <깊은 교감을 하고 사랑을 나누며 사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열아홉, 지나간 인연이지만 고마운 친구들을 만나 온전히 또래집단에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그 친구들과 있으면 나는 그저 나였다. 누가 날 욕할까 봐, 미워할까 봐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스물하나, 헬스장에서 카운터를 1년쯤 봤다. 매일 보는 고객들과 익숙해지며 긍정적인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 좋았다. 마음과 마음이 닿아서 서로 호감을 느끼는 순간이 행복했다. 이 경험으로 나는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깊숙한 마음을 나눠본 과거가 없기에 얕은 마음도 내게 크게 와닿았던 것이다.
연애를 안 해봤을 땐 설레는 마음, 그 자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연애를 해본 사람은 안다. 사랑을 시작하면 다양한 감정과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그럼에도 연애를 하는 이유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카드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설렘 단계(Level1)에서 포기하면 깊은 사랑(Level99)은 영영 만날 수 없다는 것. 1+1처럼 깊은 사랑엔 여러 문제들이 따라온다. 문제가 싫어서 그 길을 떠나지 않으면 <깊은 교감을 하고 사랑을 나누며 사는 인생>은 가질 수 없다.
아주 조금만 더 경험에 적극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더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그것을 허락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