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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song 꽃song May 03. 2024

품으려 하면 꽃, 뽑으려 해도 꽃

민들레가 내게 묻는 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 뒤의 숲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많다. 그래서 숲의 큰 바위들을 활용하여 높이 축대를 쌓고 복토를 하여 집을 지은 것 같다. 산기슭뿐만 아니라 집 뒤쪽으로 흐르는 개울과의 경계에도 모두 엄청나게 큰 바위들로 축대를 쌓아놓았다. 그리고 마당은 풀을 나지 않도록 하려고 했는지 작은 파석들을 깔아놓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석축상태의 큰 바위들의 위용이 특별한 느낌이 들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얼마쯤 지나자, 조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집둘레가 온통 큰 바위들인 데다가 마당마저 작은 돌들로 뒤덮여 있으니, 돌의 기운이 너무 강해 보이면서 삭막한 느낌 들었다.




 마당에서 집으로 올라가는 길은 돌계단으로 되어 있었다. 어느 날부터 계단 빈틈사이에 민들레꽃이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차갑고 삭막하게 느껴졌던 돌계단에 노란 민들레가 여기저기 피어있으니 여간 보기 좋은 게 아니었다. 어서어서 더 많이 번져서 온 마당까지 노랗게 물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이웃에 사는 동네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민들레꽃들을 보더니 한마디 하셨다.


" 저거, 뭐 하려고 그냥 두고 있어. 얼른 뽑아내 버려! 그냥 두면 나중에 골치 아파질 거야."


 그때 내게, 민들레꽃은 너무나 이쁘고 사랑스러운 꽃었기에 언니가 한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다.


" 아니 이렇게 예쁜 꽃을 왜 뽑아요. 어서 빨리 우리 집 마당에 쫙 번졌으면 좋겠는데요."


언니는 "아이고 참나, 두고 봐."하고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려가셨다.




 한동안 민들레는 여기저기 싹을 틔우고 또 꽃을 피우면서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 몇 송이의 민들레꽃이 오종종 피어있는 모습이, 꼭 두레밥상을 두고 오순도순 둘러않 밥을 먹는 풍경 같아 짧은 시 어보며 좋아했고, 여기저기 조그만 병에 민들레를 꽃아 두고 뭇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한편으론, 부지런히 울타리와 마당 주변과 축대의 바위틈 사이에는 꽃나무들을 사다 심기 시작했다. 점차 내가 좋아하는 나무와 꽃들로 썰렁했던 공간들이 채워져 갔다. 


  이듬해 봄이 되었다. 여기저기 민들레 싹이 나는 듯싶더니 뜰안 사방에서 민들레꽃이 피고 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그즈음, 에는 좋아하는 꽃과 나무들로 뜰과 집둘레가 보기 좋게 자리 잡아가고 있는 중이었. 빈틈만 있으면 사정없이 싹을 내리고 있는 민들레를 보작년에 우리 집을 다녀가면서 하신 언니의 말이 생각났다. '거였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차, 싶었다. 그제야 민들레싹들을 뽑아보려고 하니 어찌나 단단히 뿌리가 박혔는지 뽑는 일여간 어려운 것 아니었다. 며칠을  낑낑대며 눈에 보이는 민들레란 민들레는 다 뽑아내었다. 그런데 웬 걸, 며칠이 지나자 어디서 또 날아와 싹이 텄는지 여기저기, 이곳저곳에서 다시 타났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모든 뜰과 텃밭을 다 점령해 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어마무시한 번식력이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민들레 싹 하나는 이제 내 눈에 여러 송이 민들레꽃다발로 보이기 시작했고 민들레꽃 한 송이는 수십 개의 민들레 싹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집 뜰안에서  민들레는  더 이상 꽃이 아니었다. 마당과 뜰을 가꾸는 데 있어 제일 먼저 뽑아내야 할 퇴출 1호, 잡초가 되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뽑으려 할 때마다 민들레꽃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잦아졌다. 민들레싹이 보일라치면, 재빨리 뽑으려고 다가서는 내게, 민들레는 따져 묻기 시작했다.


"왜 재들은 가만 두고 나만 뽑으려 하는 거예요? 나는 꽃이 아닌가요? 너무 해요. "


"아니, 너도 예쁘긴 한데 내가 가꾸려는 공간에 네가 아무 데나 그렇게 많은 자리를 차지하면 내가 감당이 안 돼서~. 미안하지만 너는 우리 집 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나도 어쩔 수 없어. 미안해"


 민들레는 물러서지 않고 끊질기게  항의하듯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요. 나도 꽃이에요. 꽃이란 말이에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예쁘다고 자주 쪼그리고 앉아 흐뭇하게 바라봤잖아요." 


 그쯤 되면 뭐라 뭐라 궁색한 변명을 어놓고 있던 나 할 말이 막혀 얼른 뽑아내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곤 하였다. 사람마음이 참 간사하게도, 내 필요에 따라 꽃으로 보기도 하고 잡초로 보기도 하는가 싶어 민들레를 뽑을 때마다  미안하고 쩔쩔매는 심이 되 것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민들레꽃은 우리 집 뜰안에서는 뽑아야 할 잡초이고, 길가나 들판에서 사랑스럽고 예쁜 꽃이라고 내 나름대로 정리가 되었다.

 그러나 민들레꽃이 내게 따지듯 묻던 말들은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니며 다른 풀꽃들을 마주할 때에도  또다시 그와 같은 실랑이 반복하게 했다.

 



   부처님 오신 날, 우연히 인근에 있는 사찰에 들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리고 있던  나눔 장터에서, 나태주 시인의 '꽃밭에서'라는 시가  쓰여있는  기왓장을 보게 되었다. 시의 배경으로 냉이꽃이 그려져 있는 멋진 시화 기왓장이었다.

꽃밭에서/나태주


뽑으려 하니 모두 잡초였지만

품으려 하니 모두 꽃이었습니다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였을까? 그 시구가 내 마음을 자꾸 두드렸다.

나는 얼마의 시줏돈을 드리고 그 기왓장을 집으로 모셔와 돌계단 입구에 잘 보이게 세워두었다.

 그리고 매일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민들레가 뾰족하게 내게 묻던  '무엇이 꽃이고 무엇이 잡초인가?'라는 질문에 여전히 궁색한 변명을 거듭하며 살고 있다. 꽃밭지기의 숙명이 아닐까 생각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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