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로 오시는 봄>
봄이 우리 가까이 와있다는 것을 제일 먼저 알 수 있는 것은 작은 새들의 지저귐을 통해서이다. 2월 초순쯤부터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유난히 경쾌하고 떠들썩해진다. 이른 아침부터 저희들끼리 밤새 안녕을 묻고 화답하는 새들의 소리는 정말 듣기 좋다. 얼마나 수다스러운지, 새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종종 내 멋대로 짐작해 보며 혼자 웃는다.
"얘들아, 안녕? 어젯밤은 잘 잤니?"
"나야, 엄~청 잘 잤지."
"그럼, 너는? 너는?"
"글쎄 어젯밤에 내가 꿈을 꾸었는데, 엄청나게 큰 앨버트로스로 변해 시속 127km로 수평비행을 해봤다는 것 아니겠니?"
"어머머머! 정말? 정말? 진짜 신났겠다. 나도 꿈에서라도 한번 그렇게 빠르게 날아봤으면. 오늘은 나도 하루종일 앨버트로스 생각만 해볼까 봐, 혹시 알아? 오늘 밤 나도 꿈을 꾸게 될지. 잘하면 내가~내가 말이야. 앨버트로스가 되어 세상에 소문난 것처럼 독특하고 아름답다는 짝짓기 춤을 추게 될지도 모르잖아.ㅎㅎㅎ 생각만 해도 너무 신난다ㅎㅎㅎㅎ"
"아이, 얘는 부끄 부끄~. 그래, 안될 것도 없지. 뭐. 꼭 꼭 그렇게 되길 바랄게. 어, 잠깐만, 엄마가 날 부르시는 것 같아. 얼른 아침밥부터 먹고 나서, 이따 다시 만나 또 얘기 나누자~안녕. 이따 봐"
작은 새들이 끊임없이 지저귀는 속에서, 간간이 중저음의 산비둘기(멧비둘기)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꾸우꾸우~꾸꾸 , 꾸우꾸우~꾸꾸, 꾸우꾸우~꾸꾸,~~~.'
산비둘기 소리는 언제 들어도 구슬프다. 온 몸통을 울려가며 어쩌면 저리도 애절하게 우는 걸까? 저렇게 울다가는 금방이라도 목이 쉬고 힘이 달려 쓰러지고야 말 것만 같다. 다른 새들의 지저귐은 노랫소리처럼 밝고 경쾌하게 들리는 데, 산비둘기만큼은 언제나 통곡하며 우는 소리처럼 들린다. 멀리서 울려 퍼지듯 들리는 소리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 애절한 사연 좀 하루종일 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산비둘기 소리가 들릴라치면 놓치지 않고 가만히 집중하여 귀를 더 기울여보게 된다.
*산비둘기 소리 : https://www.youtube.com/watch?v=jpKRIo9rm20
작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우연히 산비둘기에 대한 이런저런 궁금증을 풀게 되었다. 평소처럼, 멀리서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날은 산비둘기가 구슬피 울 때의 표정과 모습은 어떠한지 가까이서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한참을 이쪽저쪽 가늠해 보다가, 문득 머리 위에 있는 전선줄을 바라보게 되었다. 먼 곳만 바라보며 찾던 산비둘기가 바로 머리 위 전선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몸을 부풀려 가며 '꾸우꾸우~꾸꾸' 울어대고 있었다. 항상 먼 곳에서 들린다고 생각했던 소리가 그처럼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소리였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소리 내어 울 때의 모습이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어서 살짝 사기당한 느낌이 들었다. 천연덕스러워 보이기까지 해서 '후훗' 웃음이 났다. 그걸 알고 난 후에는 산비둘기소리가 들리면 바로 주위를 둘러 찾아보게 된다. 지금도 산비둘기 우는 소리는 여전히 구슬프게 들린다. 하지만 리드미칼 하게 '꾸우꾸우~꾸꾸, 꾸우꾸우~꾸꾸, 꾸우꾸우~꾸꾸, 꾸우꾸우~꾸꾸' 하고 우는 소리를 한참 듣고 있다 보면, 오히려 어떤 안정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숲에서 살다 보면, 사소한 것들도 눈여겨보게 되고 세심하게 관찰하게 되어 모든 것이 흥미진진하다.
산비둘기
장 콕토(1889~1963, 프랑스)
산비둘기 두 마리가
상냥한 마음으로
사랑했지요.
그 나머지는
차마 말씀드릴 수 없네요.
< 빛깔로 오시는 봄 >
어쩜 좋아!
나를 바람나게 하는 봄산을!
아니, '실컷 바람날 테야, 봄바람나고 말 거얏!'하고 외치게 만드는 봄산을!
4월도 2주째 접어들면 온 산이 뭉게뭉게 연분홍(산벚나무꽃)과 연둣빛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띤다.
연둣빛이 어쩜 저리 다양할까? 연노랑빛 연두, 연베이지빛 연두, 연갈색빛 연두, 그냥 우리가 아는 연두, 푸른빛 도는 연두, 좀 더 짙푸른 연두. 명도와 채도를 달리하여 세상의 모든 연두가 총출동하여 봄산을 일렁이게 한다. 그리고 쿵! 심장을 내려앉게 만든다. 송희 시인의 시처럼.
연두
송 희
덜컥, 저 연두만 보면 당신도 심장이 내려앉지?
푸르르 감전이 되지?
손톱만 한 게 정곡을 찌르며
다물고 있던 꿈을 말하는 것 같지?
처음 부딪혔던 그 눈빛에 바로 닿지?
쿵, 저 연둣빛만 보면
어렸을 적에는 알록달록 단풍 든 가을산이 아름다워 보이더구먼, 나이 들어가고 또 숲에서 들어와 살면서 봄산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나의 오감을 온통 헤집고 다니며 속수무책으로 점령해 버린다. 그리하여 마침내 두 손 들고 항복하며 한바탕 외치게 하고야 만다.
'나, 바람날 테야, 실컷 봄바람날 테야~.'
연두와 초록의 수혈을 원 없이 받으며 봄을 지나다 보면, 오감이 활짝 열려 몸도 마음도 어디 막힌 데 없이 잘 통하는 것 같다. 제대로 살아있구나 싶어진다
< 속절없이 가시는 봄 >
성큼성큼 봄이 왔는가 싶으면 어느 순간 속절없이 봄은 가고야 만다.
또다시 봄이 오려면 일 년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지금 이 순간도 가고 있을 봄이 못내 야속해진다.
'앞으로 내게 남은 봄이 몇 번이나 될 것인가' 하고 문득 헤아려보다가 이내 생각을 거둔다. '어느 누가 몇 번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싶다.
별수 없다. 소월도 가는 봄을 그토록 안타깝게 노래하지 않았던가. 소월의 시 '첫 치마'를 읊조려보며, 오시는 듯 가시는 봄을 가만히 느껴볼 수밖에. 올봄이 마지막인 양, 가시는 봄을 온전하게 느끼며 보내드리는 수밖에.
첫 치마
김소월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지고 잎진 가지를 잡고
미친 듯 우나니, 집난이는
해 다 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 치마를
눈물로 함빡이 쥐어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을.
*첫치마/김소월 시/조수미 노래 : https://www.youtube.com/watch?v=86VBuPSay7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