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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song 꽃song Jul 15. 2024

누가 제발 나 좀 말려줘!(2)

아니, 그냥 내버려 둬!

 작년에 새롭게 만들어진 라라정원이 한해지나고 나니 조금 더 풍성해졌다. 삽목하고 이식하여 어느 정도 심어 놓은 식물들이 다행히 뿌리를 잘 내리고 월동하여 새끼를 쳤다. 그러나 식물들의 키높이와 빛깔을 고려하지 않고 급히 심어 놓은 상태라서 재배치 필요했다. 빛깔의 조화를 고려하고 계절별로 끊임없이 피고 질 수 있도록 하려면 더 많은 종류의 꽃들 들여야 했다.  꾸며진 정원을 바라보는 일은 우아하고 한가롭지만 정원을 가꾸는 일은 땀과 수고가 끝이 없다. 방송에 나온 어느 정원지기가 한 말에 깊이 공감한 적이 있다. "른 일과 달리 원일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 있어 삶에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좋다고." 그때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마 이소리를 정원일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고? 그럼에도 끝나지 않는다고?" 하며 진저리를 쳤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부터 또다시 작년에 남겨두었던 돌땅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곳을 그냥 두는 한 풀씨들 새 정원으로 날아들 것이 뻔했다. 덩굴 뻗기 선수들인 으름덩굴과 억새 쑥뿌 쳐들어 오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겉보기엔 예초기로 풀을 베어내니 초록초록한 게 보기 좋았지만, 땅속에서 뻗고 있을 줄기와 뿌리들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 계속 마음에 다.


 이런저런 바쁜 일들로 3월과  4월 두 달 동안은 정원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눈에 안 보이니 또 무심해지는 듯싶었다.

어쩌면 일부러  그쪽을 들여다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한번 들여다보면 그때부터 내가 나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걸, 그렇게 되면 꼭 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할 일들에 집중할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찬란한 오월이 되어 온 세상에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니, 무리 바빠도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었다. 새롭게 배우기 시작 공부들과 기존에 이어오던 공부를 하러 외출해야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또다시 정원으로 출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느새 내 손에는 호미와 전지가위와 낫이 쥐어있었고 남겨진 돌땅의 갈대뿌리와 돌덩이들과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

 시작할 때의 생각은 작년에 완성한 정원 근처의 풀과 덩굴식물들만 깔끔하게 정리하 것이었다.  막상 시작하고 나니 마저 끝을 봐야겠다는 욕심이 났다. 풀과 덩굴을 제거하고 억새, 으름, 사위질빵의  뿌리를 뽑아낸 다음, 큰 돌덩이는 살리고 돌멩이는 캐내는 일이 반복되었다. 캐낸 돌멩이로 작년에 만든 정원에 이어서 길을 만들고 정원형태를 구성해 나갔다. 멀리서 가까이서  정원의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수시로 살펴가보완해 나갔다.




 녁이면  모든 관절들이 '쉬어라! 쉬어라!' 신호 보내왔다. 스스로 정원일을 끊을 수가 없으니 누가 제발 날 좀 말려줬으면 싶기도 했다. 정원일이 게임중독이나 도박처럼  중독성이 강한 줄을 나 홀로 정원을 만들어보면서야 제대로 알았다. 아마도 꽃이 좋아 정원일에 빠져본 사람들 백번 공감하며 맞장구칠 것이다. 우리 동네 이웃 언니 둘이 이미 나처럼 정원일에 푹 빠져 살다가 한 언니는 허리를 앓고,  한 언니는 어깨 깁스를 한지가 얼마 전 이다. 하다 일어나면 허리와 무릎 펴는 일이 엉거주춤해지며 힘이 들어가자 살짝 겁이 다. 아마 이쯤 되면 함께 사는 남편은 안 말리고 뭐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처음엔 몇 번을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무리 말해도 한번 시작하면 끝장보고야 다는 걸 알고 난 금은 "그렇게 하루종일 일하면 안 힘들어?, 깜한데 뭐가 보이기는 해?"하고 보는 걸로 그친. 




 어느 날은   스스로 안 되겠다 싶어 어디 지리산자락이라도 한 바퀴 휘돌다가 시원한 카페에서 책이나 읽고 오자고 남편에게 청했다. 내가 나를 말려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하루 그렇게 정원일을 끊어내고 저녁에 돌아온  날, 저녁밥도 거른 채 그날 못다 한 일까지 두배로 일하며 깜깜하도록 또다시 정원에 앉아 있었으니, 중독도 이런 중독이 없다 싶다. 그러니 이건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되는가 싶어 또다시 '누가 제발 날 좀 말려줘!' 하고 외치고 싶어 진다. 그러다가  뒤이어 이생각 

  '정원은 가장 재미있는 나의 놀이터이다. 나를 살맛 나게 한다. 나를 웃게 한다. 내 마음을 가득 채워준다.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거뜬히 해내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보다 6개월 먼저 은퇴한 아랫집 아저씨는, 은퇴 후 너무너무 심심해 어느 날 군청에 가서 이게 소리쳤다고 한다

"나 심심해 우울증 걸리기 직전이니 내게 일자리를 마련해 달라"라고. 그 간절한 호소가 통했는지 그 이후로 일자리를 얻어 지금껏 다시 일하러 다니신다.

 비단 아랫집 아저씨뿐만 아니라 은퇴 후 삶이 무료하고 지루해 우울하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그걸 생각해 보면 정원일이 즐거운 나는 밤이 오는 게 싫고,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드니 복도 이런 복이 없다 싶어 진다.

'누가 제발 나 좀 말려줘!'하고 외치려다가 행여라도 누가 날 말릴세라 재빨리 속으로 '아니, 그냥 날 좀 이대로 내버려 둬'라고 바꿔 소리게 된다.




 오월이 지나고 유월초에 접어들자, 마침내 남아있던 돌땅은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이제 더욱 넓어진 라라 정원에 꽃과 나무로 채워 넣는 일이 남았다. 일부는 화원에서 새로 사다 심기도 하고, 줄기를 꺾어 삽목 하기도 하고, 기존 정원에서 캐어다 심기도 하며 정원 안을 채워나갔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는 물 주랴, 비가 오는 날이면 삽목과 이식하랴, 꽃이 지면 꽃 베어내고 다음 꽃 준비하랴, 쉬지 않고 돋아나는 풀 뽑으랴. 두 달을 숨 돌릴 틈 없이 산 것 같다. 더없이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었다. 밤이면 낮에 한 일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즐거움이 이어지고 손길이 갈수록 더욱  예뻐질 정원을 상상해 보는 기쁨이 뒤따랐다. 그리고 이다음엔 어떤 일을 벌여볼지, 이곳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각들이 꿈속까지 따라왔다. 한동안, 그 즐거움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기록하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로 이 모든 순간을 온전히 누리고 싶어서 글 쓰는 걸 미루고~ 미루었다'라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여 줄사람이 몇 있을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찬란한 계절에, 두고두고 신나게 놀아 볼 놀이터, 라라정원을 원 없이 내 맘대로 만들어 보았으니!


 브런치에 글을 쓰는 대신, 온몸과 마음으로 땅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보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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