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song 꽃song May 11. 2024

발에는 흙을! 마음에는 바람을!

책 보다 자연

 꽃밭의 가장자리를 곡에서 주워온 돌멩이를 이용하여 단장을 하다가, 곡선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돌멩이를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다듬어본다. 몇 번을 이렇게 저렇게 뺏다, 넣었다, 틀었다  맞춰가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고 보기 좋은 상태가 된. '몸으로 익히며 배우는 것이 힘이 세구나' 싶다.

 



  숲으로 이사오기 전,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책으로 위로받, 책을 통해 배우고 성장며, 책에 몰입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하루라도 책 읽기를 거르면 마치 하루를 굶은 것처럼 금방 허기가 졌었다.

 그러던 내가 숲에 기대어 살게 되면서 책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밖이 너무 궁금해 책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니, 책 보다 더 재미있는 일들이 많아졌다고 해야 할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피부로 느끼고, 손으로 만고, 흙을 밟는 일이 내 마음을 더없이 행복하고 충만하게 해 주었다.


  딱히 외출할 일이 없는 날이면, 아침에 눈을 뜨지 마자 (하루 2끼 식사(점심, 저녁)) 꽃밭으로 달려 나간다. 그곳에서 아침체조를 하고 맨발로 거닐며 꽃들과 눈 맞춤을 하면서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눈에 띄는 풀을 뽑나 보수하는 , 그때그때 필요한 일들을 하다 보면 나절이 훌쩍 지나 있을 때가 많. 어떨 때는 꽃밭일이 너무 즐거워 점심식사 화장실 다녀오는 일조차 걸리적거릴 때가 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식사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날이 많아져서 남편이 한동안 힘들어하기도 했었다. 행히 지금은 포기한 건지, 적응한 건, 때에 내가 들어오지 않는다 싶으면 '그러려니' 하고 먼저 챙겨서 먹는다. 둘이 살고 있으니, 웬만하면 식사만큼은 함께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번번이 때를 놓치고야 만다. 




  자연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을 당시, 자연에 대한 잠언집을 즐겨 읽며 마음을 달랬었다. 그때 읽었던 글  '발에는 흙을'이라는 작자미상의 시가 있었는데, 자연의 삶을 짧고도 간결하게 잘 표현하고 있어 수시로 암송해 보길 좋아했었다. 그때마다 '매일을 이렇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마음이 커져 애가 닳았었다. 그런데 오늘, 시처럼 살고 있는 나를 보았.



발에는 흙을 / 작자 미상


발에는 흙을

손에는 연장을

눈에는 꽃을

귀에는 새소리를

입에는 미소를

가슴에는 노래를

피부에는 땀을

마음에는 바람을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내 손으로 무엇을 만들고 완성해 보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책 보다 자연에 온몸과 마음을 쏟은 하루였다는 사실이 내 마음에 꼭 들었다. 

 요즘 즐겨 외우던  '책꽂이를 치우며'라는 시가, 한 발짝 더 깊이 다가온 날이다.



책꽂이를 치우며 / 도종환


창 반쯤 가린 책꽂이를 치우니 방 안이 환하다

눈앞을 막고 서있는 지식들을 치우고 나니 마음이 환하다

어두운 길 헤쳐나간다고 천만근 등불을 지고 가는 어리석음이여

창 하나 제대로 열어 놓아도 하늘 전부 쏟아져 오는 것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