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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Feb 29. 2024

저는 대한민국 경찰관입니다. 내 이웃의 지혜_두 번째

조금 늦으면 어때요? 이제 시작인걸요.

다섯 번째 도전해서 합격했는데 늦게라도 경찰이 되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몰라요.

좀 늦으면 어때요? 지금부터 천천히 잘해 나가면 되죠.


그래, 맞아. 늦으면 어때?

우리에게 오는 모든 시간은 다 처음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감사하며 충실히 잘 보내는  그것이 우리가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엄청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주인공 미스 김 - 김혜수 배우는 이렇게 말헀다. '점심시간은 업무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동료들과 점심을 같이 먹지 않습니다.' 혼자 점심을 먹는다고 동료들은 뒤에서 수군거리고, 회사에 동화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험담을 한다. 미스김도 잘 알고 있지만 그 시간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직장의 신 - 미스김

어느새 나도 직장의 신 미스김과 비슷한 행보를 하고 있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 늦게 밥을 먹거나 밥이 먹기 싫어서 샌드위치를 먹거나 아무튼 동료들과 함께 하는 식사 시간에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식사 전후로 산책을 한다. 처음에는 동료들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굳이 싫다는 사람들에게 산책을 제안하는 일도 제안받는 일도 서로에게 힘들 수도 있겠다 싶어 이제는 편안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편이다.


출근해서 폭풍 같은 아침 업무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수많은 소음들에 시달리는데 잠시나마 머리와 마음을 쉬게 해 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주로 점심시간에는 조용히 산책을 하면서 마음과 머리를 비워낸다. 특별히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우고 바람. 햇살. 새들을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어린이 공원 마스코트 마시마로

아주 운이 좋게 일하는 곳의 바로 뒤편에 멋진 공원이 있다. 대통령실 바로 앞에 있는 용산 어린이 정원이다. 작년 5월에 개장한 이후로 일주일에 4번은 산책을 한다. 처음 그곳이 연합사의 내부였던 때, 지금과는 많이 다른 그곳을 산책하기도 했었다. 용산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한 후에 한동안 폐허처럼 버려져 있던 곳을 어린이 정원으로 조성해서 개방했다. 대통령실이 있어서 출입절차가 까다롭지만 한 번만 예약해서 들어오고 나면 현장입장이 가능해서 한 번의 노력 이후로 자주 방문하고 있다.


그곳을 산책하다 보면 귀에 인이어를 착용하고 큰 나무 아래서 서성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제복을 입고 근위병처럼 서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대통령실 전담 경호 경찰들이다. 공원을 산책하는데 경찰들이 너무 많아서 괜스레 발걸음이 주저해지기도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먼저 인사를 하고 다닌다.


'안녕하세요. 수고가 많으시네요'

'추우시죠? 힘드시겠네요'


아주 무표정하게 있던 경찰들도 그런 인사를 하면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네. 감사합니다'라고 답을 하거나 멎적어하면서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어쨌든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에게 지나가면서 한마디 건네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인사를 하는 도 기분이 좋아지기도 해서 열심히 인사를 하고 다닌다.

 

어느 날 그날따라 마음이 많이 무거워서 공원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전망대를 올랐다. 전망대라고 해야 아주 낮은 언덕이지만 그곳이 나무그늘 아래 앉아서 아래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그곳에 앉아서 잠시 멍하니 생각을 비워내고 싶었다.

 

하필 그 장소에 경찰이 서 있었다. 잠시 고민을 했다. 내가 저 사람이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일까? 저기 올라가면 안 되는 것일까? 그래도 오늘은 저곳에 가고 싶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쏜살같이 올라가서 물었다.


'저, 여기 앉아 있어도 되나요?'

'아, 네, 물론입니다.'

'제가 방해가 되는 건 아니죠?'

'네, 괜찮습니다.'

'아...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나요?'

'네, 잠깐은 괜찮습니다. 임무하달 될 때는 집중하면 됩니다.'

'아... 그렇군요.'


그날따라 나는 참 마음에 찬 바람이 불었었나 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었나 보다.

그래서 또 말을 건네고야 말았다.

정원 나무

'저 그럼 저랑 이야기 좀 해도 돼요?'

'네, 지금은 괜찮습니다면 무슨 이야기를?'

'그냥, 저는 경찰관은 아는 사람이 없어서 경찰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여기 대통령실 경호하는 건 좀 특별한 임무이니까 어떻게 선발되셨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여기서 근무하는 마음은 어떤가 궁금하기도 하고요. 하하하하'

'아... 하하하, 어디서부터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그럼 제가 물어볼 테니까 대답해 줄래요?"


 이렇게 해서 경찰 중에서도 특별한 선발과정을 거쳐서 뽑히는 곳에서 근무하는 경찰관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원래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

'아... 제가 사실은 사격 선수였는데 그게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경찰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경찰이 아무래도 현장 근무도 많고, 제가 체육을 오래 해서 그런지 사무실에 앉아만 있는 일은 잘 못하겠더라고요."


"아... 언제 경찰이 되신 거예요"

"아하하하. 제가 경찰이 된 지 이제 6개월 되었거든요. 제가 이래 봬도 나이가 좀 많아요. 00살 이거든요."

"네???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우와 생각보다 나이가 많네요. 아... 선수생활을 오래 하셨나 보다.

'아니요. 그게... 제가 경찰 시험을 엄청 많이 봤어요. 다섯 번째에 붙은 거라서... "


"우와 대단하시네요. 그렇게 계속 한 직업에 집중하는 게 쉽지가 않은데 어떻게 공부를 계속했어요?"

"사실 제가 생각해 보니까 저는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부는 안 하고 인강만 듣고 있었던 거더라고요. 인강 듣고 끝, 또 인강 듣고 끝! 이러니까 머릿속에는 남는 게 없고, 시험 치면 떨어지고, 한번 시작을 했는데 그만둘 수도 없고, 그래서 계속했죠."


"집에서 구박을 좀 받았을 것 같은데요?"

"부모님이 엄청 답답하셨겠죠... 하하하"


"어쨌든 늦은 나이에 경찰도 되고 여기서 근무하게 되어서 엄청 뿌듯하겠어요."

"맞아요. 여기 선발돼서 진짜 기분이 좋았죠."

"여기 선발되는 거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시험도 잘 보고 스펙도 잘 쌓았나 봐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뭐 특출 난 재주가 있는 건 아니라서요. 그래도 사격선수 했던 게 좀 도움을 준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은 좀 무례할 수도 있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서 다른 동료들과 지낼 때 불편하지는 않아요?"

"아.. 그런 거 생각하면 안 되죠. 그냥 들어온 기수에 맞게 생각하고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엄청 동안이라서 말 안 하면 다들 갓 졸업한 사람이고 생각할 겁니다.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진짜 최강이다. 동안 인정할게요. 하하하, "

그 늦은 나이에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사람, 그것도 경찰관으로 이제 첫 발을 내디디는 사람, 공무원 월급이 부처님 손바닥 보다 뻔하고, 요즘은 쿠팡맨보다 급여가 적다고 하는데 이제야 그 초급 경찰 생활을 시작하면서 분명히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서 슬쩍 물어봤다.


"요즘 최저 시급도 오르고, 청년실업수당 이런 것도 잘 나오고 해서 소방관, 경찰, 군인 이런 힘든 직업을 택하느니 아르바이트한다고 그런 얘기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모집정원 미달이라고 시끄럽던데 어때요?"

"하하하하하.... 솔직히 월급이 좀..... 많지는 않죠.... 뭐 아르바이트해도 그 정도는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직장이라는 게 꼭 돈으로만 계산할 수없을것 같아요. 제 직업은 좋은 직업이잖아요. 하하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어쨌든 지금 너무 습니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귀한 가치들을 많이 잊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 곳곳에 돈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가치를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 사람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지 않느냐고 그러니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도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국민의 한 사람이고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다.

 

늦은 나이에 경찰이 되어 초조하고 조급한 마음이 있을 텐데 자기 직업을 귀하게 여기고 소신 있게 살고 있는 그분과의 대화는 내 마음에 기분 좋은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마음이 너무 복잡했던 그날 그분과 함께 한 시간으로 인해 나는 많이 안정되었고, 맑아졌다.


어떤 곳에서든 내가 부여한 의미와 타인이 부여한 그것이 완벽히 일치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오늘 우리가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을 뿐이다.


한 명의 이웃에게서 소중한 지혜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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