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작곡가의 음악 사용 설명서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에런 코플런드 지음, 이석호 옮김, 포노펴냄,2016
작년 10월 13일엔가
페친인 김원철님의 피드에 짧은 글이 하나 올라왔다.
피아니스트 주 샤오메이에 대한 소개와
박종호 선생님이 조선일보에 그에 대해 쓰신 글 링크.
그리고 라이프치히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연주하는 유툽 링크.
(글 말미에 두 개 다 링크를 걸겠습니다)
처음 들어본 연주자였는데 과연 그 생애가 정말로 고난과 눈물의 연속이었으며 그래도 개의치 않고 마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 유럽에서 데뷔, 그리고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는 찬사가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였다. 골드베르크 음반만 60개가 넘게 소장하며 대부분을 다 들어본 남편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남편이 말하기를.
"주 샤오메이는 그냥 이 분의 배경에 대한 것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한번 들어보는 게 가장 좋을 듯. 그러고 나면 대체 이 연주자는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렇게 깊은 연주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해질 것이고, 그때 이 분의 삶을 알아보고 그러고 나면 이 모든 게 납득이 될 것"이라는 평이었다.
나도 이분의 연주는 정말로 좋았지만, 사실 내가 듣는 음반은 다 세계적으로 탁월함이 검증된 연주자들의 것만 듣고 있는 것이긴 하다. 내가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들었을 때에도 과연 좋다고 생각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긴 하다. 그렇다면 그건 엄밀히 말해서 내 해석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던 중 블로그 이웃님이 올려주신 포스팅에서
미국의 현대음악가인 에런 코플런드의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라는 책을 알게 되었는데 천천히 읽어가며 마킹하고 메모하면서 얼마나 좋았는지 이 책은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고 싶으며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일단은 곡을 만드는 창작자의 시선에서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좋았고, 두 번째는 책의 소개 글에도 나왔지만 읽는 독자를 결코 얕잡아보지 않으면서도 음악의 본질에 대해 차근차근 게다가 쏙 들어오게 잘 설명해 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세 번째는 문장이 유려하고 아름답다. 음악의 본질이라는 게 사실 매우 추상적인 성격이 강한 것인데 저자가 말로 잘 풀어내기 어려운 현상을 잘 풀어내려는 노력을 하셨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명쾌한 설명에 가독성도 참 좋다. 음악대학원생과 일반인을 상대로 강연을 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것은 무려 1939년이다. 그리고 1957년에 다시 개정판을 냈는데 초판이 나왔던 당시의 시대가 레코드도 그렇고 실연도 그렇고 그렇게까지 많은 음악을 마음대로 들을 수 없었던 시기였음을 생각한다면 (특히 기술적인 문제로 음반이 더 그랬겠지) 이 책의 저자가 보여주는 작곡가에 대한 이해는 정말 탁월하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게다가 현대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바꾸고 왜 그 음악을 사람들이 어려워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왜 그 음악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옛날의 음악 형식이 오늘날 현대음악에서 어떤 식으로 사용되고 변주되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예를 든다면, 파사칼리아 형식을 설명하며 바흐의 위대한 오르간 곡인 <파사칼리아와 푸가 C단조>를 악보 건 음반이건 익숙해질 때까지 겪으라고 부탁하는 한편. 이게 현대에 와서는 라벨의 <피아노 트리오>와 안톤 베베르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파사칼리아>에도 쓰이고 있다는 이야기는 나처럼 20년째 클래식 초보를 면치 못하고 낭만 이후로는 거의 듣지도 않는 게으른 청자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지점이었다.
저자인 에런 코플런드는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경험과 배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기술이라고. 그래서 알면 더 많이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음악에 있는 질서와 체계, 그리고 감각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뿐 아니라 지적인 호소력 역시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옛것이든 새것이든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술적, 기법적 측면에 대한 설명이 불가피함을 지적하면서 그걸 건너뛰면 고차원적인 음악 형식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고 소화시키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렇지만 책만 읽어 가지고는 음악예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음악을 듣겠노라고 굳은 다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세상에는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는 경향도 있다. 나처럼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음악에 대해서는 아는 게 그다지 많지 않은 사람에게,그리고 지금 듣는 것보다는 좀 더 복잡한 형식의 음악을 들어보겠노라고 다짐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지침서가 될 듯하다. 그럴 생각이 별로 없는 분들에게는(거기에 대한 가치판단은 안 합니다. 사람의 취향이란 게 다 다른 법이니까요) 일부러 찾아서 절대 읽을 일이 없겠지만 음악을 조금이라도 좋아하시는 초보분들에게는 정말 좋은 지침서임을 강조하고 싶다.
덧 1.
내가 음악에 대해 나 자신이 납득할만큼의 만족스러운 해석을 잘 못하는 이유는, 사실 내 기질과도 관련이 있는 지점이 있다. 나는 말로 표현해 주지 않으면 상대가 나에게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음악의 선율이나 분위기만 보고 그게 어떤 종류의 감정을 표현한 건지 애매할 때가 많아서... 아니 슬픔이란 감정만 봐도 뭔가에 뒷걸음치는 슬픔도 있고, 기쁨 가운데 느껴지는 슬픔도 있고, 격정적인 슬픔도 있겠지만 그걸 음악만 들어서 대체 어떻게 알고 게다가 확신하는 걸까 매우 궁금........ 특히 같은 곡이라도 해석이 천차만별일때 사실 나는 당황하기도 한다.... (먼산) 그래서 나는 좋다고 생각하며 다 듣기는 하는데 이 좋다,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어떤 감정에서 나온 것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음악의 형식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거나 깊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덧 2.
내가 바흐의 <평균율 클라이비어 곡집 1,2>를 들으면 언제나 중간 무렵에서 집중이 떨어지거나 제대로 들어본 적 기억이 별로 없는데 이 책에서 말한 대로 선율만 따라가면서 들어보니 진짜 재미있었다. 이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그저 음악만 집중해 들으며 걷다 보니 7km를 넘게 걸었더라는!!!! 물론 언드라스 시프(Andras Schiff) 영감님이 너무 잘 치셔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그나저나 나는 안드레아스 쉬프라고 그동안 읽었었는데 이게 정확한 한글 발음이래서 아 그릉가??했다.
덧 3.
주 샤오메이의 라이프치히 공연 실황.
바흐의 골드베르크 전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w4ZW6AYxeI
박종호 선생님이 주 샤오메이에 대해서 조선일보에 기고하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