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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May 04. 2024

브런치 덕분에 0원으로 호주 갑니다.

골리앗과 맞서지 않고 이긴 9백 만원짜리 기획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그러니 뜻을 품자.

돈이 없었다. 그런데 호주는 너무너무 가고 싶었다. 다문화, 일과 삶의 조화, 지속가능성 등 내게 중요한 가치들이 어떻게 일상에서 잘 구현되어 있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호주에 다녀온 지인들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호주는 익히 '비싼 나라'라고만 들었다. 노동자의 시급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니, 그에 준하는 물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여행을 하면 매일 외식을 해야 하는데, 1인당 식비만 한 끼에 3만 원은 거뜬히 든다고 하니... 비행기 삯에, 숙소비에, 여행 경비까지 10일 기준 4~5백만 원은 거뜬히 들 예정이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사회생활에 결혼식을 올린 지도 얼마 안 되어 통장에 잔고는 많지 않았다. 아껴놓은 월급으로 미래에 투자하기도 급한데, 가고 싶은 나라에 무작정 가기 위해 몇 백만 원을 쓴다는 것은 철없는 어른의 행동 같았다. 더군다나 책임져야 할 가정도 생긴 마당에 나만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리석은 의사 결정을 내릴 순 없었다. 문제에 봉착했다. '호주는 가고 싶은데 돈이 없구나...' 현실과 내가 꿈꾸는 이상 사이의 간극. 하지만 돈만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구나! 시간은 내면 되니까.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호주를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내 여권과 아름다웠던 스웨덴 유학 시절

스무 살에 여권을 처음 만들어 해외로 나갔다. 낯선 사람들의 집에 신세를 지고, 장학금을 받아 유학하면서 배운 것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것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게 정말 무모해 보일지라도, 혼자서 맨땅에 헤딩을 하다 보면 나의 삽질을 알아보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은인 같은 분들을 만난다. 8년 전 학비 3천만 원이 없어 유학은 꿈도 꾸지 못했을 때도, 무작정 장학금 기회를 따내기 위해 유학 박람회나 스웨덴 대사관 행사는 모두 찾아다니고, 관심 있는 학교에 적극적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절실했던 만큼 감사히 3천만 원의 학비를 면제받고 스웨덴으로 대학원 유학을 다녀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호주에 관심이 생겼을 때부터 호주에 가고 싶다 노래를 부르고 관심을 표한 지 1년이 지났을까, 정말 꿈꾸던 대로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호주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천금 같은 기회. 호주에 대한 내 일방적인 사랑가를 지겹도록 듣던 호주 친구는 어느 날 호주 정부에서 매년 지원하는 펀딩 프로젝트를 귀띔 해주었다.


'호주 정부에서는 매년 호주와 한국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금전적으로 지원해. 대학이나 언론사 등 기관 프로젝트가 많지만, 작년엔 실제로 호주 내 한인 2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유튜브 프로젝트도 지원받았어!'


내가 뽑힐지 안 뽑힐진 모르지만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는 굿뉴스였다! 적어도 도전해 볼 수 있으니까. 친구가 귀띔을 해주자마자 펀딩을 주는 기관인 Australia-Korea Foundation(호한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재단의 목적, 펀딩 지원 내용과 지난 수혜자들의 프로젝트 내용을 샅샅이 조사했다. 그리고 나는 어떤 프로젝트를 통해 호주와 한국 양국 관계에 가치를 더할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했다. 일개 개인으로 호주와 한국 양국의 유수한 정부나 대학 기관들만큼 규모가 큰 프로젝트는 못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일개 개인으로서 정부나 기관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 내는 게 나의 엣지포인트라 생각했다.


'전략적으로 경쟁 상대를 줄이고, 내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고민해 보자.'


0원으로 호주병 치료하기 프로젝트의 서막이었다.




골리앗에 맞서지 않고,
뽑힐 기획안 쓰기

1. 기획안 작성 전 문제점 파악하기

그렇게 나는 8년 간의 브런치 글쓰기와 출판 경력을 내세워 프리랜서 작가로 'Australia Through Korean Eyes(한국인의 눈으로 본 호주)'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펀딩 기금을 운용하는 호한재단과, 펀딩 재원을 마련한 호주 외교부의 사업에 도움이 될지를 논리적으로 정리하고자 노력했다. 내 프로젝트의 핵심은 호주 정부 기관이 한국에 호주를 알리는 데 '어떤 문제점을 겪고 있는지'였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내가 기여할 수 있다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후보자가 될 거라 생각했고, 정부나 대학에 비해 내가 필요한 재원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내겐 충분한 금액이지만 재단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귀엽고 적은 금액의 펀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을 통해 호한 재단의 존재 이유와 재단이 달성하고자 하는 바와 지난 2년 간에 걸친 다양한 프로젝트 내용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호주와 한국을 둘러싼 양국 관계의 핵심 쟁점들도 파악했고, 인터넷 정보로 얻을 수 없는 부분은 호주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한국과 호주 양국을 오가며 일을 하는 비즈니스맨이어서 양국을 둘러싼 현안에 눈이 밝았고, 내 프로젝트 기획안에 여러 피드백을 주었다. 역시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은인을 만난다.


제 10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이은 '한국인의 눈으로 본 호주'

2. 내가 제공할 수 있는 핵심 가치 파악하기

내 제안서의 핵심은 '온라인에 글을 쓰는 개인'으로서의 파급력이었다. 지난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호주와 한국의 정부나 대학 기관이 주최한 인적 교류 이벤트로, 오프라인 워크숍이나 미팅 또는 연구 프로젝트였는데, 이런 좋은 취지의 행사와 그 결과물이 주최 기관의 보고서나 페이스북 포스팅 형태로만 소비되고 말았다. 특히 문화 예술 교류를 포함해 다문화, 성평등, 언론 자유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논의 결과물이 나왔는데, 우리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많은 이야기들이 일반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는 점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을 해결하는데 집중하고자 했다.


8년 전 스웨덴에서 유학하는 동안 브런치를 통해 북유럽의 지속가능성, 평등, 교육,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꾸준히 글을 썼고, 브런치 덕분에 수 백만의 독자분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 그 글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고 책의 형태로 또 다른 독자 분들께도 가 닿았다. 이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나는 '온라인 글쓰기'의 힘을 깨우쳤는데, 스웨덴을 호주로 치환하면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호주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게 논의되는 다문화, 이민과 관련해 여러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나라이자, 많은 한국인이 이민을 가고자 하는 나라다. 하지만 호주 사회의 진짜 이야기는 대부분 영어로 제작되고, 우리가 궁금한 실제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 역시 인터넷에서 찾아보긴 힘들다. 워킹홀리데이나 멜번, 시드니 도시 여행으로도 호주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호주의 대자연도 어마어마하다. 이 문제점을 바탕으로 해결책 세워보았다.


'호주를 한국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한국 독자들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한국어로 작성된 콘텐츠와 실제 호주 내에서의 경험담이 필요하다. 특히,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더 많은 분들께 가치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목표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과 만들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서에 구체적으로 적어냈다. 그렇게 'Australia Through Korean Eyes(한국인의 눈으로 본 호주)' 프로젝트가 탄생했고, 나는 0원으로 내 호주병을 치료해 줄 묘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나는 2주 뒤 호주로 떠난다. 어떤 프로젝트든 하나의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서는 상대가 필요한 부분을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전달할 수 있는 가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감사히도 나는 꾸준히 써온 브런치를 기반으로 나의 호주병을 치료할 기회를 얻었다.


본격적인 프로젝트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브런치를 너머 더 많은 분들께 가치 있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중이다. 그리고  5월 중순부터 2주 간 호주에 머물면서 많은 독자분들이 궁금해하고,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를 브런치를 통해 나누고자 한다. 내 두 눈으로 보고 느낀 것을 한 자 한 자 활자로 표현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도록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만, 어려운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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