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칠일오 Jul 18. 2023

눈물 기억하기

현장, 전선의 한복판에서



    캐나다 땅을 밟은 지 정확히 20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동안 집도 구하고, 캐나다에서 일하기 위해 밟아야 하는 절차도 하나하나 밟고, 이력서도 뽑아 곳곳에 돌리고, 면접도 몇 번 봤고 트라이얼도 해봤습니다. 하루가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였건만, 아쉽게도 제게 돌아온 전화는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는 한창 따뜻했다가 다시 비가 내립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게 글을 참 끄적이고 싶게 만들더군요. 일 구하기 급급해야 할 지금, 글을 쓸 때가 맞느냐만은 이는 오히려 제가 여기 온 이유를 잊지 않기 위함이라고 과감히 이야기해 봅니다. 저는 모든 경험에 밑지고 싶지 않고, 모든 기분과 생각과 영감과 느낌은 그때그때 나누지 않으면 잃기 마련이기에, 오늘은 계속되는 거절감에 지쳐있는 저를 스스로 다독이고, 흘러가는 구름을 그저 멍하니 쳐다보는, 그런 어리석지만 모두에게 꼭 필요한 ‘무용(無用)의 시간’입니다.


낯선 땅에 홀로


    역시 현장은 어떤 것을 예상하든 그 이상입니다. 책상에 앉아 아무리 펜대를 굴려봐도 밖의 날씨 하나 제대로 가늠할 수 없듯이, 한국에서 예상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캐나다 생활을 어렵게 어렵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체감온도’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집 안에서 ‘이 정도 기온일 것이다.’라고 아무리 예상하고 대비해도 막상 밖에서 느끼는 온도와 습도, 풍속과 일사량, 지형 등 다양한 요소들은 책상과 현장은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만듭니다. 저 또한 한국에서 어느 정도의 어려움은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감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책상은 결국 책상이었을 뿐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어쩌면 아직 본격적으로 캐나다 생활은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겠죠.


 저번 주, 캐나다에 온 뒤 처음으로 낮잠을 청했습니다. 오자마자 시차적응도 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몸이 아우성을 치더라고요. 감기 기운에 잇병과 충혈 등 얼굴과 몸 곳곳에서 ‘지금 쉬어야 돼!’를 연신 외쳐댔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갈길은 멀지만 우선 짧은 잠을 청했습니다. 설정해 놓은 알람도 무시한 채 두 시간쯤 잤을까요. 그날에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기에 충혈된 눈을 비비고 상체를 일으켜 침대에 앉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무슨 감정이었을까요. ‘아, 집에 가고 싶다.’


 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은 한국에 남아 있었어도 여기 못지않게 많았을 겁니다. 그저 어머니가 보고 싶었습니다. 거실에서 아버지가 TV를 봤으면 싶었습니다. 지금 당장 안방 침대에서 혼자 자고 있는 강아지 옆에 가고 싶었습니다. 형과 게임방을 가고 싶었고, 집밥을 먹고 싶었고, 그냥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가족과 함께 집이라는 공간에 있고 싶었습니다. 예, 외로움을 사무치도록 느꼈습니다. 사실 가족이 아니었어도 그냥 누군가 저를 알아줬으면 싶었습니다. 그냥 누군가 저와 함께했으면 싶었습니다. 그냥 서로의 이름을 알고, 서로의 체온을 나눌 수 있는 ‘생명’이 지금 제 주변에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저에게는 더없이 큰 위로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제가 느낄 수 있는 제 이웃의 이름은, 제 이웃의 체온은 없었습니다. 저는 낯선 땅에 ‘혼자’였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났습니다.


눈물 속에서 피는 생각


    당장에 밖으로 나와 비가 오는 토론토 거리를 걸었습니다. 그래도 움직이면 감정이 좀 추슬러지리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5월의 비 오는 토론토는 제 내면을 더 혹독하고 외롭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문뜩 두렵고 불안하고 외로운 제 처지가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걸음으로 눌렀던 눈물이 다시금 터져 나왔습니다. 비록 제가 배우고자 선택한 길인 것은 사실이지만, 타지 생활이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주변에 저를 도와주고 응원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다 저버리고 집으로 가고 싶은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의 응원과 기대는 제가 처한 상황과 제가 느끼는 감정을 결코 공감해 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응원은 그들과 멀리 있는 저를 더욱 홀로 있는 듯이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저 바람 따라 옆으로 내리는 토론토의 거센 비가 저의 현재와 저의 앞날을 차갑게 적시고 있는 것만 느끼며 홀로 토론토의 거리를 걸었습니다.


 한참을 울며 걷다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절정에 다다랐을쯤, 갑자기 이전과는 다른 생각이 저의 안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무엇이든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어렵게 띤 발걸음에 응답하는 걸까요. 그제야 ‘내가 살고 있는 땅, 내가 난 곳,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창12:1)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그제야 제가 한국에서 만났던 이방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이제껏 제가 부유하고 안정됐기에 그런 아름다운 이상들을 쉽게 쉽게 이야기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제가 바라고 이야기했던 지향들이 현실에서 얼마나 살아내기 어려운 것들인지를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을 배우기 위해서 저는 이곳에 왔음을 기억했습니다. 분명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두려움과 불안함, 외로움과 배고픔으로 살기 급급한 저의 캐나다 삶은 제가 지금껏 한국에서 뱉은 말들과 제가 바랐던 지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중국 당 간부나 정부 관료들에게 생산 노동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체험하게 하고 그 어려움을 깨닫게 하는 중국의 ‘하방 운동’(下放運動)의 시기가 저의 이 캐나다 생활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공감’과 ‘경험’을 위해서 눈물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그런 시간 말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말은 곧 자신의 처지에 따라 그 생각도 달라진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처지에 따라 눈이 달린다는 표현을 했고, 처지에 따라 생각도 달라지고 운명도 달라진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이제 강단 위에서 말하는 처지에서 나눈 말을 직접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처지로 바뀌었습니다. 옳은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현장의 전선 한복판에 서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 한복판에서 눈물 나도록 차이고 있죠.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제가 여기서 받는 모든 대우는 거절입니다. 발로 뛰며 이력서를 돌리고, 긴장된 표정 앞으로 웃음을 밀어내면서까지 면접을 보지만, 이력서를 돌리고 면접을 보면 볼수록 그들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기껏 트라이얼까지 가더라도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계속되는 그들의 거절에 웃음도 열정도 감사도 희망도 사랑도 끄집어내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과연 저는 이 현장의 전선 한복판에서 지금껏 제가 말한 대로 꿋꿋이 그 옳다는 지향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삶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말을 저는 계속 뱉을 수 있을까요? 각박한 삶 속에서 두려움으로 인색해지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요? 제가 뱉은 말이 저에게 이렇게 잔인하게 들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입니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막막함 속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저니까요. 제가 여기서 흘리는 눈물은 과연 어떻게 심길까요. 이 눈물의 경험은 진정 훗날 누군가에겐 공감으로, 누군가에겐 사랑으로, 누군가에겐 생명으로, 그리고 저 자신에겐 떳떳함과 당당함으로 아름답게 만개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길벗 삼아


사무치는 이 어려움이 훗날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기 위함이라면, 그리고 이 경험이 훗날 누군가에게 진정 따뜻한 사랑과 생명을 건넬 수 있게 하는 초석이 된다면, 그리고 이 시간 속에서 저 스스로 내뱉은 말을 책임질 수 있는 당당한 삶을 제가 살아낼 수 있다면, 눈물 나도록 괴로운 이 시기도 조금은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상황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당장 또 오늘 저녁부터 돈에 허덕이며 식사를 하겠고, 내일 또다시 저는 매몰찬 거절들을 경험하겠죠. 그러나 우리의 삶은 연속과 관계로 이루어져 있고, 그렇기에 어려움과 실수가 있더라도 그 어려움과 실수를 거울삼아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시작하는 삶은 이전보다 조금은 더 농익었겠지요. 이 어려움은 결코 이 어려움 자체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故) 신영복 선생님은 삶을 ‘도로’가 아닌 ‘길’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로는 고속일수록 좋고, 짧을수록 좋습니다. 오로지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써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도로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길은 도로와 다릅니다. 길은 길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길은 코스모스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터이기도 하고, 자기 발견의 계기이기도 하고, 자기를 남기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참 멋진 말입니다. 저의 캐나다 생활은 이와 같은 하나의 길목이 될 것입니다. 어떠한 뚜렷한 목적을 향해 무작정 빠르게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 길 위에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그 자체로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때로는 쓰디쓴 눈물과 실패와 절망과 거절도 말입니다. 그렇게 길 위에서 만난 모든 것들을 저의 길벗 삼아 가다 보면, 어느 지점 저는 썩 괜찮은 나그네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물론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실패만 한 나그네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혹 저의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누군가를 제 눈물로 위로해 줄 수 있을지도요. 그럼 또 썩 괜찮은 나그네 아니겠습니까?


 실패를 그저 태평한 말로 덮으려는 것처럼 보일까 싶습니다. 하지만 동양에는 쉰 살까지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은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성경에는 하늘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늘 아버지께서 먹고 마실 모든 것을 더하여 준다(마6:26-3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동양은 그때까지 그의 성실함으로 맺게 된 그의 인간관계가 안전망이 되어 그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이야기이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책임져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둘 다 ‘도’와 ‘진리’를 추구할 따름이지 결코 식(食)이나 빈(貧)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꽤나 빈곤하고 서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이 또한 벗으로 삼으며 저는 저의 갈 길을 다시금 다잡아 봅니다. ‘나의 이 눈물은 훗날 홀로 있는 누군가에게 선뜻 사랑의 손을 건넬 수 있는 초석이 되리라.’라고 되새기면서요. 오늘은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 모든 것에 밑지지 말고 배우자. 너무 두려워하지 마. 너의 지향이 그분의 길이라면, 그 외의 일은 그분이 책임지실 거야. 그저 그 안에서 그분과 함께 신령한 춤을 추렴.” 어떤 곳에서든 그분의 뜻을 구하며, 그분을 따라 살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4:11-13)


2023년 5월 13일


매거진의 이전글 꿈: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