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by JACOB


불을 켰다. 은은한 달빛이 발을 비춰주지만, 애써 걸어가기엔 어둠이 깊었다. 옷을 입었다. 새벽녘의 한기가 어느새 집 안 가득 들어와 갓 일어난 몸을 마구 쳤다. <하버드 새벽 4시 반>이라는 책 덕분에 한국인들에게 새벽은 썩 어색하지 않은 시간이 되었다. 아니 오히려 환영받고 박수받는 시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비적댄 눈과 몸으로 맞이한 새벽은 그저 어둡고, 춥고, 쓸쓸했다. 빛 한 점 없는 어둠은 눈과 발이 닿는 모든 곳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잎사귀의 숨을 죽이는 새벽 냉기는 피부 아닌 마음을 가차 없이 베어 댔다. 차분히 내려앉은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고요함에 휩싸여보려 하지만, 들숨과 날숨 사이의 음산함이 자꾸만 몸과 맘을 움츠러들게 했다. '결국, 하버드를 가고 봐야 할 일인가.' 아무리 봐도 빛없는 어둠이, 온기 없는 새벽이 반가울 리는 없다.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새벽과 나름 친분을 가져왔다. 새벽이 주는 고요함과 평안함을 보고 느끼며 자라왔다. 분명 짙은 어둠이 드리운 새벽에야만 볼 수 있는 너머의 시야가 있고, 마음을 에는 새벽 한기 속에서야만 서서히 드러내는 작은 자아가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하버드가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것이지, 새벽 4시 반이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새벽은 결국 동이 트기를 기다린다. 아무리 새벽이 주는 고요함과 평안함이 있다고 할지라도, 새벽이 주는 밀도의 시간이 내면을 단단하게 할지라도, 새벽 끝에 움트게 될 빛이 없다면 새벽은 고통스러운 어둠 그 이상이기 어렵다. 결국 생명은 빛을 받으며 자라는 것이기에 그 깊고 차가운 어둠 자체를 바랄 순 없는 것이다.


모든 어두운 시간은 훗날의 밝을 시간을 기다린다. 어둠 속에서만 서성이다 끝나는 시간은 어둠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의미와 가치마저도 끝내 사그리 짓밟는다. 동은 터야만 한다. 동이 트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동이 트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동이 트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동은 터야만 하는 것이다. ‘새벽: 동이 틀 무렵.’ 세상천지는 모두 동이 트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