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의 기술
어떻게 해도 글이 안 쓰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글쓰기를 마치 게임처럼, 놀이처럼 해보는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됩니다. 가령 도전 한 문장처럼 말이죠.
2017년 4월에 칼럼 연재를 그만둔 후로 거의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쓸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한 달이 가고 계절이 몇 번 바뀌고 1년이 지나도록 글을 쓰지 못하자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못쓸사람’이란 사실을요.
그 무렵 저는 페이스북에 올리는 일상적인 글도 거의 쓰지 못하고 다른 분들이 올린 게시물만 읽곤 했어요. 그러다 2018년 6월경 소설가 부희령 선생님이 올린 게시물에 ‘도전한문장’이란 해시태그가 달린 걸 봤습니다. 그건 꽤 긴 내용을, 그러니까 여러 문장으로 써야 할 내용을 딱 한 문장만으로 써야 하는 일종의 게임이었습니다. 그걸 보자 저도 한 번 따라 해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선생님 문장의 유려함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습니다만.
그렇게 6월 22일 저는 ‘도전한문장’이란 해시태그를 달고 문장 하나를 썼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본 것인데 아래에 붙입니다.
도전 한 문장 - 1
밝을 것 같지만 나는 온통 어두운 사람인데 사리며 물정이며 학문이며 돈이며 정치며 경제며 또 이런저런 다른 것들도 다 어둡지만 특히 귀가 어두운데 그것도 말귀가 영 깜깜해서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매번 주위 사람을 경악하게 만드는데 그런 예를 들자면 책이라도 한 권 써야 할 정도지만 초등학교 때 나 다닐 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던 그때 아마 5학년 때지 싶은데 학교 안에 소각장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에 뭐 태울 물건이 그렇게 많아서 아예 소각장을 두고 있었을까 싶지만 아무튼 당번까지 두고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내가 당번이어서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역시 당번인 녀석이랑 같이 소각장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출근하다가 우리를 보고는 급히 부르시면서 너희들 어디 가냐 하시길래 소각장 갑니다 그랬더니 들고 있던 봉투를 주면서 내가 교무회의에 늦어 그러니 이거 갖고 가거라 잘 태우고 불 끝까지 다 확인하고 돌아와 하시길래 네 하고 대답도 씩씩하게 한 다음 소각장에 가서 다른 것들 태우면서 선생님이 주신 봉투도 씩씩하게 잘 태우면서 끝까지 다 타는 걸 확인하고 비로소 교실로 돌아왔는데 선생님이 놀란 눈으로 아까 내가 준 봉투는 어쨌어 하시는데.
원래 여러 문장이어야 하는 내용을 억지로 한 문장으로 쓰려니 “는데”가 계속 반복되고 주술 관계도 어긋나고 문장 전체가 산만하고 어색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쨌든 저는 한 문장의 글을 썼으니까요. 잘하면 ‘못쓸사람’에서 벗어날지도 모르고요. 그 후로 저는 몇 번이나 더 한 문장 쓰기에 도전했습니다. 아무래도 ‘도전한문장’이라는 형식이 갖는 놀이로서의 성격이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준 것 같아요. 그때 쓴 한 문장들을 아래에 붙입니다. 제법 긴 문장도 있고 짧은 문장도 있습니다만 대부분 내용은 별 게 아닙니다. 그저 한 문장 쓰기에 도전한다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도전 한 문장 - 2
삼점벌레는 몸통이 세 개의 점 그러니까 세 마디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으나 또한 연결되어 있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데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지만 아래 위로 마치 춤을 추듯이 꿈틀거리는데 이렇게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보통 수 차례 혹은 수십 차례 반복된 후 나비가 되지만 어떤 삼점벌레는 수십 차례 춤을 춘 후에도 끝내 나비가 되지 못하고 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지만 아마 아름다운 나비가 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사라지는 걸 택한 벌레 특유의 오기 같은 게 아니겠느냐는 말도 안 되는 추측이 있기도 하지만 주로 페북에서 서식하는 이 생명체가 나비가 되었을 때의 이름은 댓글이라고 부르는데 그 모양이며 무늬며 빛깔이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한다.
도전 한 문장 - 3
만일 어떤 친구가 평양냉면을 좋아해 그와 만날 때면 여름이고 겨울이고 점심이고 저녁이고 평양냉면을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그 친구와 냉면을 먹다 보니 이제는 그 친구를 생각하면 밍밍하고 슴슴한 냉면 육수 맛이 떠오르고 누가 냉면 이야기만 꺼내도 그 친구 얼굴이 떠올라 급기야는 친구가 냉면인지 냉면이 친구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물아일체 아니 물타일체의 경지에 아니 지경에 이르게 되고 보면 마치 스포츠에서 한 선수를 기리느라 그 선수의 등번호를 다시 사용하지 않고 영원히 빼버리는 영구결번처럼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와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떤 특정한 낱말을 그가 가져가 버리는 혹은 그에게 바치게 되는 그러니까 영구결어가 생기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도전 한 문장 - 4
선생님은 문장을 쓸 때 가급적 부사를 사용하지 마라고 하시지만 심지어 스티븐 킹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뒤덮여 있다는 말씀까지 하셨다지만 나는 부사를 사랑해 사과도 부사가 좋아 라는 말작란이 하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데 가만히 물끄러미 비스듬히 나지막이 슬그머니 같은 부사들은 얼마나 어여쁜가 감탄하면서 특히 의성어 의태어는 너무 아름다운 말들이라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콧등이 시큰해지는데 그래서 문득 그런 의성어 의태어가 엄청나게 들어간 문장들로 부사예찬이라도 한 편 쓰면 어떨까 싶을 만큼 사랑하는데 이렇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꾸 되풀이하다 보니 아예 사랑이야기를 하나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러니까 슬그머니 아주머니와 넌지시 아저씨의 느리고 좀 답답하고 자꾸만 어긋나는 그러나 꾸준하고 부지런한 그런 아득한 사랑이야기를 쓰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천성은 게으르고 글은 짧아 도무지 한 자도 쓰지 못하고 그저 빈둥빈둥 생각만 하며 하루를 다 보낸답니다.
도전 한 문장 - 5
사람마다 생각할 때 무심코 짓는 표정이라든지 자주 하는 몸짓이라든지 말하자면 그런 버릇이 있을 텐데 나도 가만 생각해보면 입이나 턱 주변을 쓰다듬는 손동작을 자주 하는데 이것 봐 방금도 했는데 그 기원을 따라가 보면 그건 원래 내 습관이 아니라 내가 좋아했던 누군가의 습관이고 아마 그 누군가의 버릇도 그가 사랑했던 다른 누군가의 버릇이었을지도 모르겠고 그 다른 누군가의 버릇도 그 다른 누군가가 좋아했던 사람의 버릇을 흉내 낸 것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끝없이 따라가면 끝없이 끝없이 이어질 텐데 그러니까 방금 내가 생각할 때 턱수염을 마치 알라딘이 요술램프를 문지르듯 쓱 문지른 것은 무의식 중에 나 혼자로는 생각하기 외롭고 어려우니 내가 좋아했던 누군가와 함께 또 그가 사랑했던 다른 누군가와 함께 그렇게 끝없이 끝없이 수많은 누군가들과 함께 좀 과장하면 생각의 요정 지니들과 함께 생각하자는 수작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턱을 한번 쓱 쓰다듬습니다.
도전 한 문장 - 6
영어 공부한다고 영어로 된 책을 들고 다니며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읽었더니 어느덧 나도 원어민처럼 졸게 되었다네.
도전 한 문장 - 7
일본말에 '関東の一個残し'라는 말이 있는데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적으면 간토노잇코노코시 쯤 되고 뜻으로는 '관동의 하나 남은 것'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이 말은 한 그릇의 음식을 여럿이 함께 먹다 보면 마지막 하나가 남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 남을 배려하고 체면을 중시하고 눈치를 보는 관동지방 사람들은 그 하나를 아무도 먹지 않고 모두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느라 결국 식사를 마칠 때까지도 마지막 한 점을 남긴다고 해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 공연한 눈치 때문에 맛난 음식을 남겨 결국 음식 쓰레기로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또 그 한 점 때문에 모두 체면을 차리고 평화롭게 식사를 마칠 수 있으니 공동체에서는 꼭 필요한 눈치고 낭비일지 모른다.
도전 한 문장 - 8
대개는 좋은 사람과 함께 먹으면 음식도 더 맛있어 많이 먹게 된다지만 어떤 때 보면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식사할 때 먹는 것에 더 열중하는 것 같고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있으면 입맛이 사라져 음식 같은 건 아무리 대단한 게 앞에 있어도 눈도 안 가고 손도 안 가 반도 못 먹고 남기는 걸 종종 본답니다.
도전 한 문장 - 9
어떤 때는 갑질을 하고 또 어떤 때는 을질도 하겠지만, 갑질이든 을질이든 안 하려고 애써야 하겠지만, '언고행, 행고언'이란 말씀처럼 말은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아야 마땅하겠지만, 그중에서 '을질하는 문장'에 대해 한번 돌아보고 살펴보면, 문장을 쓸 때 '을'을 너무 많이 쓰는 것이라, 예를 들면 '공부하다'라고 써도 될 것을 '공부를 하다'라고 쓰고, '생각하다'라고 써도 될 것을 '생각을 하다'라고 쓰고, 심지어 '도서관에 가다'라고 써도 될 것을 '도서관을 가다'라고 쓰는 식인데, 그러니까 '무엇하다'를 전부 '무엇을 하다'로 쓰면서 '문장의 을질'을 하는 것이라서, 지금 쓰는 문장에도 대체 몇 개의 '을'이 들어있는지 세어를 보고 스스로 깜짝 놀라고 부끄러워를 한답니다.
원래 도전의 자세라는 게 어딘지 어색하고 무모해 보이는 것일까요? 다시 읽으니 문장이 많이 어색하고 심지어 무모하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저는 도전 한 문장 쓰기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마 한 문장 쓰기라는 게임의 규칙에 신경 쓰다 보면 글을 잘 써야 하겠다는 강박이 잠시 사라지는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도 글이 써지지 않는다면 한 문장 쓰기에 도전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