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 사자성어로 말하는 에세이 쓰기의 기술
첫째가 학생 때 일입니다. 첫째는 제게 부탁 같은 걸 잘 안 했어요. 어쩌다 하더라도 가벼운 농담처럼 했습니다. 그런 첫째가 제게 부탁한 일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에세이를 잘 쓰는 법'을 알려달라는 거였답니다. 당시 저는 신문에 매주 한 편씩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었어요. 아마 첫째는 제가 에세이를 잘 쓰고, 에세이를 쓰는 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그럼에도 저는 첫째에게 대답을 해야 했어요. 녀석이 모처럼 아주 진지하게 한 부탁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첫째 녀석에게 준 대답을 아래에 붙입니다.
“아빠, 에세이를 잘 쓰기 위한 아빠의 방법론 몇 가지만 생각해 보고 말해 줄래요?” 매번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내게 그런 방법론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모처럼 아들 녀석이 진지하게 부탁한 일이라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답을 궁리해 본다.
아들, 에세이 쓰는 법에 대해 여섯 개의 사자성어로 설명해 볼게.
아전인수
내 논에 물을 끌어들인다는 말이지. 소재는 도처에 있고, 소재에는 귀천이 없어. 자신이 잘 아는 것이면 더 좋겠지만 잘 모르는 것이라 해도 상관없어.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든 내 경험의 논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사실이야. 삼라만상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결국 에세이는 내 논에 관한 이야기거든.
원교근공
멀리는 사귀고 가까이는 공격하라. 소재가 정해지면 그것과 관련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낱말들이 있을 거야. 그것들을 경계해야 해. 가까운 것들은 상투적이기 쉬워. 새롭지 않으면 과감하게 쳐내는 게 좋아. 멀리 있는 것들에 눈을 돌려보렴. 전혀 다른 분야, 다른 형식에. 조금만 방심하면 신변잡기에 머무르기 쉬운 게 에세이야.
맹인모상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쓰는 게 좋아. 글을 쓸 때 가장 큰 적 가운데 하나가 너의 눈이야. 눈을 크게 뜨고 새롭게 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다. 잠시 눈을 감는 것이 필요해. 예전에 TV에서 독일의 교육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 선생이 초등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숲으로 가는데, 일렬로 줄을 서 앞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눈을 감은 채 걸어가게 하는 거야. 눈을 감자 쉴 새 없이 떠들던 아이들이 입을 다물고 조용해져. 왜냐하면 전혀 새로운 숲이 아이들에게 와락 달려들기 때문이지. 그렇게 자주 다닌 숲이지만 예사로 넘겼던 새소리, 벌레소리와 나무 냄새, 흙냄새와 뺨에 와 닿는 햇살의 따뜻함 같은 숲의 아름다운 소란을 만끽하려고 아이들은 자신의 온몸을 한껏 여는 중이기 때문이지. 그 아이들이 눈을 뜬 다음 바라보는 숲은 얼마나 새롭고 경이롭겠니? 에세이는 그렇게 쓰는 거야.
용두사미
시작은 용머리처럼, 마무리는 뱀 꼬리처럼. 모든 글쓰기가 다 그렇겠지만 에세이는 비교적 짧은 글이기 때문에 특히 첫 문단이 중요해. 첫 문단은 용머리처럼 강렬하고 박력 있고 매력적이라야 해. 용의 머리를 보면 거기에 낙타의 머리, 사슴뿔, 토끼 눈, 소의 귀, 돼지 코가 다 들어 있지. 그만큼 첫 문단, 첫 문장에 공을 들이는 거야. 그렇다고 첫 문장을 쓰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일단 초고를 다 쓴 다음 첫 문장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쪽이 좋아. 글의 마지막은 뱀 꼬리 같아야 해. 에세이는 하늘이 아니라 땅의 이야기니까. 땅으로 내려와 뱀의 몸으로 바닥을 밀고 가야 해. 혹시 뱀이 사라지는 것 본 적이 있니? 뱀 꼬리의 날렵하고 유연한 곡선. 그렇게 마무리지어야 여운이 남는 거야. 짧은 글에 긴 여운이.
절차탁마
일단 초고는 단숨에 쓰는 게 좋아. 그다음에 자르고 갈고 쪼고 닦을 거니까. 첫 문장도 이때 결정하면 돼. 어쩌면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쓴 글을 고치는 사람일지 몰라.
아들아,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에세이를 쓰는 데 방법론 같은 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거야. 아빠를 보렴. 그러니 여섯 번째 사자성어는 네가 생각해 보길. 건투를 빈다.
위의 글을 쓸 때 저는 여섯 번째 사자성어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사자성어를 생각하는 것은 첫째의 몫이라고 여겼거든요. 그렇게 잊고 있었는데 요즘 글쓰기에 대해 자꾸 궁리하다 보니 떠오르는 사자성어가 하나 있습니다.
감탄고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만일 글감이 달면 그건 그냥 삼키고 마음에 담아두는 게 나아. 글로 써도 좋은 글이 나오기 힘들 거야. 공들여 쓴다 해도 결국 그 글은 달콤하기만 할 테니까. 그러나 만일 글감이 쓰면 그건 좋은 신호야. 내뱉으렴. 어떻게든 글로 써보렴. 제대로 된, 괜찮은 에세이가 나올 가능성이 높으니까.
여섯 번째 사자성어까지 말씀드렸으니 이제 마지막 일곱 번째 사자성어는 이 글을 읽는 사람, 당신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물론 저도 생각하겠습니다. 그럼 건필을 빕니다.
김상득 엎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