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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득 Jul 11. 2021

예일대 글쓰기

예시, 일화, 대화의 글쓰기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글이  심심하고 싱거울 때가 있습니다. 내용도 제법 충실하고 형식도 웬만한  같은데 어쩐지 맛이    저는 예일대 글쓰기를 사용합니다. 예일대는 미국 동부의 명문대 예일대학교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시와 일화 그리고 대화의 앞 글자를 따 만들어본 말입니다. 예일대는 글쓰기의 조미료, 글쓰기의 MSG라고   있어요. MSG 넣으면 어떤 음식이든 감칠맛이 나는 것처럼,  속에 예시, 일화, 대화를 사용하면 정말 글맛이 사는  같거든요. 그래서일까요? 제가   대부분에는 예시, 일화, 대화  적어도 하나는 들어있는  같네요.






예를 들면 글쓰기

       


어쩌면 문학이란 하나의 예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때 국어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곧잘 예시를 들었답니다. "예를 들면 말이지" 하시면서요. 그래서 별호가 ‘예를 들면 선생님’이었어요. 한 번은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하도 산만하니까 선생님이 집중의 효과를 강조하는 이야기를 꺼내셨어요. “집중의 위력은 대단하단다. 예를 들면 말이지. '기찻길 옆 오막살이'라는 노래 알지? 그 노래 좀 이상하단다. 잘 생각해 봐. 칙폭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고 하는데,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서 자는 아기가 잘도 자는 게 이상하지 않아? 오막살이집에 방음장치가 되어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게 바로 집중의 힘이란 거야. 그 아기는 집중해서 자기 때문에 아무리 기차소리가 요란해도 잘도 잘 수 있는 거란다. 자, 집중! 집중!”



집중과 비슷한 말 중에 몰두라는 말이 있어요. '몰두'의 한자가 '빠질 몰', '머리 두'니까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는 이미지가 떠오르지요. 예를 들면 말이죠.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비 오는 날 지하철 출구를 나서면서 접이식 2단 자동 우산을 켰대요. 그날 그분은 무슨 생각엔가 몰두하느라 지하철에서 10분 거리인 약속 장소까지 어떻게 걸어갔는지 모를 정도였답니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해 우산을 접으려고 할 때야 비로소 깨달았대요. 똑딱단추를 풀지 않고 자동 버튼만 누른 채, 그러니까 펼쳐지지 않은 우산을 들고 비를 흠뻑 맞으며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요. 몰두란 그런 것이죠. 생각의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넣기 때문에 주변의 다른 것들을 잊어버리는, 아니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상태인 거죠.



Photo by Anh Nguyen on Unsplash



에피소드 글쓰기


 

예시를 일화나 에피소드로 드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면 더 재미있기도 하고 더 그럴듯하게 여겨지니까요. 에피소드 글쓰기는 제가 가장 즐겨 썼던 글쓰기의 MSG 같습니다.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써 문제일 정도로요. 우산 이야기를 하니까 우산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가, 어쩌면 둘이 떠오릅니다. 아래에 붙이는 글은 에피소드 글쓰기의 예시입니다.

 


우산 잃어버리기


모든 우산은 잃어버린 우산이다. 혹은 잃어버릴 우산이다. 우산은 결국 잃어버리기 위해 있는 물건이다. 비가 올 때는 요긴한 소품이지만 비가 그치고 해가 나면 그처럼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장비도 또 없다. 무의식은 우산을 잃어버리고 싶어 하는 게 틀림없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H2>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밤하늘엔 별이 있는 것처럼, 휴식 전엔 원고 마감이 있는 것처럼, 여름 앞에는 장마가 있다.” 그래서 장마다. 이번 장마에는 또 몇 개의 우산을 잃어버릴지 모르겠다.



얼마 전 명동에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김 대리를 만났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지만 그는 7년 정도 같은 팀에서 함께 근무한 직장 동료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해 나는 김 대리 덕분에 디자이너에 대한 편견, 그러니까 까다롭고 우울하고 내성적이고 감정 기복이 심할 거란 말도 안 되는 편견에서 단숨에 벗어날 수 있었다. 그도 예민하긴 했었다. 디자이너가 예민하지 않으면 그건 또 곤란하지 않은가.



장마라 그날도 비가 왔다. 순천향대학병원 정류소에서 탄 김 대리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을 때 나는 놀랐고 당황했다. 그것은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난 고대소설적 우연 때문은 아니었다. 버스가 남산터널을 지날 때부터 나는 차창에 맺힌 수많은 빗방울이 사선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며 생물시간에 본 정자의 운동을 떠올리고 있었다. 김 대리는 환하게 웃었고 나는 수줍게 웃었다. 마침 내 옆자리가 비어 그는 내 옆에 앉았다.



이럴 때 침묵은 마치 맑은 날의 우산처럼 어색하고 불편하다. 침묵이 끼어들지 못하게 우리는 아무 이야기나 한다. 우선 어쩌다 지금 이 시간에 이 버스에 타고 있는지를 서로에게 해명하고, 휴대전화에 저장해둔 각자 가족의 사진 속 행복을 자랑하며, 자주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못하는 동료들의 근황을 나누었다. 그래도 장마철 비처럼 침묵이 찾아오자 우리는 할 수 없이 몇 번이나 했던 “우산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도 장마철이었다. 퇴근하려던 김 대리가 내 자리로 다가오더니 은밀하게 묻는다.


“부장님, 혹시 우산 두 개 있어요?”


“아니, 하나만 있는데. 왜?”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괜찮아요.”


“뭐가요? 뭐가 괜찮은데요?”


“그만 들어갈 게요. 내일 뵙겠습니다.”


김 대리는 인사하고 돌아선다. 눈치도 순발력도 없는 나는 그제야 우산을 찾는다.


“김 대리, 우산 이거 가져 가요.”


“괜찮아요.”


“가져가라니까. 난 비 맞아도 괜찮아요. 더 빠질 머리도 없고.”


“부장님, 정말 괜찮다니까요. 버스 내리면 바로 집이라서요.”


“어허, 김 대리. 집이 버스 정류장이야? 고집부리지 말고 가져 가요.”


“아, 괜찮다는데 왜 자꾸 이러세요.”


이렇게 김 대리와 실랑이하고 있는 꼴을 저쪽에서 지켜보던 이사님이 참지 못하고 한 말씀한다.


“밖에 비 안 오는데.”



김 대리는 자신의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하는 내내 웃고 있었으니까. 그 사이 비가 그쳤다. 내가 먼저 내려야 할 정류소에 버스가 도착했을 때 우리는 “언제 꼭 보자”는 지키지 못할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정류소에 서서 나는 웃고 있는 김 대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우산을 버스에 두고 내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대화 글쓰기



대화가 들어가면 글에 생기가 돌고 윤기가 흐르며 활기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대화는 마치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이 각자의 그릇만 바라보는 부부의 식사자리에 갑자기 나타난 딸아이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위의 글에도 만일 대화가 없었다면 얼마나 밋밋한 글이 되고 말았겠습니까? 대화를 잘 쓰는 작가는 대화 속에 인물의 성격, 갈등, 독자가 알아야 할 정보, 사건의 전개 등을 자연스럽게 담습니다. 저도 대화를 잘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자면 남들이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할 텐데 날이 갈수록 귀가 어두워져 큰일입니다.




  


음식에 사용하는 MSG도 논란이 많지요. 건강에 안 좋다, 아니다, 몸에 안 좋다는 증거를 아직 찾지 못했다 등. 저는 잘 모르지만 MSG의 유해성은 질보다는 양에 달린 문제는 아닐까 싶어요. 글쓰기의 MSG인 예시, 일화, 대화 역시 글에 감칠맛을 더하지만,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사용하면 글을 아주 망치게 된답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MSG 중독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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