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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득 Aug 02. 2021

사랑하는 사람을 썼다 지우기

어떻게든 쓰는 기술

이번에는 어떻게든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건 사랑하는 사람을 썼다가 지우는 일이랍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천재들이 있습니다. 가령 누워 베개에 머리가 닿기만 하면 순식간에 잠드는 사람은 잠자기의 천재, 숙면의 천재라고 할 수 있어요. 무엇이든 잘 먹고, 많이 먹고, 맛있게 먹고, 또 먹고 그러면서도 한 번도 속이 불편하거나 체한 적 없는 사람이라면 식사의 천재, 소화의 천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노트북을 열자마자 곧바로 자판을 치기 시작해서 중간에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글을 다 쓰는 사람이라면 역시 그는 글쓰기의 천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그 무엇에도 천재가 아닙니다.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온갖 후회되는 일들이 떠올라 뒤척이고 그나마 간신히 잠들었다가도 중간에 자주 깨곤 합니다. 입이 짧아 싫어하는 음식도 많고 못 먹는 것도 많고,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잘 체하고 늘 속이 불편하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노트북을 열어놓고 한 글자도 못 쓰고 시간만 보내며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닫고 마는, 그렇게 며칠을, 몇 달을, 몇 년을 못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으니까요. 글쓰기에 재능이 전혀 없는 건 아닌가, 이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건 아닌가 절망하면서요.  



그런 저에게 존 맥피, 그러니까 <게임의 레벨>, <이전 세계의 연대기>, <더 패치> 등을 쓴, 논픽션의 대가 존 맥피는 어떻게든 글쓰는 방법을 이렇게 알려줍니다.



친애하는 조엘. 자네가 이를 테면 회색곰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치자. 그런데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는다. 6시간, 7시간, 10시간이 지나도록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는다. 벽에 부딪혔다. 막막하다. 가망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사랑하는 엄마에게라고 써라. 엄마한테 글을 쓰다가 막혔다고, 막막하다고, 나는 무능하고 가망 없는 인간이라고 써라. 나는  직업에 맞지 않는다고 우겨라. 징징거려라. 훌쩍여라. 이런 식으로 지금 처한 문제를 늘어놓다가, 그건 그렇고  곰이 허리둘레 55인치에 목둘레는 30인치가 넘지만 세크러테어리엇과도 정면 대결할  있을 만큼 빠르다고 써라.  곰이 누워서 쉬는  좋아한다고 써라. 하루에 14시간씩 늘어져 있다고 써라. 이런 식으로 최대한 길게,   있는 데까지 써라. 그런 다음에 되돌아와서 ‘사랑하는 엄마에게 지우고, 훌쩍이고 징징대는 부분을 지우고 곰만 남겨놓아라.”  


-      존 맥피, <네 번째 원고>, 유나영 옮김, 글항아리



정말 좋은 방법이지요. 저는 조엘이 아닙니다만 맥피의 조언이 꼭 저를 위한 것만 같아 이 참에 이름을 조엘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고민도 잠시 했답니다. 맥피의 조언은 이런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글을 쓰고 싶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써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에 대해 글을 써야 하는데 도저히 글을 못 쓰겠다고 써라. 도저히 쓸 수 없는 무엇이 무엇인지에 대해 최대한 길게, 쓸 수 있는 데까지 써라. 그리고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우고 하소연도 지우고 무엇만 남겨놓아라.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썼다 지워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씁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라고 씁니다. 그러면 최소한 어떻게든 한 문장은 쓸 수 있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라고 말이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습니다. 남편이나 아내일 수도 있고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일 수도 있겠지요. 부모나 자녀일 수도 있고 동료나 지인일 수도 있겠지요.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말이지요. 내 맘이니까요. 내가 쓰는 마음이고 내가 쓰는 글이니까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할 말이,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요. 그렇게 글을 씁니다.



다 쓴 다음에 사랑하는 사람을 지웁니다. 맥피 선생은 훌쩍이고 징징대는 부분도 지우라고 합니다만 어떤 경우에는 그 쓸 수 없다고 한탄하는 것만으로도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습니다. 문태준 시인의 ‘어두워지는 순간’은 어두워지는 그 순간을 도저히 글로 쓸 수 없다며 온갖 핑계를 대는 구절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시거든요.





어두워지는 순간에는 사람도 있고 돌도 있고 풀도 있고 흙덩이도 있고 꽃도 있어서 다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바람이 불고 불어와서 문에 문구멍을 내는 것보다 더 오래여서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하늘에 누군가 있어 버무린다는 느낌

오래오래 전의 시간과 방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버무린다는 느낌

사람과 돌과 풀과 흙덩이와 꽃을 한사발에 넣어 부드럽게 때로 억세게 버무린다는 느낌

어두워지는 것은 그래서 까무룩하게 잊었던 게 살아나고 구중중하던 게 빛깔을 잊어버리는 아주 황홀한 것,

오늘은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얻으러 간 사이 어두워지려 하는데

어두워지려는 때에는 개도 있고, 멧새도 있고, 아카시아 흰 꽃도 있고, 호미도 있고, 마당에 서 있는 나도 있고…… 그 모든 게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개는 늑대처럼 오래 울고, 멧새는 여울처럼 울고, 아카시아 흰 꽃은 쌀밥덩어리처럼 매달려 있고, 호미는 밭에서 돌아와 감나무 가지에 걸려 있고, 마당에 선 나는 죽은 갈치처럼 어디에라도 영원히 눕고 싶고…… 그 모든 게 달리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개는 다른 개의 배에서 머무르다 태어나서 성장하다 지금은 새끼를 밴 것이고, 멧새는 좁쌀처럼 울다가 조약돌처럼 울다가 지금은 여울처럼 우는 멧새이고, 아카시아 흰 꽃은 여러 날 찬밥을 푹 쪄서 흰 천에 쏟아놓은 아카시아 흰 꽃이고…… 그 모든 게 이력이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오늘은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베러 간 사이 어두워지려 하는데

이상하지, 오늘은 어머니가 이것들을 다 버무려서

서당골에서 내려오면서 개도 멧새도 아카시아 흰 꽃도 호미도 마당에 선 나도 한사발에 넣고 다 버무려서, 그 모든 시간들도 한꺼번에 다 버무려서

어머니가 옆구리에 산미나리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세상이  어두워졌네


-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 <맨발>, 창비




그렇습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제 글 역시 “사랑하는 사람에게”라고 썼다가 글을 다 쓴 다음 사랑하는 사람을 지웠답니다. 훌쩍이고 징징대는 부분도 지운다고 지웠습니다만 또 모르죠. 어느 문장 어느 구절에 채 지우지 못한 눈물 콧물이 붙어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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