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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득 Aug 14. 2021

끝내주는 글쓰기

끝내기의 기술

오늘은 글을 끝내는 방법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시작한 글은 언젠가 끝을 내야 하지요. 그런데 이 끝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글을 시작하는 것도 힘들지만 마무리하기 역시 간단치 않습니다. 사람은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 진면목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지요. 글도 마찬가지.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글의 진면목이, 전체적인 인상이 결정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중요하고 그만큼 어렵겠지요.



어렵고 복잡한 일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해 보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끝내기에 대한 저의 단순한 생각은 ‘달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글의 마무리란 그 글에서 달아나는 일이라는 거죠. 간혹 학술적인 글에 보면 서론을 들어가는 글이라 하고 결론을 나가는 글이라고 하잖아요. 차분하고 논리적인 글에서는 그냥 나가면 되겠습니다만 에세이처럼 상대적으로 짧고 문학적인 글에서 마무리는 달아나야 하는 것이죠.



글의 삼단구성을 서론, 본론, 결론 또는 도입, 전개, 정리라고도 하지만 서, 파, 급이라고도 하지요. 이 '급'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急, 급할 급입니다. 마무리는 급하게 달아나는 일입니다. 혹시 영화 <색, 계>를 보셨나요? 결말 부분에 보면 왕치아즈(탕웨이 분)가 어서 달아나라고 알려주자 이(양조위 분)가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보석상 2층 계단을 재빠르게 뛰어내려와 밖으로 나온 이(양조위 분)가 마치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질주해,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주는 자동차 안으로 헤드 슬라이딩하듯 몸을 날리던 모습. 急. 글의 마무리는 그렇게 달아나는 일입니다.



영화 <색, 계>의 한 장면



달아나는 방향에 따라 글의 끝내기는 대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 들어왔던 곳으로 달아나는 것이죠. 글을 시작했던 자리로, 처음 이야기를 꺼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겁니다. 수미상관이지요. 입구가 출구인 셈이고요. 출입구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번 들어왔던 곳으로 나가는 것이니 쉽고 안전하지요. 아마 가장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예일대 글쓰기에서 인용한 ‘우산 잃어버리기’의 첫 문단은 이렇습니다.



모든 우산은 잃어버린 우산이다. 혹은 잃어버릴 우산이다. 우산은 결국 잃어버리기 위해 있는 물건이다. 비가 올 때는 요긴한 소품이지만 비가 그치고 해가 나면 그처럼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장비도 또 없다. 무의식은 우산을 잃어버리고 싶어 하는 게 틀림없다.



이어서 아다치 미츠루가 나오고 버스 안에서 직장 동료였던 김 대리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고 김 대리와 나누는 이야기가 나오고 함께 떠올린 예전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그렇게 글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할 이야기를 다 한 셈이니까요. 이제 저는 어서 달아나야 합니다. 글이 처음 시작된 첫 문단으로 말이죠. ‘우산 잃어버리기’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습니다.



김 대리는 자신의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하는 내내 웃고 있었으니까. 그 사이 비가 그쳤다. 내가 먼저 내려야 할 정류소에 버스가 도착했을 때 우리는 “언제 꼭 보자”는 지키지 못할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정류소에 서서 나는 웃고 있는 김 대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우산을 버스에 두고 내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둘째,  밖으로 달아나는 겁니다. 마치 영화에서 카메라가 인물과 사건이 있던 곳에서 뒤로  빠지는 것처럼 말이죠. 혹은 카메라가 인물의 시선을 따라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방법은 인물과 사건이 놓여있는 환경, 세계를 보여줄 수도 있고, 커다란 세상과 대비해 인물이나 사건의 사소함을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기후나 계절감을 나타내 서정과 여운을 남길 수도 있지요. 이래저래 유용해 저도 자주 사용한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첫눈처럼 말이죠.



첫눈



포장마차에 처음 간 것은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그날 나는 아버지를 따라 시골 상갓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뾰족한 날씨가 털옷에 먼지 붙듯 달려들었다. 내가 살던 도시는 바닷바람이 많이 불어서 체감온도가 실제 온도보다 항상 2~3도는 낮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추위를 많이 탔다. 게다가 허기가 지면 더 추운 법인데, 나는 시골 상갓집을 나설 때부터 배가 고팠다. 마침 터미널 주변에는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무럭무럭 뜨거운 김을 뿜어내며.



아버지는 검소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더 심했다. 박봉의 월급으로 사 남매를 키우고 부모님을 모시는 가장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라면서 우리는 외식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헛된 희망은 품지 않았다. 끼니때가 지나 배가 고프더라도, 길가의 포장마차에서 고소하고 달착지근한 냄새가 흘러나오더라도, 그것이 입안의 침을 범람시키고 주린 위와 창자를 마구 잡아당기더라도, 어린 아들놈이 아무리 포장마차 쪽으로 자꾸 쳐다본다 하더라도 아버지는 꿈쩍도 안 할 거란 걸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자식은 부모를 어디까지 아는 것일까?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포장마차 비닐천막 속으로 쑥 들어갔다. 첫 외식이었다. 포장마차 안을 가득 채운 뜨거운 수증기가 황홀했다. 카바이드 불빛 아래 오징어, 멍게, 닭똥집, 닭발 같은 안줏감들이 진열돼 있었다. 아버지는 소주 한 병과 홍합탕을 주문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홍합이란 걸 먹었다. 지금이야 홍합의 씁쓰레한 맛과 향을 좋아하지만, 당시 어린 내 입맛에는 한약처럼 썼다. 그나마 따뜻한 맛으로 국물만 들이켜고 홍합은 몇 개 먹지 않았다. 아버지는 홍합을 맛있게 드셨다. 소주를 한 잔 마시고 홍합을 두 개 드시고, 국물을 한술 떠 삼키는 순으로. 나는 차츰 지루해졌다. 바깥은 춥고 안은 따뜻했다. 포장마차에는 연기와 수증기가 가득했다. 곰장어 굽는 냄새처럼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쉰의 내가 마흔을 갓 넘긴 젊은 아버지 옆에 앉아 있다. 어린 나는 잘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어쩌면 그를 이해할 것 같다. 나도 아버지처럼 홍합탕에 소주를 마신다.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버지와 나는 간단한 인사를 나눈다. 아버지보다 더 늙은 내가 아버지의 잔에 소주를 따른다. 나는 몇십 년 만에 닥친 강추위를 이야기하고, 아버지는 느닷없이 찾아오는 죽음에 대해 말한다. 카바이드 불빛에 비친 아버지의 그림자가 흔들린다. 젊은 아버지와 늙은 나는 술잔을 기울인다. 아버지는 오르기만 하는 물가와 막막한 내년의 생계를 걱정한다. 자식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는 수줍게 웃는다. 옆에서 잠든 어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득아, 이제 집에 가야지.” 아버지가 나를 깨운다. 어린 나는 포장마차 안 아버지 옆에서 그만 까무룩 잠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눈을 뜬다. 내 앞에는 홍합 껍데기가 수북하다. 포장마차 안은 여전히 수증기가 가득하다. 계산을 치른 아버지가 포장마차를 나서도록 나는 잠에 취해 의자에서 미적거린다. “상득아, 이제 집에 가야지.” 아버지의 채근으로 겨우 비닐천막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서 눈발이 흩날렸다. 첫눈이었다.



그러니까 저는 창 밖으로 달아난 셈이지요. 눈발이 날리는 포장마차 비닐천막 밖으로.



셋째, 어쩌면 이 방식을 제가 가장 즐겨 쓴 것 같습니다만, 반전으로 달아나는 겁니다. 확 뒤집는 겁니다. 싹 돌아서는 겁니다. 안면을 쓱 바꾸는 겁니다. 마치 연막탄을 던지고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악당처럼, 반전의 한 문장을 던지고 헛웃음 속으로, ㅋㅋㅋ나 ㅎㅎㅎ 속으로 달아나는 것이죠. 이것도 예를 들고 싶지만 이미 글이 너무 길어져 그만두겠습니다.



어느새 달아나야 할 시간이네요. 제가 할 이야기는 다 드렸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참 난감합니다. 어디로 어떻게 달아나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처음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고, 창 밖으로 달아나려니 이 글엔 아무리 둘러봐도 창이 없네요. 반전도 없고요. 이런 경우에도 글을 끝내는 방법은 있습니다. 글의 마지막에 이렇게 한 글자를 써놓고 달아나는 겁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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