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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득 Mar 08. 2021

글쓰기의 동사 둘

운동에너지와 주변시

글쓰기에 필요한 동사는 많습니다. 관찰하다, 발견하다, 구상하다, 조사하다, 연결하다, 확장하다, 정리하다 등등. 그 동사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이, 어쩌면 동사마다 각각의 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쓰기의 동사들>이란 제목으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수많은 쓰기의 동사들이 있습니다만 뒤로 물러서서 글쓰기라는 숲 전체를 바라본다면 쓰기의 동사는 딱 두 가지가 보입니다. '쓰다'와 '고치다'. 글쓰기의 동사 둘에 대해 쓴 글을 아래에 붙입니다.        



언젠가 나는 ‘글쓰기와 화투의 공통점’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가?”라는 독자 메일에 대한 대답이었다. 글이 나간 후 몇 통의 메일을 받았다. 호주에서 1.5세, 2세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에이미 선생님이 보내온 메일도 있었다. 학생들이 600자 정도의 글을 쓰는 데도 몹시 힘들어한다며, ‘관찰’과 ‘성찰’에 대한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신선한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감사 메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관찰이니 성찰이니 말은 그럴듯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할 때 느끼는 막막함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던데, 좀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조언은 없느냐는 항의도 있었다. 역시 그 질문에도 내가 제대로 답할 자격도 능력도 안 되지만, 그래도 나름 성의껏 대답해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예전에 자동차 부품 만드는 공장에서 일할 때 선배는 말했다. “기계, 그것 별거 아니다.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딱 두 가지 운동만 하는 거야. 왕복운동과 회전운동. 그게 다야.” 선배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공장 일이 서툴러 고생하던 내게 그 말이 자신감을 준 건 분명하다. 기계, 그것 별거 아니다. 마찬가지로 글쓰기, 그것 별거 아니다. 딱 두 가지만 하면 된다. 쓴다, 고친다. 그게 다다.

Nathan Dumlao on unsplash


생각은 글쓰기와 함께 생겨나는 운동에너지

우선 쓴다. 글쓰기에 대한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착각은 ‘생각한 다음 쓴다’는 것이다. 오해다. 쓰기 전에 하는 고민은 대부분 잡념일 뿐이다. 글쓰기를 미루는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은 글쓰기와 함께 생겨나는 운동에너지다. ‘무엇을 쓸 것인가’라는 생각은 접어두고 무조건 첫 문장을 쓴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그 생각이 두 번째 문장을 쓰게 한다. 두 번째 문장을 쓰면 더 많은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만일 그래도 막막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주변시’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어둠 속에서 한 물체를 집중해서 보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더 보이지 않고,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볼 때 비로소 그 사물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까 막막할수록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고 ‘무엇의 주변’에 대해 써보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계속 쓴다. 어색해도 이상해도 일단 쓴다. 끝까지 쓴다. 결국 쓰는 놈에겐 누구도 못 당한다.

막막할수록 '무엇'보다 '무엇의 주변'에 대해 써볼 것

다음 고친다. 다 썼다면 이제 고친다. 쓴다는 것은 사실 고친다는 말이다. 영감이 떠올라 단숨에 쓰고 단 한 번도 고치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많다. 아마 천재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들에겐 글을 고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천재들은 요절하니까. 평범한 우리에겐 깨알 같은 시간이 있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그 시간 동안 고치면 된다. 소리 내어 읽으면서 자신의 호흡에 맞게 고치고 또 고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더 많이 고치는 사람이다. 고치고 또 고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림은 고칠수록 나빠지지만 글은 고칠수록 나아진다고 하지 않던가.

여기까지 쓰는데 담당 에디터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무리 늦어도 오전까지는 마감해 주셔야 합니다.” 일주일 동안 ‘무엇을 쓸 것인가’ 생각만 하느라 마감을 하루나 넘긴 것이다.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위의 글에서 저는 "쓰기 전에 하는 고민은 대부분 잡념일 뿐"이고 "글쓰기를 미루는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썼습니다. 물론 타당한 말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유용한 말일 수도 있겠지요. 어서 글을 쓰게 하려고, 첫 문장을 시작하게 하려고 한 말이니까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선의였다 해도 지나친 말이었어요.


어떤 작가든 글을 쓰는 시간보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더 길겠지요.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은 글을 쓰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입니다. 글을 쓰지 못하고 고민만 하다 보내는 시간 역시 글쓰기에 꼭 필요한 시간이고요. 전혀 쓸모없지 않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낭비한 것 같은 그 시간은 글쓰기 준비의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 시간이 반드시 글쓰기로 이어져야 하겠지만요. 우리가 글을, 첫 문장을 쓰고, 고치는 시간으로 이어져야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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