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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누크 Jun 02. 2023

뉴질랜드 발레 원정기

몇 년 전, 한창 발레에 푹 빠져있던 나는 시부모님 환갑파티를 위해 뉴질랜드로 향했다. 당시 나는 시부모님 생일선물 고르는 것은 잊고선, 발레학원 수소문에 혈안이 되었다. 해외에서 발레를 해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뉴질랜드 도착 전부터 인터넷 검색, 그리고 시어머니를 통해 일주일간 다닐 수 있는 발레학원을 기어이 찾아냈다. 원데이클래스가 가능한 곳은 연세 지긋한 발레리나 두 분이 함께 운영하는 댄스학원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나는 발레학원의 문을 열었다. Dance School이라 쓰인 그곳에서 나를 맞아준 것은 연세 지긋한 두 발레리나 Val(벨)과 Jane(제인)이었다. 흰머리에 언뜻 봐도 꼬장꼬장함이 물씬 느껴지는 벨과 그녀의 삶에서 안 예뻤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것 같이 우아함 그 자체였던 제인은 연습실로 날 안내했다.


내가 다니던 화이트와 핑크가 메인 컬러인 발레학원의 분위기와는 달리 그곳은 어둡고 조금은 침침했다. 바닥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나무마룻바닥, 그리고 발레바는 스튜디오 벽에 붙어있어, 센터를 할 때 바를 옮길 필요가 없는 그런 구조였다.


벽에는 둘의 공연사진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아름답다.
세월이 무상하다.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 가운데, 몸을 풀고 있자니 네다섯 명쯤이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임신한 키위 그리고 엔지니어를 하고 있는 중국계 뉴질랜더도 있었다. 다들 서로 잘 아는 분위기였고, 벨은 나를 한국에서 왔다며 소개해줬다.


바워크(Barre Work)가 시작되었고, 나는 내가 배운 발레와는 조금은 다른 수업을 받았다. 내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포지션인 3번 포지션(발을 교차하여 반쯤 포개는)을 한다는 점 그리고, 턴 아웃(turn out: 발을 180도로 벌리는 형태, 물론 난 불가)을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하는 나를 보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했다는 점이 특이했다. 또한 센터에서도 기억에 남는 그랑줴떼(점프) 등은 없었다.


첫 수업을 끝내고 나는 두어 차례 그리고 하루는 개인레슨을 받았다. 내가 그간 배운 방식보다 그들의 방식이 조금 더 유연성이 있다는 것, 워밍업을 제대로 하는 법 등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수업방식을 이해하게 되었다. 취미생이니 너무나 혹독한 잣대로 춤을 바라보지 말 것. 마치 잣대로 잰 것처럼 동작을 무리해서 따라 하기보다는 가늘고 길게 오랫동안 몸을 상하지 않게 즐길 것. 그들처럼 70,80이 넘어도 즐길 수 있게. 그것은 무대를 뛰어다니는 20대 30대의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티칭과는 달랐지만 또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발레를 배우는 연령대도 다양했다. 아마 그날의 기억이 지금까지 내가 취미로 발레를 10년이나 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즐기는 삶이란

원칙이라는 것이 존재하더라도

때로는 유연하게 그리고

때로는 기술점수보다는

예술성에 더 후한 점수를 주는 걸


이 이야기를 들으면 벨은 나에게 발레를 가르치며 자주 쓰던 말을 내 뱉을 것이다.  


Bob is your uncle!
이제 이해했지?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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