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들과의 등산이 힘들어 보이자, 산에 가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남편이 같이 가 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남편이야말로 나에게 '산을 꼭 정상까지 올라가야 해? 그 주변까지만 가도 산에 간 거야. 거기까지 간 김에 맛있는 막걸리에 파전, 도토리묵까지 먹고 온다면 그 얼마나 완벽한 등산이냐!'를 전파한 사람이었기에, 같이 가 준다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감동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운동신경이 좋고, 가볍고 날쌘 남편은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산을 잘 탄다. 친정아빠의 말을 빌어 마치 날다람쥐마냥 가뿐하게 산을 오르기 때문에, 산에서의 남편의 모습을 보면 나랑 살면서 산에 간 것이 손에 꼽을 정도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과 같이 가는 산은, 나만 잘 따라가면 된다는 것이 처음부터 정해진 사실이긴 했다.
남편과의 첫 산은, 내가 반려견들과 계속 시도했던 대룡산이었다. 높이 899m의 산으로, 나는 그동안 집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등산로를 택해 올라가 봤는데 (물론, 반려견들과 함께 항상 중간 이상은 올라가 보지 못했지만) 남편 말로는 올라가는 길이 무척 다양하다고 했다. 그래도 처음은 내가 계속 다녔던 길로 리드했다.
'그래도 혼자서, 반려견 세 마리와 각각 한번씩, 네 번 이상은 와 본 길인데, 내가 조금은 잘 오르겠지?' 하는 마음으로 씩씩하게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우와, 남편은 그동안 쭉 산을 타 온 사람처럼 나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잘도 올라갔다. 숨이 차 내가 힘들어하면 내 앞에서 기다려주었지만, 내가 아니라면 한 번 쉬지 않고 정상까지 오를 것만 같았다. 남편은 그동안 검도를 하면서 체력이 조금 좋아진 것 같다며 나를 위로(?)했지만, 그럼 나는 너 검도하는 동안 놀았냐! 남편이 약국에서 일하는 동안 미브리씨 (닌텐도 링피트의 운동코치)랑도 열심히 운동했고, 산도 몇 번이나 더 와봤는데, 왜 나만 힘든 건데!!!!!! 남편이 내밀어 준 손을 잡고, 악으로 깡으로 남편 뒤를 따라 정상까지 올라갔다.
남들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산을 오르지만, 나는 내려오기 위해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니 대충 구경했으면 빨리 내려가자고 남편을 재촉했다. 올라갈 때는 그렇게 힘든데, 내려오는 길은 너무나도 상쾌하다. 힘들게 올라간 만큼 좋은 것 같다. 남편도 내가 왜 갑자기 산에 가는 걸 좋아하게 되었는지, 내려오는 길이 얼마나 상쾌한지 알 것 같단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남편이 있어 참 좋다.
왕복 6.8km의 거리를 정상을 둘러본 시간을 포함하여 3시간 30분 걸려 올라갔다 내려왔다. 혼자서는 무서워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정상까지 올라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집에 오는 길에, 발목이 약한 나에게는 발목을 덮는 등산화가 필요할 것 같다며 남편이 등산화 하나 사주겠다고 한다. 호들갑 떨지 않고, 물병 하나 들고 가볍게 산행하고 싶다고 했지만, 등산화 하나쯤 구매하는 것은 괜찮을 것 같다. 나와 남편의 새로운 취미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