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들어가기 전에 운전면허를 땄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운전면허를 따는 다른 친구들보다는 좀 늦은 편이었는데, 차도 없는데 면허를 따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면허 따기를 서두르지 않았던 내게 아빠가 말씀하셨다.
"네가 면허가 있으면 어쩌다 차가 생겼을 때 너한테 기회가 돌아갈 확률이 크지만, 네가 면허가 없으면 차가 생겨도 네가 받을 수가 없어.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갖는다는 건 그런 거야."
차를 유지할 능력만 있다면 차를 사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면허를 땄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어차피 차량 유지비용을 벌 수 없었지만,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면허증을 따면서 대학원 학업과 병행하여 병원에서 주 1~2회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 학생 신분으로는 나름 고소득의 용돈벌이가 되었기에.
그리고 약속대로 아빠는 내게 차를 사 주셨다. 그 당시 내가 몰기에는 좀 과한 중형세단을.......
그때부터였다. 마치 다리가 없는 인어공주처럼 걷지 않게 된 것이.
어릴 때부터 움직임이 없던 아이였다. 반드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때가 아니라면 혼자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내가 잘했던 모든 것들은 오래도록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으면 유리한 것들이었다. 대학원에서 교내 식당까지도 차를 타지 않고는 움직이지 못했고,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더더욱 걸을 일이 없었다. 내 다리가 퇴화될 거라는 농담을 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였는지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요즘 대부분의 도시에 산책로 조성이 잘 되어 있지만, 내가 사는 곳도 산책로와 자전거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자전거를 타고 이곳까지 오는 타지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들의 열정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관심은 없었는데, 얼마 전 이곳까지 나를 보러 찾아온 지인과 외곽 커피숍에 나갔다가 그들이 찾아오는 이 길이 얼마나 예쁘고 이용하기 편하게 잘 되어있는지를 보게 된 것이다. 강을 따라 반짝이는 햇빛, 예쁜 나무와 꽃, 풀들이 어우러진 길을 보며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예쁜 길울 왜 한 번도 걷지 않았을까.
남편과 나는 조금 이른 은퇴를 꿈꾼다. 도시를 벗어난 전원주택에 살면서 개들과 자연을 즐기며 함께 시간을 즐기고 싶은데, 직장생활을 하며 누리기엔 그 시간이 너무 짧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 취미 생활을 하며 온전한 여유로움으로 그와 나의 교집합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는 함께 할 취미거리를 열심히 찾고 있다. 늙어서 뭔가를 배우려면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을 알기에, 은퇴 후엔 진정 그 취미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싶기에 지금 열심히 찾고, 배우는 것이다. 그렇게 테니스를 시작했고, 그림과 검도, 목공과 악기에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다. 청둥오리가 떼를 지어 다니고, 얼음이 꽝꽝 언 개천 위로 돌을 던지는 개구쟁이들, 연을 날리는 할아버지,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애견인들, 혼자 또는 둘이서 열심히 걷거나 뛰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