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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May 23. 2024

피터캣

peter-cat

좁은 골목길에 하얗고 노랗고 빨간 불빛들이 달빛보다 먼저 바닥에 내리 꽂히고 있었다. 이리저리 짧은 박자에 맞춰 움직이는 그 불빛들은 이름 모를 바(bar)와 맥줏집, 식당 간판의 불빛이기도 하고 사람이 많은 큰 거리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좁은 골목으로 쫓겨온 작은 카페의 불빛이기도 하다. 목적이 없다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을 이 골목길 가장 안쪽에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은 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작은 간판을 단 술집이 있었다. 요란한 음악으로 골목길을 울리는 다른 술집과 달리 그곳에서는 잔잔한 Jazz음악 소리가 나지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여타의 통속 주점과는 조금 다른 이질적인 느낌의 이 바(bar)는 묘한 분위기와 외진 골목 끝에 홀로 자리한 Jazz바라는 특별함 때문에 꽤 많은 손님들이 일부러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 작은 바(bar)의 문틈 사이로 Norah Jones의 Don't know why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 앞에 작은 의자에 앉은 사내가 긴 담배 연기를 "후우"하고 내뿜으며 초점 없는 눈으로 골목 끝 어두운 담벼락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해?"

"아, 호이치 씨 오셨어요. 그냥 잠깐 나와서 바람 좀 쐬고 있었어요."

오랜 단골인 한 길 건너 스시집의 사장인 호이치 씨다. 그는 식당 영업을 종료한 후 항상 바(bar)에 들러 작은 잔에 위스키를 한잔 따라 마시고 집으로 돌아간다.


"장사 접을 생각에 마음이 심란한가 봐. 그러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니까. 이렇게 외진 곳에서도 주말이면 번화가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바(bar)를 왜 처분하려는지 나는 아직도 도통 이해가 안 된다니까. 날 봐 나는 식당 월세도 겨우 내는 수준인데도 꾸역꾸역 영업하잖아."


말을 하며 사내 옆에 앉은 호이치 씨는 케이스에서 담배 두 개비를 꺼내 하나를 사내의 손에 쥐어 준다. 담배를 건네받은 사내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에 가져간 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순간 담배 때문에 약간 몽롱 해진 그의 시야가 뻗어나가는 담배 연기로 인해 더욱 흐릿해졌다.


석 달 전이었다. 사내가 바(bar)를 정리하기로 한 것은, 바(bar)를 시작할 때도 별말이 없이 그를 도와주었던 그의 아내는 이번에도 별말이 없었다. 의외로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아내의 태도에 사실 그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치 않게 시작한 바(bar)였지만 그녀도 그 못지않게 열성을 다해 바(bar)를 키워냈으며 그 기간이 7년이면 적지도 않은 기간이었기에 그는 아내의 태도가 조금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지만 그는 따로 이유를 묻진 않았다.


바(bar)를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처음 아내에게 그 말을 한 밤, 사내는 지독한 악몽을 꾸었다. 어릴 적 놀던 넓은 강이었다. 익숙한 그 강의 모습에 마음이 차분해진 그는 소년의 모습을 한 꿈속 자신의 모습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넓은 강을 익숙한 몸짓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익숙한 자갈, 익숙한 모래, 익숙한 강을 가로지르는 소년의 마음은 한껏 여유롭고 평온해 보였다. 이내 강의 중간쯤 다다랐을 때 소년은 물 위에 둥둥 떠서 흐르는 물결에 몸을 맡긴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무슨 연유에서인지 소년의 눈이 서글픔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더니 갑자기 물 위에서 온몸으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소년의 발버둥이 고요하고 잔잔한 강물 같은 익숙함에 대한 진저리 때문인지 발이 닿지 않는 가늠할 수 없는 강바닥의 거리만큼 무섭고 진득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발버둥 치는 소년의 몸짓을 바라보던 사내는 끝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번뜩 눈을 뜬 그의 손에는 작은 펜이 들려 있었고, 책상 위에는 원고지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예전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바(bar) 영업이 끝난 후 부엌 구석에 있는 작은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 그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멈출 수 없는 이야기들은 어느새 그의 우선순위의 가장 위에 있었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전환점 같은 것이 찾아왔다는 것을


흐릿하게 시야를 가리던 담배 연기들이 곧 개고 또다시 골목을 비추는 밝은 빛들이 어지러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사내가 옆자리에 앉은 호이치 씨를 살짝 돌아보며 말했다.


"이미 마음먹었어요. 바(bar)는 요시노부 씨한테 넘기기로 했어요. 좋은 값을 쳐주신다고 해서요."

호이치 씨가 바닥에 꽁초를 지지직 비비며 일어섰다.

"이봐 하루키, 나는 자네가 바(bar)를 정리하고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무얼 하든 자네는 꼭 성공할 걸세. 7년 동안 매일 자네를 봐온 나니까 아마 그런 말을 해도 문제 없겠지"


그 말을 들은 하루키가 옅은 미소를 흘리며 웃었다. 잠시 뒤 자리에서 일어선 두 사내가 피터-캣(peter-cat)이라 적힌 바(bar)의 문을 열고 안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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