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이었다. 겨우 남아있는 해와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 사이로 한 커플의 뒷모습이 보였다. 둘은 짧게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 듯하더니 잠시 후 남자는 가로등을 마주한 채 전동 킥보드를 몰고 떠났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보내고 잠시 집을 향해 걷는가 싶더니 뒤돌아 남자가 사라질 때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멀리서부터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의도치 않게 방해자가 된 것도 같아 빠르게 여자를 지나쳐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자의 행복해하는 눈을 선명하게 보았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행복이 넘쳐흘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쁨에 취하게 만드는 순간들. 유영하듯 허공을 헤매던 행복이 어느 순간 갑자기 모여들어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함박웃음 짓게 만드는 순간.
나는 그런 순간들을 사랑한다. 지하철에서 마주쳤던 이제 겨우 걸음을 뗀 아이가,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한 그 아이가 나를 신기해하고 나의 목소리와 표정과 행동을 신기해하며 호기심을 가질 때, 나는 그 아이에게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열리고야 만다. 그러다가 내가 내민 손을 움켜쥔다거나 손을 피하며 까르르 웃기라도 하면 나는 행복의 용량이 초과되어 얼굴 가득 큰 웃음을 짓게 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하철 안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직장인, 학생 모두 지긋이 미소 짓고야 마는데, 그럼 그 순간에 지하철 안에는 행복이 가득 차 있다고 느껴진다.
간혹 나는 너무 불행하여 행복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하며 고민하고 고뇌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렇게 의도치 않게 행복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 행복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접고 마냥 웃고 기쁘게 그 행복을 만끽하게 된다.
그럼 가장 최근의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는가 하고 고민을 해보자면 그건 아마도 지난번에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인 것 같다. 언젠가 먹었던 맛있는 평양냉면집을 기억해 두었다가 엄마나 아빠 또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와야지 하고 벼르고 벼르다 지난주에 가족과 함께 가게 되었다. 슴슴하다고 말하는 국물을 한 숟가락 호로록하고 함께 나온 수육을 먹으며 함박웃음을 짓던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슴 벅차고 기뻤다.
모두에게 그런 순간이 있다. 어둠의 길에서 허우적거리며 걷다가 어느 짧은 순간 맞이한 행복 덕분에 순식간에 밝은 길로 접어들게 되는 그 순간.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곳곳에서 마주하는 짧고 농도 짙은 행복의 순간 말이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