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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Dec 20. 2023

겨울엔 역시 재즈

엔트리55에서 맞이한 송년회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이 내리는 밤이다. 밤이 되면서 날씨가 점점 추워져 옷깃 사이로 차가운 바람들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 없다. 이미 적당량의 술을 마신 우리는 점점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으니까. 추위도 두렵지 않았고 걱정도 사라져 버렸다. 짧은 시간 두껍게 마신 소주 몇 잔에 어느새 기세등등해진 우리다. 예약해 놓은 재즈바를 앞에 두고 잠시 멈춰 선다.


"일단 지하로 내려가는 술집은 분위기 좋은 술집이야"

"술집 아니고 재즈바라고 몇 번을 말하냐"

"바가 술집이야 넌 술 먹지 마라"

"겨울엔 역시 재즈지!"


12월은 망년(忘年), 그렇다. 송년(送年)의 계절이다. 올 한 해를 어찌어찌 살아왔다는 그런 생각과 다음 해에 대한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을 가진 자들은 12월에 모이게 되어 있다. 모여서 올해에 구체적으로 무엇이 아쉬웠는지 그리고 다음 해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계획하고 있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그냥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기에 좋은 음식과 좋은 술과 분위기 있는 음악이 있다면 아마 더할 나위 없는 송년회가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사당역 앞 작은 재즈바 앞에 서있다.


"들어가자"


왠지 모를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한 계단 한 계단 발을 내디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저기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이 내리는 등 뒤 세계와는 다른 곳으로 점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려갈수록 어두워졌지만 머릿속은 점점 맑아진다. 고단한 육체는 저쪽 비 내리는 세상에 두고 말짱한 정신만 챙겨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울긋불긋한 조명이 반기는 재즈바 앞에서 티켓을 받아 든 우리는 입 안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서로의 얼굴과 티켓이 담긴 사진을 한 장 남긴다. 의식처럼 치러진 사진 찍기를 마무리하고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함께 마실 술을 주문한다.


"재즈엔 역시 와인이지!"


뽀얀 와인을 잔에 가득 따름과 동시에 공연이 시작된다. 연주자가 피아노 소리를 공간에 가득 따라낸다. 동시에 드럼 소리와 기타 소리가 더해진다. 조용하던 공간이 순식간에 한가득 소리로 채워진다. 이제 더 이상 남은 공간이 없는 것 같은데, 이제 곧 넘쳐날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던 그 순간 보컬의 목소리가 더해지며 꽉 찼던 공간이 재조정되고 개운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 황홀한 순간이다.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한 노랫소리지만 그 자체로 즐겁고 그 자체로도 분위기는 황홀하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와인잔을 부딪히며 내는 소리로 우리도 공연에 작은 모래알 같은 것을 보탠다. 


짧은 공연을 뒤로하고 계단을 오르며 생각한다. 분명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고, 앞으로의 날이 두려울지도 모를 12월의 어느 날이었지만 공연을 함께 한 그 순간만큼은 공간 가득 채워진 노래와 악기 소리로 인해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행복했다고. 재즈바의 계단을 다 오르고 나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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