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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엔 Dec 29. 2020

우리가 갇혀버린 '코로나'라는 <터미널>

공항을 참 좋아한다. 향수 냄새라도 한 번 맡아보고 선글라스라도 한 번 껴봐야 제 맛인 면세점, 비싸고 맛도 그닥이지만 떠나면 언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게 될지 모르니 미리 먹어두는 공항 푸드코트의 밥도 좋다. 또 공항의 스타벅스는 외국인들도 북적이니 이미 외국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고, 시간이 남아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그 지루함도 좋다. 공항을 좋아하다 못해 공항버스 마저 좋아한다.


그런데 원하는 어디로든 나를 데려다줄 수 있는 이 공항에 갇히게 된다면? 가려던 목적지로도 가지 못하고 집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공항에서 먹고, 자고, 씻고 기약 없이 살아가야 한다면? 공항은 감옥이 되고 면세점에서 풍기던 향기는 두통을 유발할 뿐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말이 되는 이야기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재미와 안타까움, 감동까지 안겨준다. 영화 <터미널>은 동유럽 어딘가의 '크로코지아'인(人)인 주인공 빅터(톰 행크스)가 뉴욕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마치기도 전에 자국인 크로코지아가 내전으로 국가가 붕괴되어버린다. 빅터는 무국적자가 되어 뉴욕으로 들여보내지지도, 돌아갈래도 돌아갈 곳이 없는 처지가 된다.


크로코지아의 화폐는 휴지조각이나 다름 없어졌으니 달러로 환전도 불가능할 테다. 결국 국적도 없고 돈도 없는 절망적인 빅터에게서 나는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전 세계 8천만 명 이상의 확진자를 발생시킨 코로나는 우리를 공포의 터미널로 몰아넣었다. 해외는 물론 국내 여행도, 학교도, 직장도, 심지어 집 앞 마트도 마음 편히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코로나라는 재앙이 언제 끝나려나 막연하게 기다리는 상황.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쓸 수 없고 돈이 없는 사람은 벌 수도 없는 카오스. 빅터는 공사 중이라 비어있는 67번 게이트에, 우리는 바이러스가 아직 침입하지 않은 각자의 터미널에서 머물고 있다.


코로나의 창궐로 모두 혼란스러워할 때 누군가는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삶의 형태를 바꾸어 '온택트'로 살 길을 모색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샵으로, 수업은 등교 대신 '줌'으로. 다른 이들도 뒤늦게 그들을 따라 이 상황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방식의 삶을 이제 막 적응해가려고 하고 있다.  

빅터도 살아야 했기에 조국을 잃은 슬픔을 뒤로한 채 공항 내 짐 카트를 정리하고 보증금을 가져가는 방법을 터득해 돈을 벌어 끼니를 해결한다. 67번 빈 게이트를 침실처럼 서재처럼 꾸며 놓고 나름의 아늑한 터전을 만든다. 우리와 빅터는 그렇게 이 터미널에서 살아갈 방법을 스스로 깨닫는 중인 거다.


그렇지만 공항 관리국 책임자 프랭크는 자신의 승진을 위해 완전무결한 공항을 만들기 위해 빅터를 어떻게든 내쫓으려 한다. 그 안에서 살아보려고 이리저리 궁리하는 무국적자에 대한 연민은 찾아볼 수 없다. 목적도 다르고 비교 자체도 좀 곤란하지만 책임자, 윗선이라는 위치를 놓고 볼 때 코로나 위기 상황의 대응 정책을 시행하는 우리 정부와 프랭크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 있겠다. 물론 프랭크는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빅터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그가 공항에서 살지 못하게 하려 하고 우리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고자 공익을 위해 정책을 만든다. 하지만 그 정책이라는 것들, 조금만 더 공정하고 수긍이 가는 것들이라면 좋겠다. 누구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누군가에게만 적용되는 일방적인 규칙은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사람들을 더더욱 힘 빠지게 만들고 빅터처럼 내쫓기는 사람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터가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역시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우정으로 빅터는 위로받고 그들을 위로한다. 그리고 각자의 꿈을 존중하고 서로가 꿈을 이룰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돕는다. 그 와중에 사랑에도 빠진다. 우리도 가족과 친구가 있기에, 우리를 걱정해주고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주는 질병관리본부와 많은 의료진이 있기에, 공평함은 어찌 됐건 다 함께 약속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위기 속에도 가끔 웃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 <터미널> 중


언젠가 우리도 이 긴 터미널에서의 칩거를 뒤로하고 다시 밖으로 나가 숨을 쉬며 학교도 가고 커피도 마시며 다 같이 줌바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날이 정말 온다면 우리에게 암흑 같았던 이 시간과 바이러스는 더 이상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나라를 잃은 슬픔과 프랭크의 방해 공작이 빅터의 오랜 소원을 꺾을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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