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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필요하다는 건 사실핑계예요

나한테 필요한 건 따로 있었어요.

가장으로 살다 보면 돈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이 매달 느낀다. 심지어 혼자서 가장과 양육자의 역할을 하다 보면 어느샌가 나 자신은 잊어버린 채,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치중되어 하루하루를 보내고는 한다. 


돈은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계속 돈을 쫓아가다 보면 내 아이도, 나의 모습도 점점 사라지게 된다. 어느 날 문득 휴대폰 갤러리를 봤는데 최근 사진이 다 일과 연관된 사진, 풍경사진뿐인 것을 보았다. 미혼모 시설에서 보호받으며 지냈을 때에는 아이가 방긋방긋 웃고 있는 사진과, 풋풋한 얼굴로 미소 지은 내 사진들이 참 많았는데 보호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자립을 하고 난 뒤로는 가끔 이렇게 중간중간 우리의 예쁜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보이지 않는 시기가 있다. 


너무나 바빠서, 일에 치여, 돈에 치여서 내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내 아이가 오늘 키가 얼마나 컸는지, 오늘의 내 하루 종일 모습은 어떤지 거울조차 보지 못하고 사는 것 같은 나를 발견하고 나면 지금처럼 이렇게 잠시 멈추곤 한다. 내가 말하는 멈춤이란, 일을 중단한다기보다 잠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현재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 내가 무엇을 멈추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나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쩌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지금 당장의 순간을 피하기 위한 핑계였을 수 있다. 사실 나에게는 나를 돌볼 시간이 필요한데, 나를 돌보면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고, 내가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벌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았기에 나를 돌보기 위한 여유 있는 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돌려서 했달까.


다시 말하지만 돈은 중요하다. 돈이 없어 먹지 못해 5킬로가 넘게 빠져본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때는 돈만 없었던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더 힘들었다. 


절대 잊을 수 없던 가난한 시절이 지나고, 또 한 번 나에게 생활고가 찾아온 적이 있다. 이전보다야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1년 동안 돈을 못 벌게 되었고, 부득이하게 월세를 몇 달씩이나 밀렸던 적이 있었다. 분명 상황은 같은데, 내 상태는 달랐다. 


매달 들어오는 돈은 없었지만 내 마음은 평온했고, 행복했다. 


돈은 어떻게든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고, 나는 매달 나가는 비용을 어떻게든 충당할 것이라고 믿었다. 돈을 입에 달고 살며 걱정만 하던 그때와는 달리 아침마다 아이 손을 붙잡고 유치원에 등원시켜줄 수 있음에 감사했고, 난생처음으로 아이에게 방학을 경험하게 해 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매일 같이 밤 10시 늦은 시간에 들어오지 않아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고, 나는 내 시간을 찾아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 날, 신기하게도 생각지도 못했던 돈이 생기게 되었고, 나는 불안보다는 평온하게 아이와 둘만의 시간도 보내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매일 같이 고민하던 문제는 고민하지 않고 나서야 해결이 됐다. 혹은 일어나지 않던가.

나는 그때 느꼈다. 돈 걱정하지 않겠다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고 나니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쯤에는 집에서만 일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뭐든 되겠지. 나는 또 믿었고, 평온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 나는 그때의 목표처럼 집에서 일을 한다. 매일 아침 아이와 손 붙잡고 함께 등굣길을 나선다. 그 결심을 하고 하나씩 하나씩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다 보니 지금은 그때보다 3배쯤 더 버는 것 같다. 참 돈이 재미있다. 그렇게 돈이 없다 없다 할 때는 돈이 안 벌리다가, 진정한 나를 찾는 시간을 갖고 나니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결국 나는 아이와 일, 그리고 나 자신을 골고루 챙기면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일이 순탄한 것은 아니지만 순탄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뜻이니 그 또한 감사하다.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혹은 나를 돌보고 싶은데 그것을 돈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전자라면 급한 불을 먼저 꺼야겠지만, 후자라면 나처럼 잠시 멈춤으로 인해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 


돈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한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돈 앞에도 불안하지 않는다. 내가 고민하는 것의 80%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며, 어차피 나에게 찾아올 일은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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