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통째로 고난의 연속인데 뒤로 물러날 곳이 없다.
그런 날이 있다. 오늘따라 유독 왜 이렇게 세상이 나한테 매몰찬 것 같지? 하는 날.
오늘은 나에게 그런 날이다. 아이 초등학교에서는 2시간 동안이나 상담을 했고, 일은 잔뜩이나 밀렸는데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았으며, 아랫집에서는 층간소음이 심하다며 초저녁부터 우리 집에 찾아와 날을 세웠다.
아침부터 시작해서 저녁까지 쉬지도 않고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어떤 일이 해결되기도 전에 다른 일이 터져버리고,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런 날에는 참 아무 생각하지 않고 잠이나 자면서 세상을 도피하고 싶은 날인 것 같다. 도피는 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세상은 돌아가고 시간은 흘러간다. 나에게는 반드시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으며 그것이 내가 도망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이란 그렇다. 내가 아무리 감정적으로 해결하고 싶고, 모두 다 놓아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가장이다. 당장이라도 툭 하고 건들면 울 것만 같지만 운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가장의 삶이다.
이런 날에는 사실 가장이라는 어깨의 무게가 참 무겁게 느껴진다. 기쁜 일이 생겨도, 어려운 일이 생겨도, 난감하거나 두려운 일이 생겨도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과 함께 나의 사사로운 감정들을 등 뒤에 가려두고, 직접 나서야만 한다는 것이 가끔은 홀로 나 자신과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결론은, 나는 해내야만 한다.
신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고 한다. 가끔은 이게 정말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맞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어떤 이슈가 끝나고 나면 또 다른 이슈가 찾아온다. 처음에는 이 시련이 지나고 나면 끝나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시련이 끝나고 나니까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반복하면서 시련의 끝을 기다리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시련은 절대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
'이일만 끝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때까지만 참아보자.'
이 말을 달고 살았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이 일이 끝나고 나면 다른 일이 찾아온다. 어차피 세상은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고난은 계속 찾아올 것이며, 나는 이겨내면서 살아가야만 한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이 순간 내게 필요한 성장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이 순간을 시련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성장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묵묵히 돌파구를 찾아 나선다.
나에게 있어서는 때로는 시련이기도 하고 때로는 성장과정이기도 하다. 사람이 언제나 긍정적일 수만은 없으니까, 이 순간이 힘들다면 시련이 찾아왔다고 얘기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 다만, 이 시련의 결말은 성장한 내 모습을 보는 해피엔딩이길 바라며 오늘의 나를 위로한다.
어차피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을 세상, 그렇구나 하고 흘려보내자.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믿는 것이다. 넌 오늘도 제일 멋졌어 라고 한 번쯤 툭 하고 뱉어주는 것. 그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