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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실장 Dec 03. 2020

호밀밭의 파수꾼

2020_14

세상에 불평/불만을 갖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에 소중함을 잊은 채 우울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보며, 무언가에 매몰되어 그것만 찾아 헤매듯이 좋지 않은 것들만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동안 기억하지도 못했던, 먼 옛날 케케묵은 과거 속에서 암울했던 지난날들까지 떠올려진다. 그 상황 그리고 그 순간이 몸서리치도록 싫지만,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아무리 떨쳐내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때가 있다.


평소 여느 때와 같이, 어제도 입었었던 옷을 걸치고, 약간은 다르게 분위기를 달리 해보려 했지만 누가 봐도 어제와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갔는데.. 분명 어제보다 활기차고, 어제보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밝게 나왔음에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무슨 일 있어?" "요즘 뭐 고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뭐 고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질문과 걱정은 나의 리듬을 다시 어둡고 쓸쓸한 긴 터널로 인도한다. 밝은 성격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두운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니거늘, 나도 모르게 기분에 인색해지곤 한다. 성격이라는 게 대부분 생존에 이점이 있어서 발달된 것이라, 40여 년을 밝고 어두움 사이 딱 중간쯤 돼 보이는 언저리에서 버티게끔 발달된 유전자로 살아왔는데, 이럴 때가 딱 그런 때이다.



감히 생각해보건데, 우울함은 밝음보다 편하다. 몇몇 천성이 정말 밝은 사람들을 보긴 했지만, 내 기준으로 보면 분명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 것이, 밝은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백배는 편하고 쉽다. 사람이 어두워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 따위는 상관이 없다. 그 어두움이 밖으로 노출되거나, 누군가에게 전이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혼자 있으면서, 그 따위로 있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운 것이다. 마치 사춘기 시절, 아주 작은 것에도 짜증이 났지만, 또 그리 대수롭지 않게 그 짜증을 표출하고 행했던 것처럼, 어려운 것보다는 쉽고 편한 것을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성이라는 것을 키워오면서, 우린 쉽고 편한 것들을 자제한다. 그릇의 크기가 10이라면 9에서 9.5는 불편한 것을 담는다. 짜증도 내고, 불평불만을 얘기해도 될 텐데, 누르기만 하니, 속이 썩어 문드러져 항상 두통약을 달고 사는 것이다.

주인공과 우리의 사춘기는 많이 닮았다.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지역 사람들이 들으면 알만한 그리 나쁘지 않은 학교에 다니며, 아주 평범한 친구들이 있는 기숙사에서 그 또래만이 가질 수 있는 사건들로 매 순간 버라이어티 한 삶을 보내고 싶다. 이성에 한참 관심 많을 나이일 테니, 적당한 장소에서 아주 적당한 타이밍에 아주 아주 적당한 연애를 하고, 담배와 술과 같은 것으로 어른들의 흉내를 내면서, 그 시절 그때 가장 중요한 일들(어른의 시각에는 소소한 것들)을 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지나면 별것 아닌 것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여 별것으로 만들고, 그 별것을 하는데 목숨을 건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둘이 하는 게 좋고, 둘보다는 떼거지로 하는 것이 낫겠다. 1의 재미에 100 재미를 느끼고, -1의 좌절에는 -10만큼만 우울함만을 느끼고, 다시 다른 재미를 찾아 나선다.



주인공은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음에도, 부유해서 좋은 것 따위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학교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들을 때면, 당장이라도 수백 가지의 이유를 들어 학교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기숙사에는 멍청하고 지저분한 녀석들이 득실득실하고, 뭐 가끔 괜찮은 순간일 때도 있지만, 그 순간이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녀석은 쓰레기다. 갑자기 이성이 보고 싶어 연락을 했다가도, 수준 낮은 대화에 신물을 느끼고는 매서운 말을 해대기 일수고, 담배와 술은 항상 함께 한다. 지나면 별것 아닌 것들은 그 순간에도 별것 아닌 것으로 관심이 없고, 그 별것 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 일 따위를 하는 것은, 저 쓰레기들(학교, 친구들)과 같기에 하지는 않지만,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다. 누구와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고, 재미있는 일의 뒷면에는 늘 한심하게 느껴지는 우울함이 함께 한다.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한 청소년의 2박 3일간의 성장소설이다. 아니 성장은 모르겠고, 불평, 불만 드라마다. 주인공이 보는 것과 생각, 그리고 행동들의 문자들을 책으로부터 머리로 옮겨와 상상으로 그려보는 것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지만, 사춘기로 보이는 한 인간의 성장과정 속에서 겪는 복잡한 심정이 잘 묘사되어 '표현의 기술'을 느끼게 해 준다.


대부분의 고전들이 그렇듯이 다른 시대, 다른 환경, 다른 생각들로 채워져 있지만 읽는 재미가 있다.



ps.. 올해 첫 구세군 냄비를 봤다. 5천 원짜리를 꺼내려다 실수로 만 원짜리를 넣었다. ^^;;

산타할아버지가 꼭 보고 계셨으리라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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