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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요 Feb 28. 2024

아빠와 소녀의 후임자 수업

세상을 떠난 아빠의 인생 수업



 얼어버린 수도꼭지를 교체하려고 수전을 뜯어냈다. 오래되고 녹이 슬어서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장갑을 꼈는데도 손에 물집이 잡혔다. 내친김에 작은 온수기를 설치하자는 생각이 들어 철물점에 들렀다. 적절한 용량과 필요한 전력량을 확인하고 부품을 사 왔다. 힘이 모자라 고생을 좀 하다가 손이 한 번 더 까지고서야 설치를 끝냈다. 아무래도 혼자 하기엔 힘이 들 때가 있다. 지친 상태로 손가락에 밴드를 붙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위험한 일에 일절 손을 못 대게 하셨다. 어린 소녀에게 위험한 일이란 보통 달리다 넘어지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거나, 위험한 물건을 만지는 일이었다. 특히 아빠는 기계를 만지는 일을 하시던 분이라 그 분야에 대해서는 엄격하셨다. 처음으로 라면을 끓이던 날에는 냄비에 물을 받는 것보다 가스 밸브를 열고 잠그는 법에 대해 먼저 배웠다. 뜨거운 식기를 다루는 법, 화상을 입었을 때 응급처치하는 법도 잊지 않았다.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나가려면 무릎, 팔꿈치 보호대와 헬멧을 쓴 모습을 확인받아야 했다. 길거리를 다닐 때는 항상 차와 사람을 살피고, 언제든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지냈다. 전기와 기계를 다루는 일이라면 작은 볼트를 조이는 일까지도 항상 아빠의 몫이었다. 엄마도 예외는 없었다. 당장 아빠가 없으면 전구 하나를 갈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신의 가족들이 위험에 처하는 일을 참을 수 없던 아빠 덕분이었을까, 나는 큰 사고 없이 어린 날을 보냈다. 



 하지만 어떤 위험은, 그렇게 철저했던 아빠의 눈마저 기어이 피하고 서서히 퍼져나갔다. 사내 정치에서 밀려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미국 발 경제위기로 내리막세를 타는 동안 아빠의 몸 안에서는 무언가가, 아무도 모르게 커져 나갔다. 한참 후에야 통증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 간 아빠의 뱃속엔 대장암이 자리 잡고 있었다. 꽤나 전이가 된 상태였고, 아빠의 젊은 암세포들은 활동이 왕성했다. 아빠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아빠는 수척해졌고 그걸 지켜보며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려보낸 우리 가족들은 메말라갔다. 하지만 정작 아빠 앞에서는 울 수 없었다. 나에게는 아빠가 내려준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 많은 대학생이었던 나는 대낮에 집에서 아빠에게 수업을 들었다. 수업은 갑작스레 시작됐다. 아빠는 창고에서 꺼낸 커다란 공구함을 열어 보여주셨다. ― 이건 니퍼고, 저건 렌치, 펜치, 스패너. 드라이버에는 이런 종류가 있어. 나사의 머리에 맞는 모양을 써야 해. 볼트와 너트는 이런 식으로 체결돼. 못과 나사는 쓰임이 다르고, 전동 드라이버에는 회전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버튼이 있어…….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사뭇 진지한 아빠의 표정에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은 실전이었다. 시골 주택에는 뭐 그리 수리할 것들이 많은지, 나사를 풀고 조이 고를 반복했다. 물이 새는 수돗가에 앉아서 테프론 테이프를 둘렀다. 두꺼비집의 스위치를 내리고, 필라멘트가 나간 화장실 전구를 돌려 빼고 새것을 끼워 넣었다. 밝아진 화장실에서 아빠 몰래 울었다.



 아빠가 이렇게 열성적인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당신의 품 안에서 소중하게 커온 딸은 이제 어른이 되었고, 아빠는 언제까지 전구를 대신 갈아줄 수 없었다. 당장 다음 달에 찾아올 수도 있는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없는 앞날에 화장실 전구가 나간다면 가족들 중 누군가는 캄캄한 화장실에서 울고 있을 것이었다. 아빠는 그걸 생각하고 목이 메었을 것이 분명했다. 말하자면 후임자를 찾아놓고 떠나려는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다. 



 아빠의 후임자가 된 나는 어른 수업을 듣느라 바쁜 스무 살을 보냈다. 집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 싱크대 수전에서 물이 샐 때는 어떻게 수전을 교체하는지, 엄마의 억장이 무너질 때는 어떻게 그것을 지지하는지. 살면서 나타날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할 때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 삶과 죽음은 가까이 붙어있고, 그럼에도 긍정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아빠에게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될 수 있었고 결국 무엇이 되었는지. 아빠가 직접 가르쳐준 것들도 있었고, 선문답 같은 대화로 깨달은 것도 있었다. 그러고도 남은 수업들은 떠날 준비를 하는 아빠를 보며 스스로 깨우쳤다. 딱 일 년의 아픈 시간을 보낸 아빠는 초여름의 나비처럼 떠났다. 나의 스물한 살 여름은 상실로 시작되었으나 누구보다 뜨거운 날들을 보냈다.



 서른을 넘긴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아주 많다. 일단, 운전을 할 줄 안다. 아빠가 계셨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운전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셨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빠를 닮았는지 꽤 능숙하게 운전을 할 줄 알고, 어디에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 아빠도 이 정도면 나에게 운전대를 맡기시리라 생각될 때가 있어 가끔은 웃음이 난다. 특히 가족들을 태우고 여행을 갈 때면 더욱 그렇다. 집수리도 잘 배운 만큼, 잘 해낼 수 있다. 익숙하게 수전을 갈고, LED 등도 문제없다. 사다리에 올라가는 것이 조금 무서워서 그렇지, 창문에 커튼을 다는 일도 어렵지 않다. 8년의 경력이 생기며 회사 일도 능수능란해졌다. 이제는 처음 하는 일들도 척척 해낸다.



 물론 그럼에도 아직 모르는 일들도 많다. 아이를 키운다는 일은 어떤 건지. 그 아이를 두고 먼저 떠나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 모양일지. 생각만 해도 억장이 무너지는 일들에, 당신은 어떻게 우리 앞에서 울지 않을 수 있었는지 아빠는 알려주시지 않았다. 아빠는 그 대신, 어렵고 두려운 문제조차 풀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살다가 힘든 날들이 오면 어깨가 무거워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가족의 중대사를 결정하거나 엄마와 동생을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맡았을 때 특히 그렇다. 새는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아빠를 실컷 원망한다. 왜 이렇게 빨리 떠나가면서 나를 후임자로 두었느냐고. 그저 가볍게, 이런 일들을 모르고 사는 법은 왜 알려주지 않았냐고. 그러다가도 눈물을 닦고 아빠가 알려준 우선순위를 퍼즐처럼 맞춰본다. 문제와 정답을 그려놓고 둘 사이에 알맞을 장비들을 생각해 보는 아빠의 방법이다. 그러면 노련한 기계공의 가방에서 나오는 부품처럼, 문득 새로운 해결 방법이 떠오른다.



 수전을 갈다가 상처가 난 자리의 밴드를 떼어보았다. 새 살이 거의 돋았다. 가끔 아빠에게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쓴다. 오늘은 이렇게 쓰고 싶다



― 아빠, 당신의 품 안에 살던 어린 소녀는 이제 많은 것을 할 줄 알게 됐어요. 생각해 보니 아빠의 인생 수업은 두 발 자전거를 타는 날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보조 바퀴를 떼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던 저를 기억하시잖아요. 겁이 많아서, 넘어지면 아플까 봐 무서워서 쉽게 발을 떼지 못했어요.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넘어져 봐야 겁이 안나. 한번 해 봐야 두 번도 할 수 있는 거야.”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 살다 보면 상처를 입을 때도 있지만, 결국 멋지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아문 자국이 있네요. 제 상처에도 딱지가 앉았다가 새 살이 돋았고, 이제는 괜찮아요. 겁내지 않는 어른이 된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어디선가 저를 보고 계신다면, 웃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성장한 저와 저를 키워낸 아빠 스스로를 뿌듯해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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