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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요 Mar 06. 2024

천천히 걷는 연습

'어쨌거나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숙제를 안 했다. 무슨 숙제냐면, 취미로 다니고 있는 보컬 수업에서 내 준 노래 연습이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하니 연습 시간이 일주일이 있었는데, 그제 노래방에서 단 한 번을 불러보고는 한 번도 연습을 하지 않았다. 노래방도 연습이라 쳐준다면 한 번을 한 셈이다. 지독하게도 숙제를 안 하는 학생이로다. 이래서 학원, 교습소에서 성인 수업을 기피한다는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열심히 숙제를 한 적 있었나? 생각해 보면 학생 때는 꽤나 열심이었다. 자발적이라기보다는, 하라니까 하는 편이었다. 숙제를 안 해서 혼나는 게 싫었다. 선생님에게도 혼이 나지만 엄마에게도 혼이 났다. ‘해야할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숙제만 제대로 하면 따로 공부할 필요도 없었다. 그 김에 한 번 더 배운 걸 복습하면 그럭저럭 시험도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을 잘 봐야하는 이유도,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학생이니 공부도, 숙제도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나와 성격이 정 반대인 동생은, 나 같은 학생들의 숙제를 베끼는 편이었다. 누군가는 항상 해올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공부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숙제도 공부도 대충했다. 대신 동생은 그 아낀 시간을 모아 열심히 놀았다.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뽀로로 타입이었다. 어릴 때부터 놀던 버릇이 여태 그대로다. 지금도 노는 데 성심성의를 다 하는 편이다. 사람들이 ‘해야한다’고 말하는 일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는다. 회사 일 또한 적당히만 하면 스스로도 만족한다.     


나는 가끔 억울했다. 왜 나는 동생처럼 못 사는 걸까? 그까짓 거 대충 해도 되지 않나. 숙제를 안 하고는 한번 혼나면 그만이고, 옆 친구 걸 베낄 수 도 있는데. 하라는 숙제를 열심히 하고, 하라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 덕에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는 했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돌아보니 그 대학이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좋은 대학에 갔어야 했는데,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일도 열심히 했다. 만족할만큼의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걸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해야하는 일이 뭐든 열심히 했다. 공부도, 취업도, 일도. 

    

공부와 취업과 일 사이에서 쉬었던 적이라고는 방학과 주말밖에 없던 내게, 4개월간의 질병휴직은 그래서 특별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긴 시간을 쉬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작정하고 놀아보기로 했다. 짐을 챙겨서 파주를 떠났다. 가장 먼 동네라고 생각했던 제주에 집을 구했다. 간단한 짐을 차에 싣고, 목포에 내려가서 배를 타기로 했다. 깜깜한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리며 혼자 많이 울었다. 열심히 사느라 고생했던 과거의 나와, 결국 버티다못해 우울증으로 질병휴직을 하게 된 지금의 나, 스스로를 이겨내고 잘 살아내야 하는 미래의 내가 짠해서 그랬던 것 같다. 흔치 않은 폭설이 내렸던 1월, 제주에 입도를 했다. 어쨌거나 지금 해야 하는 일은 혼자서 잘 놀며 회복해서 무사히 복직을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놀아야 하지? 사실 방법을 잘 몰랐다. 작정하고 무언갈 하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빠듯했다. 월급이 전액 지급되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돈 없이 뭘 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래도 집에만 있으면 열심히 노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매일 바닷길을 걸었다. 하루를 가득 차게 보내고 저녁이 되면 어떻게 놀았는지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내일의 계획을 세웠다. 어디를 갈까,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하면 열심히 놀 수 있을까, 더없이 후회 없는 휴직 생활과 제주살이를 만끽할 수 있을까.      


3월이 되니 그 고민도 괴로워졌다. 너무 열심히 놀아 모든 것이 질렸다. 날씨가 더 따듯해졌으나 산책 말고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뭘 해야 하지? 불안했다. 아무것도 없는 빈칸 같은 시간을 아껴서 실컷 놀고 싶었지만 충분히 즐기고 있단 생각이 들지 않아 초조했다. 벚꽃이 필 때 다시 파주로 올라가겠다고 주변에 선언했었는데, 이미 한 두 그루의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안타깝게도, 벚꽃이 만개한 제주를 만끽하지 못하고 파주로 올라왔다. 간단한 수술을 받아야 했고 회복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제주에 분홍꽃이 피고 지고 흩날리는 동안 나는 병실에 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휴직을 끝마치다니. 코로나로 보호자 출입이 제한돼 혼자 덩그러니 앉아 생각했다. 지루하던 차에, 그간 쓴 일기를 펼쳤다. 찬찬히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 거기엔 무지갯빛 제주살이가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주에서 혼자 살게된 나는 평소에는 하지않던 요리도 직접 해 먹었다. 맛있는 빵집을 찾아내 하나씩 사 먹는 것도 재미였다. 가끔은 배우고 싶었던 목공 수업을 들었다. 직접 만든 도마와 수저를 사용하니 뿌듯했다. 하늘이 열리는 날에는 별을 보러 한밤중에 산을 오르기도 했다. 태어나서 가장 별을 많이 본 날이었다. 어떤 날에는 제주의 토속 음식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입맛에 맞는 식당을 찾으면 기뻤다. 매일봤던 바다 또한 조금씩 다른 풍경이었고, 파도에 뭉툭해진 유리 조각을 찾아 장식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노래를 들었다. 알록달록하고 부드러운 일상들이었다. 


어떻게 이보다 더 열심히 놀 수 있었을까? 일기장에는 최선을 다해 휴직 생활을 즐겼던 내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 휴직 사유였던 우울증도 많이 좋아졌다. 무기력에서 벗어나 혼자 돌아다니고, 무언가를 할 힘을 얻었다. 그리고 열심히 놀러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제주를 이렇게까지 만끽하기도 힘들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더 열심히 하지 못했다며 후회를 하고 있다니.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열심히 하는 사람’인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해 살았다. 설령 그것이 즐기고 놀아야 하는 상황이라도 말이다. 이제 그것이 불만이냐고 한다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야 미래의 내가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 지나고 보면 스스로의 노력이 조금 부족해 보여도, 나는 언제나 그 상황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때의 나를 믿고 이해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 것이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이제 그 열심을 조금 덜 열심히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달려가면 스스로가 스스로를 괴롭히는 꼴이 된다. 3개월만에 열심히 놀기에 지쳤던 나처럼, 모든 것에 금방 질리고 지친다. 천천히, 설렁설렁 가는 법을 익힐 필요도 있다. 그래야 장기전에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생의 많은 것들이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것일테니 말이다.

   

어깨 힘을 빼고, 천천히 산책하듯 걷기. 그래야 오래 만족할 수 있다. 그것이 열심히만 살던 내가 4개월의 휴직 동안 제주에서 배워온 것이다. 소요逍遙 하기! 내 필명이 이렇게 지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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