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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요 Mar 11. 2024

나의 즐거움은 새로운 시작

당신의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일이든 일상이든, 어떤 것에서든 즐거움을 찾아야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이 인생 같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하루, 일주일, 한 달을 그저 흘러가게만 두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역시나, 나를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어야 윤활유를 바른 톱니바퀴처럼 착착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재밌는 일을 하면 에너지 부스터라도 먹은 것처럼 기운이 나기도 하겠지. 


 요즘 주변 사람들이 인생이 재미없다고들 한다. 좋아하는 것을 해보라고 했더니 사실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우물거린다. 취미도 없고, 취미를 찾아 나설 기력도 없고. 뭘 해야 즐거울까, 각자 인생에서 그런 것이 뭘까 같이 고민해 보다가 내가 ‘취미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넌 좋아하는 게 많잖아. 즐거워하는 것도 많잖아. 


 맞다. 나는 ‘취미부자’다. 나는 수많은 취미들을 가져봤다. 어떤 때는 식물을 키우는데 열중하기도 해 보고, 또 다른 때는 해외 축구를 밤새고 보기도 했다. 여유가 있을 때마다 그림을 그렸고, 독서모임에서 책도 읽었고, 공연을 다니며 음악도 들었다. 어떤 때는 흙으로 만드는 것이 좋아 도예를 시작해서 자격증도 땄다. 악기를 다시 배우기도 했고,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서 보컬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취미들을 계속하고 싶냐면, 사실 잘 모르겠다. 해외 축구는 보다 지쳐 잠든 지 오래고, 집 한편에 자리를 차지한 식물들은 잎이 말라가기 일쑤다. 그림을 그리던 태블릿은 유튜브 확대기가 되어버렸고, 공연도 이제는 힘들어서… 도예는 겨울이라…….


 나는 무언가에 빠지기는 쉬운데, 지속하기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이 수많은 취미 중에, 제 취미는 이겁니다! 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할 줄 아는 것들은 많아지는데, 정말 ‘잘’하는 것은 여전히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읽던 책도 재미없어졌다. ‘좋아하는 게 있을 때 많이 해보라’하던 S팀장님의 말도 생각났다. 좋아하는 것이 더 이상 없어진다면 어쩌지? 변변한 취미도 없이 심심하고 지루한 나, 이대로 괜찮은가요……? 


 허전한 기분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헤매던 어느 날, 보컬 수업을 같이 다니는 친한 동료 언니에게 좋아하는 일이 뭐냐고 물었다. 언니는 요즘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서 연습에 열심이었다. 그때 머릿속에 번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언니, 내 꿈은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친한 사람들끼리 밴드를 하는 거야. 어때? 언니는 좋다 좋다, 우리 한번 같이 해보자고 맞장구를 쳤다. 그때 느꼈다. 짜릿한 즐거움을! 


 친한 직원들에게 당장 연락해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또는 배워볼 생각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당신, 밴드에 합류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부담스러워하는 직원들이 태반이었으나, 그중 마음이 맞는 넷이 모였다. 다소 과격한 밴드 이름도 정하고, 각자 취향에 맞게 포지션도 정했다. 단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즐거워하는 일들은 수없이 많이 나타났다가 또 사라진다. 그런데 그중에 뭐가 제일 좋냐고 한다면, 바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새로운 일을 벌이는 나는 출발 신호를 기다렸던 달리기 선수처럼 앞으로 튀어나간다. 그때의 짜릿함, 느껴본 사람만 이 알지 않을까?


 새로운 시작이 즐거운 이유는 전에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말해준 뇌의 작동방식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이 어떤 일을 처음 하게 될 때는 익숙지 않아서 머리를 많이 쓰게 되고, 의사결정에 있어 여러 단서들을 조합해 심사숙고한다. 한마디로 뇌의 활동이 많아진다. 반면 서서히 그 일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휴리스틱(Heuristics, 복잡한 일을 간단하게 단순화시켜 의사결정을 하는 '어림짐작'의 경향)이 작동되고, 뇌를 덜 쓰게 된다. 


 나는 여러 정보들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뇌를 충분히 쓰고 있다는 그 느낌이 좋은 것 같다. 내 생각의 한계를 시험하고 그걸 극복해 내는 일이 좋다. 가령 못 풀던 수학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거나, 이해 못 했던 걸 이해하게 된다거나. 처음 겪는 문제를 각고의 노력 끝에 해결해 본다거나. 새로운 것을 해내면 과거의 자신을 넘어서는 기쁨이 있다.


 세상의 일들은 뭐든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또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면 된다. 안 해본 거 다 해보고 죽자. 사는 동안 뭐라도 못하겠니. 저번엔 이 나라를 여행했으니 이번엔 저 나라를 여행하면 돼. 악기를 배워봤으면 노래도 배워보면 되지. 타보지 못했던 놀이기구를 타보자. 모르는 언어도 배워보자. 그런 새로운 시작들이 나를 짜릿하고 힘나게 한다. 


 그러니 나의 즐거움은 새로운 시작이다. 되도록이면 새로운 길로 걷는다. 다뤄보지 못한 악기에 도전한다. 가끔은 수학 문제도 푼다. 젬병인 과학 공부도 한다. 손이 가지 않던 책을 굳이 집어 든다.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을 엿본다. 운동으로 몸의 한계를 극복해 본다.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들어 본다. 도전한다. 고초를 겪는다. 노력한다. 성공한다. 반복한다. 질린다. 실패한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 그러면 다시 즐거움을 얻게 된다. 


 당신에게는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어쩌면 당신의 즐거움도 나의 즐거움처럼, 한 단어로 이루어진 게 아닐 수 있다. 새로운 이야기에 매혹되기, 스릴 넘치는 상황에 당면하기,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되새기기라던지. 당신도 당신만의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든, 당신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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