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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비 Dec 07. 2023

하얀 기백

윤두서_자화상


윤두서 <자화상> 1710년 지본담채, 20.5*38.5cm


얼굴만 보인다. 두 눈이 명징하다. 똑바로 쳐다본다. 몹시 추운 겨울 어느 맑은 하늘 위에 떠 있다. 두 개의 눈동자가 말이다. 까만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눈썹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간다. 퍼드덕 퍼드덕 크고 부드러운 두 날개가 펼쳐지고 눈썹은 노옾이 날아오른다. 수염인가 머리칼인가, 얼굴 양 옆으로 가지런히 나 있는 털. 얼굴 삼면을 빽빽한 숲처럼 채운다. 수염 두 줄기가 중력을 못 이기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는다. 살랑살랑 바람이라도 분다면 자유로이 하늘하늘 거리며 나풀거릴 것만 같다. 왠지 귀엽기도 하다. 그는 나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흡인력 강한 두 눈동자에서 눈을 못 떼겠군요. 천천히 당신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당신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계는 도망자가 안 보이네요. 그 곳 시민은 모두 눈동자에 힘이 있어요. 자기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힘, 타인을 대면하는 힘.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군요.


무엇이든 와 보라. 도망치지 않으리라. 그저 맞서서 꿰뚫어 보리라.


당신의 세계 속에서 너울거리며 빛을 내는 기개를 사랑합니다. 당신의 심장에서 들리는 북소리, 둥둥 둥둥 나의 가슴을 울립니다. 당신의 수염은 놀랍게도 사방으로 흩어지며 자유롭게 뻗어가는 나비입니다. 단단한 중심 그리고 유연한 움직임. 그 둘이 수염 사이로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게 보이는군요. 나는 당신을 좋아하게 될 것만 같군요. 당신 눈빛이 쏘아 올리는 하얀 기백을 닮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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