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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형 Dec 05. 2023

그대들은 어떻게 뛸 것인가

인생 첫 마라톤을 달리며

얼마전 이벤트 당첨으로 마라톤 참가권을 받게 되어 인생 첫 마라톤에 참가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체력에 그리 자신 있는 편이 아니다.

일례로 초등학생 시절 오래 뛰는게 힘들어 축구 교실 내내 전담 골키퍼를 맡았다. 입에서 피 맛이 나고 하늘이 빙빙 돌았던 훈련소 오래달리기와 호기롭게 시작한 F45 첫 날 중간에 화장실로 뛰어가 구역질한 기억들이 증명한다.

아무튼 기흉 같은 지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차는 것이, 운동동아리 임원까지 한 운동매니아인 나에게 체력은 꽤나 아쉬운 콤플렉스였다.


그렇게 여러 운동을 섭렵하는게 취미였어도 ‘마라톤’은 30년 가까이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공짜 참가권이 손에 쥐어지니 ‘그 동안 과거에 사로잡혀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 버린건 아닐까?’ 라는 의문과 동시에 어디선가 용기가 샘솟았다.

일요일 아침 8:30 마라톤 현장

쳐 맞기 전까지는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 않았나.

그럴싸한 계획조차 없던 나에겐 찰나의 용기를 지나 긴장감과 두려움이 급격하게 덮쳤다.


‘중간에 어지럽거나 토를 하면 어쩌지?’

‘그럼 중간에 쓰러지면 누가 날 구해주지?’

‘그렇게 완주를 못하면 어떻게 되는거지?’


겁 없이 달리다간 눈 뜨면 응급실일 것 같은 호들갑에, 마라톤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SOS를 쳤다.

다행히 흔쾌히 나와준 나의 첫 마라톤 메이트가 생겨 조금은 괜찮았다.

쳐맞기 전이다

걱정만 하다 어영부영 지내다 보니 마라톤이 코 앞이었다.

급하게 연습이랍시고 3일 정도 러닝머신을 뛰고,  전날 유튜브로 겨울 마라톤 복장 검색해서 갔다.


마침 올해 첫 한파주의보가 격하게 환영해주었고, 우리는 ‘추워도 완주는 할 수 있음^^!’ 이라고 벌벌 떨며 서로에게 응원을 건넸다.


그렇게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울리고 수 많은 인파 속에 우리는 달렸다. 한파주의보는 우리의 열기에 금새 가셨고 쨍쨍한 햇빛이 비치는 한강 물결만이 달리는 내내 우리를 응원하고 있었다.


10km 였기에 5km 반환점까지 쉬지 않고 뛰는 것이 목표였다. 5km 지점에 반환점이 없다는 것을 깨닳고 고비가 있었지만, 500m 더 간 지점에 보이는 반환점에 환호를 지르며 우리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


TV 에서나 보던 급수대의 컵을 낚아채 물도 마셔보고, 중간중간 스태프들의 응원에 하이파이브도 하며 이미 흥이 겨운 레이스를 즐기고 있었다.


그 후 종착점까지 몇번의 걷뛰걷뛰가 있었지만, 고비의 순간마다 단숨에 쉬어버린 것이 아닌 서로를 격려하며 몇 걸음 더 뗀것이 기억에 남는다.


운동을 하며 고비의 순간을 맞이한 적이 있는가?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그 순간 인생이 연기처럼 지나간다.


나는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데, 힘든 오르막을 오를 때 허벅지가 불타오르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1초마다 온다. 그런데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언덕의 끝에 다다르면 시원한 내리막이 보상을 준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처럼.


그리고 결국 우리는 완주하였다.

드디어...!

나와 친구는 종착점을 지나는 순간 하이파이브를 치며 서로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완주 메달과 음료를 나눠주는 스태프가 고생 많았다며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공기가 참 달콤했다.


나의 순위는 474등. 사실 몇 등인지 이 글을 쓰기 위해 2주나 지나서야 알았다.

그만큼 이번 마라톤은 누가 더 빨리 달리느냐가 아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느냐가 목적이였다.

러닝화도 없는 런린이,  출퇴근용 신발 신고 뛰었다.

요즘 뭘 도전하려해도 이미 잘나가는 내 또래 몇 명만 보이면 의욕이 줄곤한다. 가식스럽게도 내가 내 또래보다 조금 더 앞선 느낌이면 우쭐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이 헛 된 비교에 쓰는 에너지 때문에 막상 내 것에 집중해야 할 때 온 힘을 다하지 못한다.


마라톤 별거 없다. 그냥 오른발 내딪으면 다음 왼발 내딪으면 된다.

옆 사람보다 빨리 가겠다고 급하게 왼발 내딪다가 오른발에 걸린다.

그냥 앞만 보고 달리면 된다. 아니 옆에 경치도 구경하며 가면 더 좋다.

그럼 결국엔 완주 메달과 달콤한 공기가 종착점에서 반겨주더라.




완주 후 러너들이 모여있는 마라톤 장은 요즘 그렇게 강조하는 ‘스스로를 사랑하라’를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한계를 뛰어넘어 종착점까지 온 스스로를 그 순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디 있을까.


그 누구도 몇 등했는지 물어보지 않고 말하지도 않는 풍경. 심지어 수상식에 남녀 1위부터 3위까지 수상자 중 몇은 참석도 안했다.

완주의 환희와 보람에 젖어있는 우리들을 보며 ‘우리 다 행복하게 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한파주의보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공기, 쾌청한 하늘은 치열한 경쟁사회에 지친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라고 위로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뛸 것인가.


완주 기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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