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과 아가씨와 사모님 사이
직장인의 꽃
점심시간
매일같이 찾아오는 꽃을 피우는 시간.
우리는 몇 안 되는 선택지 안에서 매일 같이 고민을 한다. 누군가는 한 끼를 때울 목적으로 먹는다지만 그럴 수는 없지. 이왕이면 멋진 꽃을 피우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
그날따라 매운 돈가스를 먹고 싶었던 나는 매일 먹던 돈가스집이 아닌 새로운 돈가스 집에서 새로운 메뉴 ‘초 매운 돈가스’를 주문했다. 매운 돈가스보다 한 단계 높은 ‘초 매운 돈가스’라는 이름부터 설레는 데다가 샐러드도 푸짐하게 주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소 소스가 많아 살짝 느끼했던 샐러드를 홀딱 비우는 사이 초 매운 돈가스가 도착했다. 소스가 듬뿍 뿌려진 이 친구는 한 입 베어 물자 이것은 초 매운 것인가, 초 단 것인가라는 아니면 둘 다 인가라는 의아함과 함께 모두 먹어치웠다.
그렇다.
혼란 속에서도 음식은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왠지 모를 허전함에 밀크티를 사들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왠지 모를’이라고 쓰고 ‘악습관’이라고 읽는다.)
오후 5시 대에 진입하면 직장인은 안정감을 찾는다.
귀가 시간은 화난 사람도 춤추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5시가 조금 넘자 안정감 대신 어지러움증과 구토 증상이 올라왔다. 앉아있는데도 몸이 휘청한다.
?
6시가 되자마자 누구보다 부지런히 짐을 싸기 시작하여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평소와 달리 발걸음까지 어지럽다. 빨리 좀 눕고 싶은 마음에 택시를 잡아 타고 눈을 감아보지만 머릿속이 핑핑 돈다. 집에 돌아와 엎드려도 누워도 앉아도 계속 어지럽고 잠을 잘 수가 없다. 두통약을 먹어보아도 위장약을 먹어보아도 효과가 없다. 결국 밤 9시가 넘어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서는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과 어머님으로 불러주는 사람이 있었다. 응급실엔 아이도 데려가지 않았는데 어머님으로 불러 주셨다. 물론 나이 상(외관상) 어머님으로 불려 마땅한 나이이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런 나이(외관)이다.
하지만
아이도 없이 혼자 누워있는 나에게 어머님이라니요?
그리고 그런 나이(외관)일지언정 아이가 없을 수도 있지 않나요?
아니 그리고 결혼을 안 했을 수도 있지 않나요?
라고 그분 앞에서 마음속으로 최고의 데시벨로 이야기해 본다. 어지러운데 더 어지럽게 하시고 있다며 또 한 번 마음속으로 최고 데시벨로 소리쳐본다.
수액을 맞고 위안정제도 맞으니 많이 진정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몸은 진정되었지만 마음은 지정되지 않았던 나는 다음 날 친구들에게 어머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한 친구는 늘 택시를 타면 자신에게
"사모님 어느 쪽 길로 갈까요?"
“사모님, 다 왔습니다."라고 한다는 이야기와
또 한 친구는 사우나에서 옆에 있던 분이
“목소리가 아주 아가씨같이 이쁘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모님 친구도 아가씨 친구도 모두 미혼이다.
아직도 나는 어질어질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