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와 주차장 사이
로제의 APT가 아닌 윤수일의 APT시절이야기이다.
5살 꼬마 때부터 결혼 전까지 30년 가까이 살던 나의 고향은 4천 세대가 넘는 메머드급 대단지였다.
5살에 이사를 간 낯선 그 동네는 내가 골목대장하며 휘젓고 다니던 작은 골목들과 낮은 집들과는 달리
높고 켜켜이 쌓인 아파트로 온통 둘러싸여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 집 앞에는 큰 은행나무가 있는 놀이터가 하나, 옆에는 나무가 잔뜩 있는 놀이터가 또 하나 있어 그다지 삭막함은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이사를 와서 아는 친구도 없고 2학년 터울인 오빠는 이미 학교를 다니기 시작해 같이 놀 사람 한 명 없는 지루한 날들이 이어졌다. 놀이터에서 혼자 흙놀이를 하고 있자니 놀이터 뒤로 유치원이 보였다.
'어서 내년이 돼서 나도 유치원에 다니면 좋겠다.'
그렇게 원하던 유치원에 입학하고 새로 사귄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그네도 타고 미끄럼도 타고 정글짐에서 잡기놀이도 하고 소꿉놀이도 하며 지냈다. 혼자 흙놀이 하던 시절의 원풀이라도 하듯 열심히 나가 놀았다. 초등학교(엄밀히 말하자면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사회인이 돼서도 그 놀이터를 보면 항상 혼자 흙을 만지며 '나도 빨리 유치원 가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날이 떠오르곤 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대단위아파트 단지라 삭막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인지 산이나 계곡보다는 둘러싸인 아파트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엄마가 저녁밥 먹으라고 베란다에서 소리치면 놀이터에서 놀다가 후다닥 집에 달려들어갔던 기억도 있고, 소꿉놀이를 하며 풀이며 돌들을 잔뜩 모아 반찬가짓수를 늘리던 기억도 있다. 넓은 주차장에서는 3.8선, 땅따먹기, 술래잡기 등등 아스팔트 위에 선만 그려져 있을 뿐인데 참 많은 놀이를 했었다. 한 때는 알 수 없는 이방인 놀이에 빠져 혼자 하늘을 보며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며 단지 곳곳을 돌아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도 생생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도 많이 변해 빈자리가 많았던 주차장에는 주차할 공간이 부족할 만큼 차들로 꽉 차게 되었다. 놀이터 역시 점점 노는 아이들이 줄어들어 고등학교 때 즈음에는 이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도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놀이터는 결국 절반을 주차장으로 내어 주게 되었다.
"아니, 미끄럼 없는 놀이터가 어디에 있어? 놀이터대신 주차장을 만드는 것도 황당하고!"
이런 나의 주장이 4천 세대의 주차난을 이길 명분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그렇게 주차장과 놀이터의 공존이 시작되고 그리고 몇 년 후에는 남은 반쪽 놀이터마저 모두 주차장이 되고 말았다. 주차장이 된 놀이터를 볼 때마다 내 추억이 자동차에 짓밟힌 냥 화가 불쑥불쑥 올라왔다.
총천연색이던 나의 놀이터는 잿빛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내가 결혼할 즈음에는 세대당 자가용보유수는 더욱 늘어나 2중 주차도 모자라 3중 주차도 당연하게 되었다. 택시를 타서 행선지를 말하면 집 앞에서 뚝 떨어진 곳에서 내리라고 권하는 기사분들이 허다했다. 켜켜이 쌓인 차들로 진입도 퇴로도 찾기도 쉽지 않은 데다가 주차지옥으로도 유명해진 덕이다. 그런 이유일까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고 몇십 년이 지나 이번에는 정말로 재개발이 진행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제는 친정도 다른 곳으로 이사해 갈 일이 없게 됐지만 근처만 가면 여전히 기웃거리게 되는 나의 고향 APT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나의 A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