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시와 화단 사이
헥.!
갑자기 켜진 카메라에 응시하고 있는 내 얼굴을 마주 하고 화들짝 놀라 핸드폰 떨어뜨릴 뻔.
요사이 내 얼굴에 가장 놀라는 건 나일지도 모르겠다.
거울을 자세히 안 본 지 십 년은 되는 것 같다. 어른이 되면 빨간색이 좋아진다고 한 게 마냥 웃고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혈색이 칙칙하다 보니 입술색이라도 쥐 잡은 듯 빨갛게 칠하면 조금 생기 있어 보인달까. 또는 빨간 옷이라도 입어야 전체적으로 화사해 보인달까. 이것은 조상님들의 지혜라고 확신한다. 갓난아이가 나의 링 귀걸이를 잡아당기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귀걸이를 뺐고 그 작은 구멍은 시간의 축적과 함께 꽁꽁 막히고 말았다. 요즘 부쩍 귀를 다시 뚫고 싶은 건 얼굴 주변을 번쩍이게 장식하여 상대의 눈을 순간적으로 흐리게 하려는 무의식 중에 나온 깊은 성찰 또는 의도(의지) 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은 이후 사진첩의 주인공은 아이가 되었다. 랜덤으로 핸드폰 화면에 등장하는 아이의 예전 사진들을 보면 가끔은 울컥하기도 가끔은 활짝 웃게도 된다. 아이 사진 중간중간에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나의 예전 사진에 아, 저런 얼굴을 했었지라는 생각도 들고 지금은 잃어버린 얼굴 같아서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각도에 따라 나이기도하고 전혀 내가 아니기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때는 창창했다 아니다의 차원이 아닌 전혀 모르는 타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꽤나 서글픈 일이다. 비록 희미한 인상일지언정 표정은 밝았었는데 말이다. 요즘은 매일 밤 우리 집 막내 김칫치와 함께 베란다로 나가 샷시 문을 조금 열고 바람을 맞으며 바깥 구경을 한다. 이 모든 감상들은 갑자기 불어온 찬 바람의 영향이 크다. 김칫치는 비록 대부분이 주차장뷰이지만 화단의 꽃냄새, 풀냄새, 흙냄새에 열심히 코를 킁킁대며 지나가는 사람들, 산책하는 강아지, 멀리서 들리는 알 수 없는 대화소리를 따라 바쁘게 시선을 움직인다.
방충망 사이로 불어오는 밤바람 냄새는 이상하게도 초등학교 때 갔던 캠프의 마지막 날 밤을 연상시킨다. 마지막 날의 캠프파이어는 항상 나를 불안하게 했다. 활활 타고 있는 커다란 불덩이를 배경으로 작은 양초를 하나씩 나눠서 가지고는 마지막 감상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온전히 캠프파이어를 즐기지 못하고 마지막시간에 있을 감상말하기에 온 신경을 다 뺏겨 이번에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걱정하던 내가 떠오른다.
밤새 버려진 옷 장안에서 구조를 외치느라 또는 엄마를 찾느라 며칠밤을 울었다는 김칫치도 그때 언젠가의 밤이 스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 집의 쫄보 둘은 나란히 베란다에 앉아 바람 냄새를 맡으며 각자의 날들로 되돌아간다. 나는 옆에 있는 막내의 등을 쓸어내리며 제법 큰 척 이야기해 본다.
소감 따위. 뭣이 중헌디?
혈색 따위?
그건 중헐지도.
아무래도 귀를 다시 뚫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