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를 혼자 타본 것은 20살부터다.
그 이전까지 ‘버스’라는 단어는 내 삶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어린 나에게 있어 ‘버스’란 고향인 삼천포와 근교의 대도시라 할 수 있는 진주를 연결해주는 시외버스만을 의미했던 것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삼천포는 버스 배차간격이 아주 긴 소도시-시골과 소도시라는 단어 중 한참 고민을 해본다-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초중고를 재학하는 동안 집과 학교 사이 거리는 30분 이내로 가깝기도 했다.
삼천포에서 어딘가를 가고 싶을 때 그 방법으로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은 기약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면 택시를 타거나 부모님을 부르거나 하며 이곳저곳을 누비곤 했다.
20살이 되어 서울에 오고서는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이용했다.
대학교 기숙사가 있는 교대역이 2호선과 3호선이 겹쳐 교통이 편리했기에 나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했다. 그렇게 버스와는 영 인연이 없는 듯했다.
있잖은가, 우리 지나오면서 거미줄처럼 촘촘하다는 인연의 실이 아무래도 겹치지 않았던 사람처럼 말이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지하철 신봉자가 되어갔고, 국내외에서 찬양하는 서울 지하철의 편리함에 취해갔다.
그러다가 25살이 된 나는 취직의 이유로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사정상으로 지하철 출구에서 멀게, 버스 정류장에 가깝게 집을 구하고도 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버스로 출근하다가 도로가 막혀 지각을 하면 어떡하지?’
‘만원지하철은 그나마 동작정지 상태로 버틸 수라도 있는데, 흔들리는 만원버스에서 계속 균형을 잡으며 가야하면 힘들어서 어쩌지?’
그러나 직장까지 가는 버스 노선이 2개가 있었고 버스 사이 배차 간격도 3~4분 정도였기에 나는 기꺼이 그동안 낯설었던 ‘버스 출퇴근자’의 세계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매일 7시 50분쯤 도착하는 643번과 4212번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부모님의 지붕 아래에서 살던 아이에서 대학생이 되고, 마침내는 직장인이 되니 생각과 달리 어른의 인생이란 매일 아주 행복한 것은 아니다.
생각지 못하게 누군가와 의견 충돌을 빚을 때도 있고, 중요한 업무에 신경을 쓰느라 퇴근이 늦어질 수도 있고, 체력 부족이 실감나는 날도 생긴다.
그러나 매일 아침의 시작만큼은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버스다.
아침에 꾸물거리며 이불속에서 어두운 눈을 뜨고 주섬주섬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가도,
투명한 햇살이 비치는 유리창 너머로 스르르 지나가는 플라타너스들과 정겨운 간판들을 바라보자면 어딘가 마음 한켠이 밝아오는 것이다.
그 오래된 가로수들이 그래도 희망은 있다, 라고 말을 건네는 듯해서 초보 식물언어학자는 나름의 해석을 소중하게 움켜쥐게 된다.
그리하여 이 글뭉치는 ‘버스출퇴근자’로서 내딛는 나의 하루들에 빛을 열어주고 막을 내려주는, 다름아닌 ‘버스’에 대한 것임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