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티 Jul 16. 2020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작은 선택들'

                                                                   

언제부턴가 '환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눈은 초롱초롱, 마음은 울망울망하다.

얼마 전 우연찮게 서울환경영화제를 접했고, 많은 상영작 중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레시피>를 보았다.

자취를 하면서 일명 '먹고 사니즘'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매일 새롭게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섭취하고 기타 일상적인 일을 하는 행동은 일차적으로 나를 살리는 것이 목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를 제외한 다른 많은 것에 영향을 준다. 나를 둘러싼 가까운 주변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저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까지 내 행동의 결과물이 흘러가는 것이다.



사후세계를 그린 미국 드라마 <굿 플레이스>에서는 사람들의 살아생전 행위들을 점수화하여 천국 혹은 지옥에 배정한다. 최근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이유에 대해 드라마는 '일상의 사소한 나쁜 선택들'을 꼽는다. 예를 들면, 비윤리적인 기업가의 상품을 싸다는 이유로 샀다거나 불공정거래를 통한 상품들을 샀다거나 하는 등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지 않는다. 분업화와 전문화로 인해 시장 거래가 활성화되고 이 과정에서 개인 간 행위의 결속은 더욱 긴밀해진다. 결국 스스로 인지하지 않았고, 별다른 관련도 없다고 생각한 서로의 일상의 선택이 모여 행동의 결과를 부풀리고, 가속시키는 것이다.






몇 달 전, 주방 세제의 잔류와 희석 문제와 플라스틱 세제 용기의 처리를 고민하다가 설거지 비누를 샀다. 배수구망에 끼인 음식물들이 싫어서 옥수수로 만들어진 자연분해 거름망을 사기도 했다. 요리 후 남은 식재료들을 비닐봉지에 담아오다가 조금이라도 절약하고자 밀랍 랩을 샀다.

어제보다 나은 삶의 양식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린 나의 선택들은 <굿 플레이스>에서는 어떻게 집계되고 있을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레시피>를 보며 기대했던 것은 '먹고 사니즘'의 중분류로서, 식단의 변화였다.

환경과 인류에 더불어 좋은 영향을 미치는 요리 레시피들을 소개해주겠지 하는 설렘으로 영화를 보았으나, 웬걸. 영화 제목에는 '레시피'라는 단어가 있지만, 실상은 학교 급식에 지역의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사용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미 친환경 음식 식단과 요리법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부풀어 오른 상태였으므로 그 추진력을 이용하여 따로 찾아보기로 했다. 유튜브에 비건 레시피를 검색해본 것이다. 우습게도 처음에 나는 'began'을 검색했고, 관련 영상이 나오지 않아 당황했었다. 결국 'vegan recipe'를 검색하자 해외의 채식주의자 요리 영상들이 쏟아져 나왔다.



평소에 비건 식당이나 비건 요리를 생각하면 나무 그릇에 퀴노아나 병아리콩, 샐러드, 아보카도, 오리엔탈 소스 등을 버무린 음식이 떠올랐다. 해외의 참신한 비건 레시피를 찾고 싶었지만,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듯했다. 영상들의 공통점은 대개 채소 육수를 사용하거나,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여러 해외 향신료를 가미하는 것이었다. 칠리 파우더, 오레가노나 생소한 해외의 식재료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외국의 '맛있는' 비건 요리에는 향신료(대개 오리엔탈 소스나 토마토소스류)가 크게 작용한다는 생각이었다. 영상을 보고서 나는 '맛있고 건강하며 지구에 도움이 되는' 채식 식단에 도전할 자신감이 사그라들었다. 제한적인 레시피와 희귀한 식재료 때문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우리나라 식재료로 할 수 있는 채식 요리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떤 특별한 것을 떠올리려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선조에게서 대대로 내려온 국민반찬인 나물반찬들이 있었다. K-food라고도 불릴 만큼 건강한 전통식단을 그저 '이어나가면' 된다. 한 그릇 요리의 틀에 갇혀 채식 식단을 생각했던 내게, 여러 반찬이 함께하는 한상 요리는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굳이 외국의 비건 레시피를 찾을 필요 없이,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먹어 왔던 기존의 채식 식단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조급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내려놓으면 될 뿐이다. 육류 섭취를 줄이고, 육류를 대체할 다른 음식과 레시피를 찾아내며 이 길을 함께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물고기 떼처럼 무리 지어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바른 일상의 선택들이 모이면 그로 인한 좋은 결과 또한 나 혼자만의 영향보다 커질 것이며 그것은 물결처럼 저 멀리까지 퍼져나가리라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로 접어들 때 유자매실차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