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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Sep 03. 2020

가을로 접어들 때 유자매실차가 있다

여름 매실과 겨울 유자의 콜라보

간밤에 태풍이 지나가더니 바람의 여운이 차게 창문으로 날아든다.
눈을 뜨고 느낀 서늘함이 내가 손꼽아 기다린 가을의 첫인사임을 알고 반가웠으나, 서늘함은 어쩔 수 없이 피부에 차가움을 안겨주기에 흠칫하기도 한다.

추석 즈음에나 입을 줄 알았던 긴팔을 한 달 일찍 꺼내 입으면서 가을이라는 계절에 대해 생각해본다.

마법처럼 얼어있던 세계가 녹아내리고 소생하기 시작하는 봄과 달리, 가을은 공기에 담겨있던 물방울과 열기가 찬바람에 식어가는 계절이다. 개성이 뚜렷한 여름과 겨울에 비해 봄과 가을은 활동하기에 적당한 기온을 가졌다는 점에서 종종 함께 묶인다. 그러나 계절의 연속성 면에서 보면 따뜻함을 안겨주고 점점 따뜻해지는 봄과 서늘함을 안겨주고 점점 서늘해지는 가을은 서로 등을 맞대고 반대 방향을 보고 있다.

올여름에는 몸에서 수분을 쭉쭉 빼내는 더위와 수분을 보충하려는 나의 줄다리기가 펼쳐졌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고 마스크 안의 얼굴엔 물기가 맺혔던-벌써 과거형으로 써도 될는지. 섣부른 선택이 아니었길 빈다-여름. 무선 선풍기가 없었다면 잘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글의 한 줄 자리를 빌려 무선 선풍기에게 감사를 보낸다.
알로카시아가 내보낸 물방울, 길었던 장마가 전해준 물방울들도 나를 도왔겠지만, 또 나의 수분 공급에 한몫했던 것이 있다.

함께 사는 친구가 나에게 건네주었던 차 한잔들이었다.
매일 저녁, 친구가 그의 삶을 따라 익혀온 매실차, 라벤더 차, 어느 절의 차, 대만 밀크티 등을 타 주었고 꼬박꼬박 감사히 받아마시며 여름을 났다.
특히 친구는 어머니가 담가주신 매실액을 애지중지하였고 그러함에도 내가 배가 아프다 하면 매실차를 내주었다.
매실차의 시큼 달큼한 맛에 얼음의 차가운 온도가 입혀지면, 복통도 더위도 날아가는 듯했다. 친구의 시원한 매실차 덕분에 올여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던 어느 날 매실액에 유자청을 섞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음식에 장난치는 못된 아이라고 생각하면 섭섭하다. 이런 레시피도 믿고 타 준 친구 덕분에 이름하야 유자매실차가 완성되었다. 유자매실차를 마셔보면, 매실과 유자의 고유한 과실 맛이 함께 느껴진다. 섞였을 때 어느 한쪽에 녹아들어 가거나 이도 저도 아닌 오묘한 맛이 되지 않는다. 유자청의 꿀이 매실과 유자를 포용하는 커다란 품이 된 덕분에 썩 조화를 이룬다고 해야 할까. 매실과 유자 모두 어릴 적부터 먹어 온 맛이기에 낯설지가 않다. 언젠가 먹어본 듯한 맛이 혀끝에 닿으면서, 멀게만 느껴져 잊고 있던 가을의 시간이 성큼 다가온다.
유자매실차는 여름이 제철인 매실과 겨울이 제철인 유자가 만나 만드는 달큰한 가을의 초대장이다.

올해 초까지 내가 가장 즐겨해 온 차는 유자차이다. 그 이유는 구하기 쉬우면서도 비타민이 듬뿍 담겨있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려 비실한 상태에서 따뜻한 유자차를 끝없이 마시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던 감기도 겨울도 끝이 났다. 사실 소화기가 좋지 않지만 매실을 즐겨하진 못했었다. 어릴 적에는 엄마와 매실을 많이 타 먹었지만, 독립을 하고서는 매실액을 접하기가 좀처럼 힘들었던 탓이다. 그에 비해 유자차는 티백과 포션, 과일청, 음료수로 대형마트, 동네 마트, 편의점, 카페 등 그야말로 어디서든 팔고 있었다.

좋아하는 유자차와 친구의 매실차를 섞어 마시며 가을로 가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어도 우리의 사계는 홀연히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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