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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Jul 22. 2020

취향 집합소에서 당신에 대해 알아보세요

서울의 특징 : 취향의 반영


‘이번 주말에는 어디에 가볼까.’
토요일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들떠서 주말에 무엇을 할지 온갖 상상을 한다.

휴대폰의 버킷리스트 목록을 뒤적이고, 골똘히 생각에 빠지고, 책을 읽어보고, 플랫폼의 추천을 받다. 이렇게 열심히 주말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평일 동안 직장일에 헌신했으니 주말에는 직장이 아닌 곳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자는 일종의 보상심리도 있다. 또한 새로운 공간에 가면 받는 미지의 생각과 느낌들이 나를 살아있게 하고 나이테를 늘려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이테를 충실히 쌓아 튼튼한 나무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더군다나 이곳 서울에서는 늘 새로운 것이 생겨나기에, 늘 새로운 고민을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에 쏙 드는 무언가를 찾아 그곳에 기댈 수 있게 되는데, 그 따뜻하고 편안한 감정이 참 좋다.



오래된 도심지인 서울은 시대의 발전에 따른 다양한 거리 풍경을 갖고 있다.
역사적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도 있고, 흐름에 따라 어느 곳보다 빠르게 변하는 곳도 있다. 주민들의 참여가 활발해 그들의 의견 듬뿍 반영된 곳도 있고, 구청의 계획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도 있다.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에서 ‘거리’란 그 마을의 인상과 분위기를 결정한다. 사람에게도 풍기는 인상이 있듯이 거리에서도 그 지역의 인상을 느낄 수 있다. 마도 같은 마을과 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조금씩 인상이 닮아있을 것 같다.



삶이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여행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살아가며 얻는 경험들에서 나의 한 조각을 발견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서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거나 숨겨져 있던 나의 생각들을 느끼게 된다. 삶에는 스스로 경험을 곱씹고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들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혼자와의 대화만으로는 한계가 다. 내 앞에 뒤를 보이며 누워있는 카드들을 한 장씩 뒤집어보며 세상의 일들에 하나하나 연결되는 경험도 필요하다.


그러한 ‘카드 뒤집기’ 기회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장소인 서울에서 내가 발견한 나의 취향은 이렇다.


북촌 한옥마을보다는 서촌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보안책방 같은 장소를 좋아한다. 

보안책방은 보안여관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서점과 숙박업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지나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의미와 흔적을 간직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올 시대의 사람들을 환영하며 그 연결고리가 되어 관계를 맺게 해주는 점이 특히 좋다.
언덕을 따라 자연스레 뉘어 있는 한옥 기와들의 행렬이 있는 북촌도 참 아름답지만, 나그네들이 머물렀다가고 소소한 사람들이 소소하게 살아갔던 마을의 모습이 있는 서촌을 더욱 사랑한다.



강남이나 잠실의 거대 자본이 차지한 거리보다 동묘시장과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좋아한다.

쇼핑몰이나 프랜차이즈의 행렬 사이에 있는 것은 큰 자극이 되어 가끔은 흥미롭다. 인파가 붐비는 곳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만큼 개성 넘치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나기도 한다. 강남, 잠실의 거리는 만물상처럼 많은 물건들이 모이기에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이곳저곳 돌다 보면 정성껏 포장되어 진열된 물건들의 연속에 지쳐 이내 발길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모르게 된다.
반면 동묘시장의 종합상가나 구제 옷 시장, 청계천 헌책방 거리의 손때 묻은 책들은 어딘가 다르다. 명확한 구획이 없고, 물건을 더 많이 빨리 팔기 위한 상업적 작업이 없다. 파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강 남쪽과 달리 파는 사람의 목소리, 노동, 자부심, 의지가 있다. 언젠가 헌책방거리에서 80년대 대중가요 가사집을 사고 싶다는 작은 꿈도 선사해주는 그곳이 좋다.
 
이 외에도 내가 사랑하는, 나의 취향인 서울의 장소들에는 동작대교 노을카페, 따릉이 대여소, 모 독립서점들 등이 있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곳을 하나만 꼽기가 어렵다. 모두 다 좋다고 하면 나의 취향에 대해 잘 모르게 되는 것이 아닌가 반문할 수도 있지만, 좋다고 느끼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기에 그 이유에 집중해보면 나의 취향 영역을 가늠해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주말마다 서울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 발자국씩 알게 된다.

형형색색의 거리는 작은 옷감 샘플을 모아놓은 표본집 같기도 하다. 취향을 하나씩 고르고 알아가다 보면, 내가 이 옷감들로 어떤 옷을 짓고 싶은지도 알게 된다.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어렴풋한 모양이 보이기 시작한다. ‘옷 소재는 친환경, 카라는 오픈 카라, 소매는 긴팔과 반팔이 변용 가능한 롤업, 기능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는 일에 맞도록’하는 식이다.


내가 현재 지향하는 가치관을 알고 싶다거나, 미래에 살아갈 마을의 모습을 생각할 때 그 표본을 둘러보고 싶다면 서울 거리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서울에 모든 표본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각 지역마다 고유한 역사를 지닌 거리와 마을들이 많다. 다만 그곳의 색깔을 담은 샘플을 들고 서울로 온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거리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쩌면 이 다양한 거리가 생활권 내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서울의 매력일 것이다. 어느 하나만 선택할 수가 없는 사람들은 서울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곳일 수 있다. 다양한 삶의 양식을 경험하며 살고 싶거나, 어느 하나를 선택할 확신이 아직 없는 사람의 경우에 말이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려워서’, 절벽 위의 꽃을 바라볼 때엔 욕망에 타오르지만, 막상 꽃을 얻으면 꽃처럼 금방 마음도 시들 때도 있다. 이곳에 있으면 저곳이 좋고, 저곳에 있으면 이곳의 좋은 점이 생각나고 하는 식이다. 방법은 아직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이곳저곳을 충분히 경험해보는 것이라 본다. 여러분이 자신에게 시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 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취향은 변해가는 것이다.

변한다는 사실을 너무 많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래되고 굳건한 취향이어야만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 장래희망 칸을 적는 것을 고민하던 우리에게 은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해서 장래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고. 좋아하고 관심이 가는 정도가 크지 않아서 마음이 쉽게 바뀔 것 같아 주저스럽더라도, 원래 꿈은 바뀌는 거라고. 우리가  살아가며 어제의 나에서 변화하며 성장하는 것처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과 아닌 것은 참으로 다르다고. 그러니 너무 걱정 말고 지금 네가 좋아하고 관심 가지는 것에 집중해서 한번 파고들어보라고.



그러니 우리, 우리를 둘러싼 것들을 향해 달려가 보자. 그곳에서 오히려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나에 대해 더 알게 되면, 나와 같은 듯 다른 듯 같은 남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이 풀리지 않는 삶의 이유에 대해서도 한 자락 깨달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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