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빈자리가 없는 경우에는 꼼짝없이 서서 가야 한다. 출근길에 세 번 중 두 번은 서서 가곤 하는데, 특히 좌측을 보고 설 때면 이런 상상에 빠져든다.
양양이나 협재 해변에서 서핑을 하고 있다는 상상이다.
버스가 주기적으로 섰다 멈췄다 하는 힘의 흐름은 먼바다에서 주기적으로 흘러오는 파도와 닮았다.
그래서인지 옆으로 서서 가는 버스의 흐름을 양발로 느끼고 있자면 마치 서핑보드를 탄 기분이다.
서핑보드가 나아가며 양옆으로 갈라지는 물결과 버스가 나아가며 갈라내는 도심의 모습도 내 눈에는 꼭 비슷해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서핑을 좋아하면서도 아직 타본 적이 없다.
패들링이나 테이크 오프 등의 용어도 유튜브 영상을 통해 어깨너머로 배웠다.
오랫동안 꿈꾸는 것은 언젠가 이뤄진다는 것을 알기에 머지않은 미래에 서핑 강습을 가게 되겠지만, 지금은 일단 버스에서의 서핑을 즐기기로 한다.
서울시 버스 외면의 명도 높은 푸른색도 꼭 창창한 대해를 떠올리게 하니까, ‘서핑을 하며 출근한다는 상상’을 거들어주는 것 같다.
‘버스 서핑’을 하는 방법으로는
첫째, 한 손으론 버스 손잡이를 올려 잡고 어깨 너비로 양발을 벌려 선다.
멈춰있던 버스가 출발할 때는 앞쪽 발에 힘을 주고, 달리던 버스가 멈출 때는 뒤쪽 발에 힘을 주며 균형을 잡는다.
둘째, 준비가 되었다 싶으면 움켜쥐었던 손잡이를 살짝 놓아본다.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손을 놓더라도 손의 위치는 안전봉이나 손잡이 가까이 두어야 한다. 손을 뻗으면 바로 지지할 수 있게 말이다.
여태껏 관찰한 바로는 버스 서핑을 하다 바다에 빠지는 것보다 휴대폰을 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지만, 서퍼들의 안전한 서핑을 기원하는 바이다.
셋째,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힘의 균형을 조절하다 보면 버스라는 거대한 서핑보드와 혼연일체가 된 느낌이 든다.
그 순간 주변의 풍경을 달리 보는 것이다. 거대한 백팩은 암석, 총천연색의 머리카락은 산호초, 니모를 닮은 귀여운 아이는 흰동가리가 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 중에는, 인간은 현실을 벗어나는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회색 돌고래 같은 자동차들의 행렬을 지나 서핑보드를 탄다는 상상만으로, 이 8차선 도로가 서울에서는 퍽 가기 힘든 드넓은 바다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