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터미널 앞 버스정류장은 항상 붐빈다.
갖가지 숫자를 몸에 새긴 버스들의 향연이 계속되고, 사람들은 갈매기처럼 버스를 바라보며 눈을 빛내고 있다.
버스정류장 벽에 한가득 붙어 있는 버스 노선도를 보면 그야말로 도라에몽의 ‘어디로든 문’이 이곳인 것 같다.
전국 각지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서울의 어딘가로 쉽게 떠날 수 있게끔 버스가 많기 때문일 거다.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줄 버스를 알아보는 방법은 스마트폰이나 지도 등을 통해 알아낸 버스 옆면의 숫자이다.
특히 낯선 번호의 버스를 기다릴 때는 그 숫자만을 되뇌고, 그 숫자만을 눈으로 찾고 귀로 원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버스를 알려주는 버스 번호는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먼저 지선버스와 간선버스를 구별해보면, 속히 마을버스라고 부르는 녹색의 버스가 지선버스다.
지역 간 원거리 이동을 위한 간선버스와 달리, 지선버스는 간선버스의 역할을 보완하고 그 지역 내의 이동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그래서 요금도 더 싸다.)
3자리 수 번호를 가진 푸른색의 버스는 간선 버스다.
이 3자리의 버스 번호 중, 첫 번째 번호는 출발지 권역을 의미한다. 두 번째 번호는 도착지 권역을 뜻하며, 세 번째 번호는 일련번호이다.
0은 종로를 비롯한 도심을, 1은 도봉, 강북 일대를 의미하는 식으로 도심을 중심으로 하여 시계 뱡향으로 권역이 구분된다.
예를 들면 643번 버스는 강서와 양천 방면에서 출발하여 강남권을 오가는 버스라는 뜻이다.
버스 번호를 매기는 원리를 안다면, 지나가는 버스의 번호만 슬깃 보고도 대략의 노선도를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지선버스 번호의 경우에도 앞의 두 자리 번호가 출발지-도착지를 나타내고 뒤의 두 자리 번호는 일련번호를 나타내기에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별 것 아닌 정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사실을 처음 들었던 스물 한살의 나는 며칠 동안 눈이 동그래졌더랬다.
지금까지도 문득 문득 새롭게 놀라고 있으니... 어떤 사람이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행정 체계가 존재한다.
보이지 않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행정 체계는 자연이 정해준 것이 없어 사람의 고유한 발명 영역이다.
보편적이면서도 특수성을 놓치지 않아야 하고, 더불어 발전성을 내재하는 체계를 생각해내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도시의 역사는 행정의 역사이기도 하다.
도시의 높은 빌딩과 긴 다리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규칙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서울 메트로폴리탄의 촘촘한 체계 중 하나를 알았을 뿐인데 어쩐지 이 도시와 훌쩍 가까워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