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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버스 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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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Jul 01. 2020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

내게 ‘버스’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버스커 버스커의 <정류장>이다.
고등학생 때인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을 몰고 온 ‘슈퍼스타 K’에서 버스커 버스커라는 밴드가 패닉 원곡의 이 노래를 불렀었다.

장범준 특유의 개성이 있는 애달픈 목소리와 기타 선율이 합쳐져 나는 가을바람에 휩쓸리듯 노래에 빠지게 되었다. 쓸쓸하지만 다정한 가사도 한몫하였고 말이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불현듯 추워져 양손바닥으로 팔등을 쓸어내리고는 이내 따뜻함을 음미하게 된다.


저 멀리 가까워 오는 정류장 앞에
희미하게 일렁이는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알 수도 없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댈 봤을 때


세상 사람들 사이를 엮는 실에는 수많은 색상이 있다.
가족과 형제, 친구, 동료, 연인, 웬수...
이 실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상이 진해지기도 하고, 굵기가 가늘어져 끊어지기도 한다.
유난히 두꺼운 소재로 만들어진 실이 있냐 하면, 새싹에서 나무가 시작되듯 미약한 홑실 같은 실도 있다.

버스커 버스커의 <정류장>을 들으면 연인 간의 사랑이 그려진다.
영원히 묶일 줄 알았는데 일시적으로 묶인 것이었던 실.
혹은 일시적일 줄 알았는데 영원히 묶이게 되는 실.
연인 간 사랑을 경험해본 이들 중에서는 전자를 겪은 이들이 필연 더 많을 것이다.


가사의 ‘추운 바람 맞으면서도 발을 동동거리며 나를 위하는 사람’, 내게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기도 했다.


인연을 보내야만 하게 되는 순간이 예정돼있다는 것을 미리 안다면, 그 인연에 마음껏 빠질 수 있을까.
혹은 ‘사랑에 빠지다’라는 문장처럼, 구덩이에 발 디디듯, 혹은 바다에 휩쓸려 파도의 일부가 되듯 어쩔 바 없이 빠져버리게 되는 걸까.


‘손 흔들어봤자 버스는 떠났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아쉽고 슬픈 것은 손을 흔들면 보이는 거리임에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시야에 보이기 때문에 훠이 손을 흔들면 멈춰줄 법도 한데, 정류장을 떠난 버스는 멈춰주지 않는다.

‘정류장이 아닌 곳에는 정차하지 않는다’는 것이 버스의 규칙이기에.

그러나 우연치 않게도 신호등이 빨간 불이라면.

버스가 정류장에서 몇 m밖에 지나지 않았다면.

담대하고 관대한 기사님이 계신다면.


수많은 경우의 수가 합쳐져 버스를 놓친 것처럼,
수많은 경우의 수가 합쳐져 버스를 잡을 수 있다면.

언젠가 경사진 언덕을 올라 30m를 전력 질주해오는 나를 알아채고 기다려주신 기사님 덕에 버스를 탄 적이 있었다.

다음 버스를 생각 않고 달려온 나도 나이지만, 나를 봐주시고 기다려준 기사님과 서로 경우가 맞았기에 가능했다.



어제의 나는 ‘내가 사준 옷을 또 입고 온’ 그에 대한 애절한 마음으로 발을 동동거리곤 했다.
오늘의 나는 동동거리던 두 발을 가벼이 내려놓고 기다리는 이 없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미래의 나는 다가오는 버스를 타고 또 많은 정류장을 지나게 될 테다.


우리 앞의 생은 힘겹다.
그러나 이 한 단어로 일축해버리기에 삶이란 버스 노선도처럼 복잡 다사한 무언가다.

각자의 길을 따라 버스에서 오르내리고, 가끔은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우리.
이 삶을 살아내는 우리는 대견하고 사랑 받음에 마땅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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