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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버스 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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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Jun 23. 2020

버스는 모든 정류장에서 서는가?

스무 살 때 시내버스를 한 번도 타보지 않고 상경하여 생긴 2가지 일화가 있다.


그 일화들이 생기게 된 것은 이 오해에서부터다.
‘버스는 모든 정류장에서 선다.’
지금 와서는 한눈으로 봐도 어색한 명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때는 주변의 모든 게 새로웠고, 특히 처음 보는 지하철에 집중하여 노선, 환승, 출구 등을 익혀가고 있었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는 ‘모든 역에 정거하는 지하철’에 대한 개념이 뿌리내린 것이다.
‘지하철과 버스 같은 대중교통은 정해진 정류장이 있으니까 정차해가며 노선을 순환하겠지?’
이렇게 생각한 스무 살 어린이의 편에서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좋겠다.


첫 번째 일화는 바야흐로 버스를 처음 탔을 때의 일이다.
어느 가을, 나는 강남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대학교 기숙사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다음 정거장은 ‘oooo 정문’입니다.”하는 또랑또랑한 음성에 집중하며, 나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분명 정거장에 왔는데도, 버스는 멈추지 않고 훌렁훌렁 지나가는 것이었다.
하차문 앞에 서 있음에도 속도를 멈추지 않는 버스에, 나는 크게 외쳤다.
“기사님, 여기 왜 안 멈춰주세요?”
기사님의 말을 상상해보라. 아마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벨을 눌러야 멈추지요.”
그제야 내 눈에는 기둥마다 달린 조그만 앵두 같은 하차벨이 보였다.
그렇다. 버스는 지하철처럼 모든 정류장에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하차벨을 눌렀거나, 승차 고객이 있는 정류장에만 멈추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날 나는 전자의 상황만을 배웠다. 이후,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게 아직 많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게 될 일이 발생한다.


두 번째 일화는 후자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이번에는 일전의 ‘oooo 정문’ 정거장에서 버스를 타고 서초 쪽으로 가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 부근에 서 있기는 위험하다는 생각에 인도의 담벼락에 붙어 서 있었다.
휴대폰 앱에는 버스 도착 예정시간이 초 단위로 나왔기에 도착에 맞추어 탈 생각이었다.
곧 버스가 정거장에서 몇 미터 간격 남짓으로 가까워졌고, 나는 기대어 서 있던 담벼락에서 등을 떼고 버스를 향했다.

그러나 버스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나를 지나가버렸다.

나는 예상치 않게 바람을 맞은 사람처럼 황망한 표정으로 몇 초간 멍하게 서있었다. 휴대폰을 보니 다음 도착 예정시간은 15분이었다.
그 후에도 의자에 앉아있다가 일어서는 게 늦거나, 차도와 인도의 경계에 서 있었음에도 별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않은 탓인지 두어 번 이런 상황이 있었다.

그로 인해 나는 버스를 탈 때에는 ‘나 이 버스 탈 거예요.’하는 티를 팍팍 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도 타야 하는 버스가 저만치에서 보이면 괜히 미리 카드를 꺼내고, 애달픈 눈빛을 보내며 허리 옆에서 오른손을 위아래로 흔들곤 한다.


물론 지금은 나날이 발전해가는 ‘버스 러버이지만, ‘버스 러버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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