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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Mar 01. 2023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인생 이모작-

겨울 뒷산의 산책로는 한적했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출발했지만 따사롭게

퍼지는 햇살이 다정하게 온몸을 감싼다.


사박사박 내 발자국소리, 쪼롱거리는

새들 소리가 산길의 정취를 한껏 만끽하게 한다.  맑은 공기가 폐 속 깊이 스며들어 신선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이다.


​오르막길 헉헉 숨을 몰아쉬며 감골정에

도착하니 시원한 바람이 찬 볼을 어루만진다.

산책로에서 내려와 집으로 오는 길,


대동서적에 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간코너를 둘러보며 여러 종류의 책들을

구경하고 구석구석 비치된 의자에 앉아 아픈 다리를 토닥이며 책 보는 재미는 맛있는 시간의

여유라고나 할까.


​그렇게 집어 든 책 한 권이 있다.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이순자 유고 산문집’이라는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선 채로 서문을 읽다가 구석의 의자를 찾아 앉았다. 두 시간 정도 빨려들 듯이 읽다가 사들고 돌아왔다.


​이순자 작가는 평범한 주부였고 늦깎이 문학도였다. 사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며느리

였지만 황혼이혼을 하고 오십이 넘은 나이에 문학을 꿈꾸며 대학에 들어갔다.


​칠순을 눈앞에 두고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에 당선되었지만 한 달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떠난 지 몇 달 후 시니어문학상에 당선된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독자들 사이에 크게 주목받게 되었다.


​그녀의 딸은 고민 끝에 어머니의 글들을 모아서 유고 산문집 <예순 살, 깨꽃이 되어>를 내었다고 한다.  


​논픽션 부문으로 당선된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왜 그리 많은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왔을까!


'독자들은, 힘든 삶에도 어머니가 지켜 낸

곧은 심성과 따뜻한 시선, 특유의 위트와 희망을 읽어내주셨다'고 서문을 통하여 그녀의 딸은 이야기한다.


내가 책값을 계산하고 가져온

이유이기도 하다. 삶으로 말하는 글의 내용,

작가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따뜻했다.


칼바람을 맞는 듯한 힘겨운 삶의

여정이었건만 작가의 품은 너무 넓고 포근하고 다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나는 누가 아프다는 소리를 들으면

내 몸이 아파도 뛰어간다. 몸도 마음도 아파봤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해줄 게 없더라도 손 한 번,

발 한 번 잡아보러 간다...


아픈 사람들은 내게 전화를 건다.

나는 창에 기대 전화를 받으며 나를 필요로 하는

이의 벽이 되려고 노력한다.-142쪽


​-가만있어도 누군가 살며시 기대 온다면

반은 성공한 삶이요, 멀리 있으나 생각만 해도 누군가가 힘을 얻는 이 라면 그는 이 세상에 없어도 있는 사람이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의 든든한 벽이고 싶다. -143쪽   


​이순자 작가는 6.25 전쟁 때 아버지를 잃은 유복녀로 태어나고, 일반인도 장애인도 아닌 청각장애 경계인으로 살며 어려웠던 시기를 지냈다.


결혼 후 종갓집 맏며느리로 이 삼 백 명의

손님을 치르는 살림을 했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아이들과 정신이 피폐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남편의 외도의 계기로 모든 재산을 포기한 채, 아이들만 데리고 이혼을 했다.


뒤늦게 공부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웃음을 전하는 존재가 되었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62세에서 65세까지 이순자 작가가 실제로 겪은 취업 분투기이다.


일자리센터를 통해 경험한 취업스토리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게 적어 나갔다.


철저하게 준비했던 빛나는 자격증들과

그동안 살면서 경험했던 다양한 커리어는 무용지물이었다는 것, 아무리 자격증 시대라지만

 자격증보다 우선순위는 '나이'라는 이야기가  

나이 든 취준생들의 가슴을 울리며 크게 공감되는 내용일 것이다.


​진솔하게 써 내려간 작가의 버거웠던

인생 이야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과 세상을 향한 따스한 마음에 독자들은 감동과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다.


​무작정 어려운 이를 보면 사랑을 흘려보내는, 이렇게 용감한 사람이 또 있을까. 나 또한 작가를 닮은 독자가 되어 그녀가 흘려보내는 그 사랑에 한 줌 사랑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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