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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May 11. 2023

하늘의 꽃다발

그리움

결혼이 늦었던 조카가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이다.

큰언니의 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한지도 몇 년 지났으니 우리 집안의 아기 소식이 거의 10여년만이다. 예쁜 것이 정말 예쁜 짓 한 번 제대로 했다.


젊은이들이 속절없이 시간을 보내며

결혼이 늦어지고 만혼 뒤에는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요즘, 새 생명의 소식은 가족의 기쁨이자 우리 사회와 국가 차원으로 큰 기쁨임에 틀림없다.


조카와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축하해주기로 약속한 날, 김포시 입구 줄지어 있는 화원에 들렀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축복의 의미가

가득한 꽃다발을 주문했다. 고운 빛깔의 꽃송이가 모여들었고 향기롭고 풍성한 꽃다발이 준비 되었다. 꽃보다 더 예쁜 예비엄마에게 전해주는 기쁨이라니.     

 

향년 99세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신 어머니, 어머니가 이 생의 삶을 떠나시며 받았던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했던 꽃다발을 추억해 본다.


어머니가 걸어 온 세월은 시대적으로

매우 격동의 세월이었다. 일제 강점기를 험하게 지내고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를 뼈 속 깊게 겪으신 어머니, 여덟 남매를 세파에 굴하지 않고 길러 내며 거의 한 세기의 시간을 꿋꿋이 채운분이다.


나는 삶 속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격동기를 살아 내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힘을 내곤 했었다.      

 

어머니의 임종이 임박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남편과 함께 서둘러 출발했다. 어머니의 삶의

여정을 회상하며 차창밖을 보았을 때, 그 장관을

이루었던 봄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달리는 길가에 빼곡히 줄지어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주변에 온갖 종류의 꽃들이 만발해서 경이로움의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엄마의 임종을 지키러 가고있는 딸의

감정이 이래도 되는 것일까 자문하며 온 세상

꽃 잔치가 벌어진 계절, 결코 꽃길 인생일 수 없었던 엄마의 삶을 회상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결혼 생활의 매서운

시집살이는 그 후에 이어질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첫 남편을

어이없이 잃고 아이들까지 잃을까봐

가슴에 품고 부들부들 떨었다는 이야기를

하실때는 어머니의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민족의 파란만장이 그 세월의 시간을

통과했던  민초들의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듯이 어머니의 굴곡진 인생길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 어머니가 이제 떠나려 하는데

세상은 온통 꽃동산으로 변하고 새봄의 대지는

따스한 기운으로 충만했던 것이다. 옆에서 운전하던 남편에게 조용히 말을 건다.


“우리 엄마의 마지막길에 온 세상이

  아름다움으로 화답하네.  세상이 거대한

  꽃다발이 되어 배웅하고 있어


남편도 공감하는 듯 빙그레 웃으며

끄덕였다.  우리 어머니가 평생을 살면서

꽃다발을  받으신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에

엄마가 꽃다발을 받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백 여 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귀히 여기며 살았던 우리 어머니,

한평생을 살았던 동네에서 마음시린

사람들의 한없는 위로이기도 했던 엄마는

그 흔한 표창장 한 번 받은 적도 없다.

하지만, 하늘은 알고 있었나보다.


그녀의 아름다운 삶이 마감되는

시점에  온 세상은 색색의 꽃들이 만발하고

흩날리는 꽃비 속에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삶을 마감하는 한 여인에게 선물하는

하늘의 꽃다발! 나는 감히 이렇게 선언하며 그 분의 고운 발자취를 따라 오늘의 삶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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