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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Aug 11. 2023

수필같은 추억

   -그리움-

오래 된 수필집을 펼쳤다.

내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소복히

쌓여 있는 책이다.


문장 하나하나에 감동이 있었고

가슴을 파고 들었던 글귀들을 되뇌이며

마음에 새겼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느낌들이 그리워서 책장 높은 곳에

꽂혀 있던 책을 꺼냈다.

노란 바탕의 표지를 보며 벌써 마음이

수 십 년 전으로 날아가고 있다.


지금도 선명한 기억으로 떠오른 것은

이십 대 중반, 버스에 앉아 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글의 결이 너무 고와서 눈물이 났던 기억이다.


글쓴이는 당시 아이들을 키우는 중년의

여성이었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했다. 더구나 그 시절 우리나라의 시대적 분위기는 혼란 그 자체의 격동기였고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사회 분위기였다.  


‘이 분의 눈은 무엇을 보며 귀는 무엇을

들으시는가! 이 험하고 거친 세상을 살아가며

어떻게 이런 고운 글들이 나올 수 있을까’

정말 의아해했던 기억도 있기에 그 내용이

더 궁금해졌다.  


-마실 물조차 없는 불모의 사막에서,

대낮의 불볕더위와 한밤의 강추위를 이겨내기

위하여 아라비아 사람들은 <아라비아 나이트>라는 화려한 사라센문학의 맹랑한 꿈을 꾸었고, 더욱이 <알라딘의 램프>같은 찬란함이 극치에 이르는 환상문학을 창조하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역시 겨울의 그 모진

혹한을 견디기 위하여, 황홀하고 화려한 젊은꿈을 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중략>


지혜로운 여성은 환상과 현실을 구별할 줄 압니다. 보다 슬기로운 여성은 환상을 현실화시킬 줄 압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젊은 여성은 자신의 신화를 창조하고 그 주인공이 되는 기쁨을 누릴 줄 압니다.-19쪽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의미있는 삶일까를 고민하며

이상적인 인간상을 꿈꾸던 시절, 후배의 소개로 만났던 그 사람이 책 한 권을 보내왔다.


유안진 대표 에세이,

<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이었다.

첫 장을 넘기자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며...顯’

이라 쓰여 있다. 처음 만났던 해, 남편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 준 책이었다.  


그 사람을 생각하다가 이 책이 떠올랐는지,

아니면 이 책을 생각하다가 그 사람이 떠오른건지 잘 모르겠다.


삼 십 여년 세월 속, 사뭇 거칠었던 감정의 회오리는 잦아들고 유안진의 수필처럼 아련히 결 고운

감정을 만난다.


밑줄 그으며 열심히 읽었던 내용을 편지로 주고 받으며 삶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끝없는 청춘의 고뇌를 함께 나누었던 그였다.


혼란한 시대의 거리를 지나며,

방황하고 흔들리는 젊은이들을 다독였던 수필,

어떻게 내면을 다스리고 혹한기를 견디며 살아내야 하는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쓰여진 글을 읽으며 미래의 희망을 꿈꾸던 그와의 시간들이었다.


세월, 새싹이 돋더니 꽃이 피고지며

계절은 흐른다. 강물이 일정한 속도로 우리곁을 흐르듯이 자연의 일부로서 우리의 시간도 유유히 흐른다.

급한 성격을 지닌 사람의 시간도,

세월이 가는지 마는지 무심한 성격의 시간도

같은 속도로 우리곁을 흐르고 있다.

멈춤없이 지나는 시간에 무엇을 실려 보내야 할까,


이왕이면 화사한 웃음을 많이 실었으면 좋겠다.

눈을 마주보고 시시콜콜한 내용이라도 곁에 있는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그와 자주 드나들던 카페앞을 지나며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잠깐 기다려요. 얼른 아메리카노 사올게” 카페 앞에서 강아지와 기다리고 있으면 커피를 들고 나오며 환하게 웃던 그사람이 생각난다.


함께 점심 먹으러 제일 많이 찾았던 우리 동네

‘엄마 손 두부’, 그 앞을 지날때는 두부가 참 맛있다고 먹을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목소리가 나의 뇌리에 가득하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우리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자기 방식으로 유유자적 투병하던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떠났다는 것, 아직 나눌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남았는데.  


그가 처음으로 사 준 유안진의 수필집을 읽으며

이제 나는 책의 글보다 그와의 추억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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